1. 원심은, 소외 1은 1993. 10. 28. 원고의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소지하고 피고은행 여의도지점에 와서 원고 이름으로 보통예금구좌를 개설함과 동시에 같은 날 금 10,000,000원권 자기앞수표 8매를 위 구좌에 예금하였고{이하 갑(甲)구좌라 한다}, 1994. 2. 2. 원고의 주민등록증과 인감을 가지고 피고 은행 여의도지점에 와서 원고 이름으로 장기가계금전신탁 구좌 2개를 개설함과 동시에 자기 처인 소외 2가 발행인으로 되어 있는 액면 금 200,000,000원의 약속어음 1매를 위 2개의 구좌에 각 금 100,000,000원씩 나누어 예금한 후 {이하 을(乙), 병(丙) 구좌라 한다}, 위 갑(甲), 을(乙), 병(丙) 구좌에 입금된 예금(이하 이 사건 예금이라 한다)의 출연자(出捐者)인 원고에게 즉시 이 사건 예금통장과 인감을 교부한 사실, 그런데 위 소외 1은 갑(甲)구좌의 예금을 한 바로 다음날인 1993. 10. 29. 위 여의도지점의 직원인 소외 3에게 전화로 예금통장 없이 위 갑(甲)구좌의 예금을 모두 인출하겠다는 것을 알리고 위 소외 2에게 원고의 인감이 날인된 백지 예금청구서를 주어 위 소외 2로 하여금 예금을 인출하게 하였는데, 위 소외 3은 위 소외 2로부터 백지 예금청구서를 받아 필요한 사항을 직접 기재한 다음 위 소외 2에게 금 80,000,000원의 예금을 예금통장 없이 지불한 사실, 위 소외 1은 위 을(乙), 병(丙) 구좌의 예금에 대하여도 그 예금 다음날인 1994. 2. 3. 위와 꼭 같은 절차를 밟아 예금 200,000,000원을 위 소외 2를 시켜 모두 인출한 사실 등을 인정한 후, 금융기관에 대한 기명식예금에 있어서는 그 명의 여하를 묻지 아니하고, 또 금융기관이 누구를 예금주로 믿었는가에 관계없이, 예금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자로서 자기의 출연에 의하여 자기의 예금으로 한다는 의사를 가지고 스스로 또는 사자, 대리인을 통하여 예금계약을 한 자를 예금주로 봄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므로(
당원 1987. 10. 28. 선고 87다카946 판결,
1992. 1. 21. 선고 91다23073 판결,
1992. 6. 23. 선고 91다14987 판결,
1995. 8. 22. 선고 94다59042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예금의 예금주도 예금한 돈의 출연자이자 예금통장과 인감의 보관자인 원고라고 보아야 할 것이지만, 피고 은행의 직원인 위 소외 3이 위 소외 1의 처인 위 소외 2에게 한 예금의 지급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은 이유로
민법 제470조에서 규정한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유효하다 할 것이므로, 원고의 이 사건 예금채권은 피고 은행의 위 변제로 소멸하였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이 사건 예금반환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다.
2. 원심이 위 소외 3의 예금지급을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유효하다고 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원고는 이 사건 예금을 하기 약 3년 전인 1991. 6.경부터 4차례에 걸쳐 합계 금 1,000,000,000원을 소외 1에게 교부하면서 이를 피고 은행에 예금하여 관리하여 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에 위 소외 1은 피고은행 여의도지점에 위 소외 1 이름으로 같은 해 6. 11. 금 150,000,000원을, 같은 해 7. 10. 금 250,000,000원을, 1993. 1. 28. 금 300,000,000원을 각 예금하는 한편 위 1993. 1. 28.자로 양도성예금증서 액면 합계 금 370,000,000원을 매입하기도 하였는데, 위 각 예금 때마다 그 예금통장과 인감을 즉시 원고에게 교부하였고, 위 예금의 만기가 도래하면 원고로부터 예금통장과 도장을 교부받아 예금을 인출하여 그 중 원금에 해당되는 금액을 새로운 구좌를 개설하여 재예금하고 그 새로운 예금에 대한 통장과 인감을 다시 원고에게 반환하여 온 사실, 위 소외 1은 위 예금들을 담보로 하여 소외 2 명의로 1993. 7. 8. 금 135,000,000원을 한도로 하는 회전대출통장을, 같은 해 9. 17. 금 360,000,000원을 한도로 하는 회전대출통장을 각 개설하여 금원을 대출받아 사용하였으나 이를 원고에게는 비밀로 하였던 사실, 그런데 위 소외 1은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긴급재정명령(이하 금융실명제라 한다)이 시행된 후인 같은 해 10. 28. 원고의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소지하고 피고 은행 여의도지점에 와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갑(甲), 을(乙), 병(丙) 구좌의 이 사건 예금을 한 사실, 이 사건 예금은 모두 원고가 출연한 자금으로 이루어졌지만 위 금 80,000,000원의 자기앞수표는 위 소외 1의 농협중앙회 동대문지점에서 인출된 것이고 위 금 200,000,000원의 약속어음은 위 소외 2가 발행인으로 되어 있었던 사실, 피고 은행은 예금실적이 많은 중요 고객에 대하여는 전담직원을 지정하여 그로 하여금 고객과의 모든 거래를 전담하게 하는 영업방식을 시행하고 있었는데, 위 소외 1에 대하여는 위 소외 3을 전담직원으로 배정하여 위 소외 1이 피고 은행 여의도지점과 1991. 6. 11. 처음 거래를 시작할 때부터 위 소외 1과의 모든 거래를 전담시켜 왔던 사실, 위 소외 1은 피고 은행과 처음 거래를 시작할 때부터 이 사건 예금을 할 때까지 자신이 실질적인 예금주로 행동하였고, 이 사건 예금 당시에도 원고의 이름으로 예금하는 이유를 묻는 위 소외 3에게 예금주가 원고임을 밝히지 아니한 채 사정에 의하여 원고의 이름으로 예금한다고만 하였으며, 구좌개설신청서에도 원고의 주소나 아파트 동, 호수 및 전화번호를 기재하지 아니하였고, 원고는 한 번도 은행에 나타나지 않았던 사실, 금융실명제 시행 후에도 차명예금이 얼마든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은 고액예금자를 특별고객으로 취급하여 그 예금자 본인이 금융기관에 직접 찾아가지 않고 전화 등으로 예금의 인출을 요청한 후 대리인으로 하여금 예금청구서만을 지참하고 예금을 청구하게 하더라도 그 예금청구서에 날인된 인영의 진위를 확인한 후 예금을 인출하여 주는 등의 방법으로 거래의 편의를 제공하여온 관행이 있는 사실 등을 각 인정한 후, 위와 같은 사정 아래에서는 피고 은행으로서는 위 소외 1이 원고의 이름을 빌어 이 사건 예금을 한 것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할 것이고, 한편 위 소외 3은 그 동안 위 소외 1로부터 전화로 미리 출금요청을 받고 나중에 은행에 나온 위 소외 2로부터 위 소외 1의 인감이 날인된 예금청구서만을 제시받으면 언제든지 위 소외 1 명의의 예금을 위 소외 2에게 지급하여 왔으므로, 이 사건 예금의 진정한 예금주를 위 소외 1이라고 믿고 있던 위 소외 3이 종전에 해오던 관례대로 위 소외 1로부터 미리 전화로 출금요청을 받고 위 소외 2로부터 원고의 인감이 날인된 예금청구서를 제시받아 그 인영의 진위를 확인한 후 위 소외 2에게 이 사건 예금을 지급하였다면, 비록 위 소외 2가 예금통장을 가져오지 않았고, 또 예금 바로 다음날 그 전액을 출금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소외 3에게 위 예금지급과 관련하여 어떤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위 변제는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유효하다는 것이다.
3.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이 사건 예금지급이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유효하기 위하여는, 먼저 위 소외 1이나 소외 2가 진실한 채권자라고 믿게 할 만한 외관을 갖추고 있어야만 할 것인데, 원심이 인정한 위 사실관계만으로는 위 소외 1 등이 그러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위 소외 1이 피고 은행 여의도지점과 거래하여 왔던 종전의 예금은 그 명의자가 위 소외 1 자신으로 되어 있으므로, 위 소외 3이 예금명의자인 위 소외 1로부터 전화로 인출통보를 받고 종전에 해오던 대로 위 소외 2에게 예금통장 없이 인감이 날인된 예금청구서만으로 예금을 지급하였을 경우에도 그 예금지급이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유효하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이 사건 예금은 위 소외 1이 원고의 이름으로 새로 개설한 예금으로서 종전 예금과는 전혀 별개의 예금이고, 기록에 의하면 위 소외 1은 원고의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 및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피고 은행 여의도지점에 가서 원고 명의의 이 사건 예금구좌를 개설하였는데, 당시 위 소외 3은 위 주민등록증을 복사한 후 그 복사된 원고의 주민등록증 아래에는 실명확인필이라고 기재하고, 위 소외 1의 주민등록증 아래에는 대리인 또는 피위임인이라고 기재한 사실과 위 주민등록증에 원고의 주소가 상세히 기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므로, 위 소외 1이 종전부터 피고 은행 여의도지점의 전담직원인 위 소외 3과 고액의 예금거래를 자기 명의로 계속하여 왔고 이 사건 예금 중 금 200,000,000원은 위 소외 2 발행의 약속어음을 입금함으로써 이루어졌으며 예금명의자인 원고의 인감이 날인된 예금청구서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정도의 사정만 가지고, 예금통장도 소지하지 않았고 예금명의자도 아니며 예금을 한 바로 그 다음날 예금 전액을 인출하려 한 위 소외 1을 이 사건 예금의 예금주로서의 외관을 갖추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며, 예금거래약정서에 예금주의 전화번호가 기재되지 않았다거나 예금주가 은행에 나와 직접 예금을 하지 않았다는 사정을 가지고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예금주를 예금행위자로 오인하는 데 예금주가 협력, 가담하였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더욱이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긴급재정경제명령 제3조 제1항은 "금융기관은 거래자의 실지명의에 의한 금융거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금융기관에 예금을 하고자 하는 자는 원칙적으로 직접 주민등록증과 인감을 지참하고 금융기관에 나가 자기 이름으로 예금을 하여야 할 것이나, 대리인이 본인의 주민등록증과 인감을 가지고 가서 본인의 이름으로 예금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 금융기관으로서는 자기가 주민등록증을 통하여 실명확인을 한 예금명의자를 위 재정명령 제3조에서 규정한 거래자로 보아 그와 예금계약을 체결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예금명의자가 아니고 예금통장도 소지하지 않은 예금행위자에 불과한 자는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후에는 극히 예외적인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예금채권을 준점유하는 자에 해당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피고 은행 소정의 예금인출 절차에 관한 약관이나 면책약관의 내용 등에 관하여조차 심리하지 아니한 채 위와 같은 사정만을 들어 위 소외 1이나 그의 처인 위 소외 2를 이 사건의 예금채권의 준점유자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 그 예금지급을 하여준 피고 은행에게도 아무런 과실이 없다고 판단하고 말았으니, 원심판결에는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고, 위와 같은 위법은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것이므로,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