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에서의 법관 기피
1. 의 의
가. 기피란 법관이 제척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관여하거나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경우에 당사자의 신청에 의하여 그 법관을 직무집행에서 탈퇴하게 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이미 그 사건의 직무집행에서 배제되어 있는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은 허용되지 않는다.
나. 기피사유는 비유형적이고, 당사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 법원의 결정에 의하여 그 효과가 발생한다. 이에 반하여 제척사유는 유형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그 효과가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당연히 발생한다는 점에서, 회피는 법관 본인의 의사를 기초로 하는 점에서 기피와 구별된다.
2. 기피의 원인(제18조 제1항)
가. 법관이 제척의 원인에 해당하는 때
이 경우에 당해 법관은 당연히 직무집행으로부터 제외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별도로 기피의 원인으로 한 것은, 당사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 법원으로 하여금 이를 심리하도록 구속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나.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라 함은 당사자가 불공평한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만한 주관적인 사정이 있는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의 판단에 비추어 법관과 당해 사건과의 관계로 보아 불공평한 재판을 할 것이라는 의혹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를 말한다.
1)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에 해당하는 예 : 법관이 피고인 또는 피해자와 친구 또는 적대관계에 있을 때, 법관이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을 통하여 발표한 경우, 법관이 심리 중에 유죄를 예단한 말을 한 경우, 범관이 심리 중에 피고인에게 심히 모욕적인 말을 한 경우, 법관이 피고인의 진술을 강요한 경우 등이 있다.
2)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에 해당하지 않는 예 : 법관의 종교ㆍ세계관ㆍ정치적 신념 및 성(性), 법관이 피고인에게 공판기일에 어김없이 출석하라고 촉구한 경우, 당사자의 증거신청을 채택하지 않은 경우, 법관과 피고인이 긴장관계에 있다는 사실, 법관과 변호인의 친소관계 등이 있다.
① 형사소송법 제18조 제1항 제2호 소정의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의 의미(대판 2001.3.21, 2001모2) 기피원인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18조 제1항 제2호 소정의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라고 함은 당사자가 불공평한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만한 주관적인 사정이 있는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통상인의 판단으로서 법관과 사건과의 관계상 불공평한 재판을 할 것이라는 의혹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때를 말하며 검사의 피고인에 관한 공소장변경허가신청에 대하여 불허가 결정을 한 사유만으로 재판의 공평을 기대하기 어려운 객관적인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② 피고인의 소송기록열람신청에 대하여 국선변호인이 선임되어 있으니 국선변호인을 통하여 소송기록의 열람 및 등사신청을 하도록 한 경우 기피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대판 1996.2.9, 95모93). ‣개정 전 형사소송법 제55조는 서류나 증거물의 멸실 등을 우려하여 피고인에게 원칙적으로 이를 부정하였으나 95년 개정된 현행 형사소송법 제55조는 “변호인 없는” 부분을 삭제하였음을 주의하여야 한다. 따라서 개정 법률에 의하면 기피신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
3. 기피신청의 절차
가. 신청권자
1) 기피를 신청할 수 있는 자는 검사와 피고인이다(제18조 제1항). 변호인은 피고인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지 않는 한 기피신청을 할 수 있다(동조 제2항).
2) 변호인의 기피신청권은 고유권이 아니라 대리권이므로 피고인이 기피신청권을 포기한 때에는 변호인의 신청권도 소멸된다.
3) 공소제기 전의 증거보전절차(제184조)나 판사에 의한 증인신문절차(제221조의2)의 경우에는 ‘피의자’도 법관에 대해 기피신청을 할 수 있다(통설).
나. 신청의 방식
1) 기피신청은 서면 또는 공판정에서 구두로 할 수 있다. 합의법원의 법관에 대한 기피는 그 법관 소속법원에 신청하고, 수명법관ㆍ수탁판사 또는 단독판사에 대한 기피는 당해 법관에게 신청하여야 한다(제19조 제1항).
2) 기피신청을 함에 있어서는 기피의 원인이 되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3일 이내에 서면으로 소명하여야 한다(제19조 제2항, 규칙 제9조 제1항).
다. 신청의 시기
1) 기피신청의 시기에 관하여 형사소송법은 아무런 시간적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아 이에 대해서 변론종결시까지 가능하다는 변론종결시설(소송의 신속 강조)과 판결시까지는 언제든 가능하다는 판결선고시설(적정절차 강조)의 입장이 대립한다.
2) 판례는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이 있는 경우에 형사소송법 제22조에 의하여 정지될 소송진행에는 판결 선고는 포함되지 아니하는 것이고, 그와 같이 이미 종국판결이 선고되어 버리면 그 담당재판부를 사건 심리에서 배제하고자 하는 기피신청은 그 목적의 소멸로 재판을 할 이익이 상실되어 부적법하게 된다(대결 1995.1.9. 94모77)”고 판시하고 있지만, 이 판례를 학설은 변론종결시설솨 판결선고시설인지 견해가 일치되지 않고 있다.
4. 기피신청에 대한 재판
가. 간이기각결정
1) 취 지 : 기피신청이 소송의 지연을 목적으로 함이 명백하거나 제19조의 규정에 위배된 때에는 신청을 받은 법원 또는 법관은 결정으로 이를 기각한다(제20조 제1항). 기피권을 남용하여 신속한 재판의 진행을 저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다.
2) 요 건 : 제19조에 위배된 경우란 기피신청의 관할을 위반하였거나 신청 후 3일 이내에 기피사유를 서명으로 소명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법원의 심리방법이나 태도에 대한 불복신청을 이유로 하는 기피신청, 시기에 늦은 기피신청, 이유 없음이 명백한 기피신청이 여기에 해당한다.
① 피고사건의 판결선고 절차가 시작되어 재판장이 이유의 요지 중 상당부분을 설명하는 도중 피고인이 동 공판에 참여한 법원사무관에 대한 기피신청과 동시에 선고절차의 정지를 요구하는 것은 선고절차의 중단 등 소송지연만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부적법한 것이다(대판 1985.7.23, 85모19). ② 기피신청이 소송의 지연을 목적으로 함이 명백한 경우에는 그 신청 자체가 부적법한 것이므로 신청을 받은 법원 또는 법관은 이를 결정으로 기각할 수 있는 것이고, 소송지연을 목적으로 함이 명백한 기피신청인지의 여부는 기피신청인이 제출한 소명방법만에 의하여 판단할 것은 아니고, 당해 법원에 현저한 사실이거나 당해 사건기록에 나타나 있는 제반 사정들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 있다(대판 2001.3.21, 2001모2). |
3) 불 복 : 간이기각결정에 대해서는 즉시항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간이기각결정에 대한 즉시항고는 통상적인 즉시항고와 달리 집행을 정지하는 효력이 없다(제23조 제2항).
나. 의견서의 제출
기피당한 법관은 간이기각결정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체없이 기피신청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해야 한다(제20조 제2항). 기피당한 법관이 기피신청을 이유 인정하는 때에는 기피결정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동조 제3항).
다. 소송진행의 정지
1) 정지의 범위
ⓐ 기피신청이 있는 경우에 그대로 진행하여 종국재판이 선고되면 기피제도의 의의가 상실되므로 원칙적으로 소송진행을 정지하여야 한다. 다만 기피신청기각의 경우와 급속을 요하는 경우(제22조)는 예외로 한다.
ⓑ 정지해야 할 소송진행의 범위에 관하여는 본안의 소송진행에 제한하여야 한다는 견해와 급속을 요하는 경우 외에는 모든 소송절차가 정지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한다.
ⓒ 판례는 구속기간의 갱신(대결 1987.2.3. 86모57)이나 판결의 선고(대판 1995.1.9, 94모77)는 정지해야 할 소송절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여 전자의 입장이다.
① 형사소송법 제19조 제2항 소정의 소명이라고 함은 기피 신청인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말하며 기피 신청서에 기재된 기피 이유만으로는 소명자료가 될 수 없다. 법관에게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다고 하여 기피신청이 있는 경우에 형사소송법 제22조에 의하여 정지될 소송진행은 그 피고사건의 실체적 재판에의 도달을 목적으로 하는 본안의 소송절차를 말하고 판결의 선고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대판 1987.5.28, 87모10). ② 형사소송법 제22조에 규정된 정지하여야 할 소송절차란 실체재판에의 도달을 직접의 목적으로 하는 본안의 소송절차를 말하며 구속기간의 갱신절차는 이에 포함되지 아니하는 것이다(대결 1987.2.3. 86모57). ③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이 있는 경우에 형사소송법 제22조에 의하여 정지될 소송진행에는 판결 선고는 포함되지 아니하는 것이고, 그와 같이 이미 종국판결이 선고되어 버리면 그 담당재판부를 사건 심리에서 배제하고자 하는 기피신청은 그 목적의 소멸로 재판을 할 이익이 상실되어 부적법하게 된다(대판 1995.1.9, 94모77). |
2) 예 외 : 급속을 요하는 경우에는 소송진행이 정지되지 않는다(제22조 단서). 예를 들면 구속기간의 만료가 임박하였다는 사정은 소송진행의 정지의 예외사유인 급속을 요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구속기간의 만료가 임박하여 기피신청이 있는 경우에는 소송진행을 할 필요가 없다.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이 있을 때에는 소송진행을 정지하여야 하지만 급속을 요하는 경우에는 소송진행을 정지하지 아니할 수 있는 것이고(형사소송법 제22조), 기피신청때문에 소송의 진행이 정지되더라도 구속기간의 진행은 정지되지 아니하는 것이므로(같은 법 제92조, 제306조 참조), 구속기간의 만료가 임박하였다는 사정도 소송진행정지의 예외사유인 급속을 요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사유에 해당한다(대판 1994.3.8, 94도142). |
라. 기피신청사건의 관할
기피신청사건에 대한 재판은 기피당한 법관의 소속 법원 합의부에서 한다(제21조 제1항). 기피당한 법관은 이에 관여하지 못한다(동조 제2항). 기피당한 판사의 소속 법원이 합의부를 구성하지 못할 때에는 직근 상급법원이 결정한다(동조 제3항).
마. 기피신청에 대한 재판
1) 기피신청에 대한 재판은 결정으로 한다.
2) 기피신청 기각결정 : 기피신청이 이유 없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기피신청을 기각한다. 기피신청을 기각한 결정에 대하여는 즉시항고 할 수 있다(제23조 제1항). 다만 제20조 제1항의 기각결정에 대한 즉시항고는 재판의 집행을 정지하는 효력이 없다(동조 제2항).
3) 기피신청 인용결정 : 기피신청이 이유 있다고 인정한 때에는 기피당한 법관을 당해 사건의 절차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한다. 이 결정에 대하여는 항고하지 못한다(제403조 제1항). 인용결정의 효력발생시기는 기피사유에 따라 다르다. 제척사유가 인정된 때에는 원인 발생시로 소급효가 인정되지만,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인정된 경우에는 결정시에 효력이 발생한다.
5. 기피의 효과
기피신청이 이유 있다는 결정이 있을 때에는 그 법관은 당해 사건의 직무집행으로부터 탈퇴한다. 그 법관이 사건의 심판에 관여한 때에는 절대적 항소이유(제361조의5 7호)와 상고이유(제383조)가 된다. 기피당한 법관이 기피신청을 이유 있다고 인정한 때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