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불이행 손해배상'과 '불법행위 손해배상'의 차이
I. 서설
우리 법은 다른 법제와 달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하여 따로 특별한 내용의 규정을 두지 아니하고 제763조에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규정인 제393조를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채무불이행책임은 책임발생의 근거가 당사자 사이의 의사표시의 합치로 이루어지는 계약에 있음에 반하여 불법행위책임의 근거는 불특정다수인들의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하여 마련된 일반적인 보호법규에 두고 있어서 계약관계의 존재를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양자의 공통점과 차이점 및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II. 책임요건상의 비교
1. 공통점
양 책임 법정책임으로서, 모두 귀책사유(고의ㆍ과실)가 필요하며, 채무자 또는 가해자의 책임능력을 요하고 있다. 다만 일부견해는 채무불이행책임에서 미성년자 등이 책임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채무불이행책임을 면하는 것은 형평에 반한다는 이유로 채무불이행책임에서는 책임능력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 차이점
가. 과실의 정도
채무불이행과 불법행위 모두 추상적 경과실을 과실의 원칙적인 모습으로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경우 차이가 있는 것이 있다. 예컨대 채무불이행의 경우 무상수치인의 책임(제695조)은 구체적 경과실을 요구하고 있으며, 불법행위 중 공작물의 책임은 무과실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불법행위 책임의 경우 위험책임이나 중간책임 등을 인정하여 피해자 보호를 고려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입증책임
채무불이행책임의 경우 채무자가 자신의 귀책사유 없음을 주장ㆍ입증하여야 하나, 불법행위책임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의 귀책사유 있음을 주장ㆍ입증하여야 한다. 다만 현대형 불법행위소송에서 증거의 구조적 편재 현상을 시정하고 피해자의 보호를 위하여 입증책임의 전환 또는 완화의 시도가 있다.
다. 이행보조자책임과 사용자책임
양자는 불법행위책임과 채무불이행책임에서 유사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행보조자책임의 경우에는 제391조만으로 채무자에게 채무불이행책임을 인정할 수 없고, 제390조의 채무불이행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제391조는 독립된 청구권의 기초가 되지 않는다. 또한 채무자에게 제391조의 책임을 묻기 위하여 이행보조자에게 어떠한 책임이 인정될 것을 요하지 않는다. 반면 사용자책임의 경우에는 제756조만으로 사용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어 독립된 청구권의 기초가 되며, 사용자책임이 인정되기 위하여는 피용자가 불법행위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법문상 이행보조자 책임의 경우에는 면책가능성이 없으나 사용자 책임의 경우에는 면책가능성이 있다. 다만 실무적으로 사용자의 면책을 거의 인정하지 않아 실제의 효과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III. 책임효과상의 비교
1. 공통점
손해배상의 범위, 금전배상의 원칙, 과실상계, 배상자 대위는 차이가 없다(제763조). 법문의 규정이 없으나 손익상계도 양자에 대하여 모두 인정된다.
2. 차이점
가. 손해배상청구권자
채무불이행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채권자에 한하나, 불법행위책임의 경우에는 피해자 외에 근친자나 유족도 손해배상청구권이 있다. 특히 태아의 경우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제762조).
나. 상계금지
고의의 불법행위의 경우 손해배상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는 상계를 금지하지만(제496조),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는 이러한 제한이 없다.
다. 부진정연대채무
불법행위책임에서는 수인이 공동하여 불법행위를 가한 때에는 연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지만(제760조), 수인의 채무자의 계약책임에는 이러한 규정이 없다.
라. 손해배상액의 예정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채무불이행의 경우에만 허용되고,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에는 이러한 합의가 허용되지 않으며, 그 합의의 효력이 미치지도 않는다. 반면 사후적 배상액의 합의는 양자 모두 허용된다.
마. 법정담보권에 의한 보호
특수한 계약에 있어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법정담보권에 의해서 일정한 보호를 받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임대인의 임차지의 부속물ㆍ과실 등에 대한 법정질권 및 임차지상의 건물에 대한 법정질권(제644ㆍ645조), 유치권에 관한 민법 제320조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는 이러한 보호가 주어지지 않는다.
바. 소멸시효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경우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 있는 날로부터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되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경우 이러한 규정이 없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이 체결되었을 때 취득하게 될 이행청구권에 적용되는 소멸시효기간에 따른다. 전자의 경우 소멸시효 기간은 불법행위시부터 기산하는 반면, 후자의 경우 채무불이행시부터 기산한다.
사. 손해산정시 및 특별손해의 예견가능성 판단시기
채무불이행의 경우 책임원인발생시 또는 채무불이행시(이행지체는 이행기, 이행불능은 이행불능시)가 판단의 기준시이지만, 불법행위의 경우 불법행위시가 판단의 기준시가 된다.
IV. 양 책임의 관계
1. 청구권 경합 문제
가. 문제점
채무불이행책임을 포함하는 개념인 계약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이 모두 인정될 때 두 청구권을 모두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 중 하나만을 인정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나. 학설
청구권경합설은 청구권 경합을 인정하는 것이 채권자 보호에 유리하며, 계약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은 그 요건과 효과가 다르게 정하여져 있는 별개의 청구권이므로 피해자는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채무자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책임 또는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견해이다. 법조경합설은 채무불이행책임은 계약관계라고 하는 특수한 관계가 당사자 간에 존재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가해행위에 대한 책임인 데 반하여 불법행위책임은 그러한 특수한 관계가 없는 일반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해행위에 대한 책임으로서, 계약법과 불법행위법은 특별법과 일반법의 관계에 있으므로 특별법인 계약법이 일반법인 불법행위법보다 우선하여 적용되어 한다는 견해이다. 청구권규범통합설은 하나의 사실에 대하여 적용할 수 있는 청구권 규범이 복수라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하나의 청구권만이 존재하므로 중복 내지 충돌하는 청구권 중에서 당해 구체적 사례에 적합한 규범을 찾아 그것에 의하여 처리하여야 한다는 견해이다.
다. 판례
대법원은 "해상운송인이 운송 도중 운송인이나 그 사용인 등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하여 운송물을 감실 훼손시킨 경우, 선하증권 소지인은 운송인에 대하여 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과 아울러 소유권 침해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취득하며 그 중 어느 쪽의 손해배상 청구권이라도 선택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1983.3.22. 82다카1533 전원합의체)."고 판시하여 청구권경합설의 입장이다.
2. 면책특약
계약상의 채무불이행책임과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병존하고, 계약상의 면책특약은 일반적으로 이를 불법행위책임에도 적용하기로 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합의가 없는 한 당연히 불법행위책임에 적용되지 않는다(2004.7.22. 2001다58269).
다만 운송물의 권리를 양수하여 선하증권을 교부받아 그 소지인이 된 자는 운송계약상의 권리를 취득함과 동시에 목적물의 점유를 인도받은 것이 되어 운송물의 소유권을 취득하여 운송인에 대하여 채무불이행 책임과 불법행위 책임을 아울러 추궁할 수 있게 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운송인이 선하증권에 기재한 면책약관은 채무불이행 책임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당사자 사이에 불법행위 책임은 감수할 의도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불법행위책임에 적용키로 하는 별도의 명시적. 묵시적 합의가 없더라도 당연히 불법행위 책임에도 그 효력이 미친다(1983.3.22. 82다카1533 전원합의체). 그러나 선하증권에 기재된 면책약관이라 할지라도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재산권 침해에 대한 불법행위 책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1983.3.22. 82다카1533 전원합의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