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음수표상 권리의 선의취득
I. 의의
1. 개념
선의취득이란 배서의 연속에 의해 형식적 자격을 가진 자로부터 배서 또는 교부에 의하여 어음․수표를 양수한 자는 설사 배서인이 무권리자이거나 양도행위가 실질적으로 무효라 하더라도 이에 대하여 악의 또는 중과실이 없는 한 어음․수표상의 권리를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어음법 제16조 제2항, 수표법 제21조). 선의취득은 어음․수표상의 권리의 원시취득에 해당하므로 취득자는 그 이전의 하자나 항변사유가 제거된 완전한 권리를 갖게 된다. 선의취득은 어음․수표의 유통성 보호를 위한 제도이고, 배서의 자격수여적 효력의 결과로 인정되는 것이다.
2. 동산의 선의취득과의 비교
어음․수표는 동산보다 유통성 보호의 요청이 더 강하므로 어음법․수표법에 의한 어음․수표상 권리의 선의취득은 민법상 동산의 선의취득보다 그 요건이 완화되어 있다. ① 양수인에게 경과실이 있는 경우 민법상 동산의 선의취득은 불가능하나 어음․수표상 권리에 대한 선의취득은 가능하다. ② 민법에 의할 때 동산은 도품 및 유실물인 경우 선의취득이 제한되나, 어음․수표는 도품 및 유실물인 경우에도 제한 없이 선의취득이 인정된다. ③ 민법상 동산의 선의취득에는 「평온․공연」이란 요건이 법문상 명백히 요구되나, 어음법․수표법에는 그와 같은 요건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④ 민법상 동산의 선의취득은 양도인이 무권리자인 경우에만 인정되나, 어음․수표상 권리에 대한 선의취득은 양도인이 무권리자인 경우뿐만 아니라 양도행위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도 인정된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II. 요건
1. 어음법․수표법적 양도방법에 의하여 취득하였을 것
선의취득은 어음․수표의 유통 보호를 위한 제도이므로 어음법․수표법에서 특별히 마련한 유통방법, 즉 「배서」와 「교부」에 의해 어음․수표를 취득한 경우에만 인정된다. 따라서 상속․합병 등 포괄승계나 지명채권 양도방법․전부명령과 같은 특정승계의 경우에는 선의취득이 인정되지 않는다. 배서라 하여도 기한후배서나 추심위임배서에 의해서는 선의취득이 인정되지 않는다(통설).
기한후배서는 지명채권양도의 효력밖에 없고, 추심위임배서는 추심권한만 부여할 뿐 권리이전적 효력이 없어 피배서인을 보호할 독립된 경제적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백지어음․수표는 백지 상태로 유통되더라도 선의취득이 인정된다. 백지어음․수표는 어음법․수표법적 양도방법에 의해 양도되고, 유통 보호의 필요성이 일반 어음․수표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2. 어음․수표의 취득자가 형식적 자격을 가질 것
어음․수표 취득자의 형식적 자격이란 “배서”에 의하여 양도되는 어음․수표의 경우에는 「배서의 연속」을 의미하고, “교부”만에 의하여 양도되는 어음․수표의 경우에는 단순한 「소지」를 의미한다. 어음․수표 취득자의 형식적 자격은 양도인의 형식적 자격을 전제로 하는데, 양도인의 형식적 자격은 양수인이 선의취득을 하는데 있어 신뢰의 기초를 제공한다.
3. 양도인의 무권리 또는 양도행위의 하자
민법은 선의취득의 요건으로 “양도인이 정당한 소유자가 아닌 때에도”라고 규정하고 있어(민법 제249조), 민법상 동산의 선의취득은 양도인이 무권리자인 경우에만 인정되고 양도행위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음법․수표법은 선의취득의 요건으로 “어떤 사유로든 어음․수표의 점유를 잃은 자”라고 규정하고 있어(어음법 제16조 제2항, 수표법 제21조) 선의취득이 「양도인이 무권리자인 경우」에 한하여 인정되는지, 아니면 이에 더하여 「양도행위에 하자가 있는 경우」까지도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견해의 대립이 있다.
(1) 학설
1) 무권리자한정설
양도인이 무권리자일 때에 한하여 선의취득이 인정된다고 한다. 선의취득은 배서의 자격수여적 효력의 이면으로서 배서의 연속에 의해 양도인이 권리자로 추정되는 결과 그를 적법한 권리자로 믿은 양수인의 신뢰를 보호하는 제도인데, 양도인의 능력․처분권․대리권 등에 대한 신뢰는 배서의 연속과 무관하므로 선의취득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양도행위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 선의취득을 인정하면 제한능력자, 무권대리인의 본인 등이 어음․수표상 권리를 상실하게 되어 제한능력자 등의 보호를 저버리게 된다고 한다.
2) 무제한설
양도인이 무권리자인 경우뿐만 아니라 양도인의 제한능력, 대리권․처분권의 흠결, 의사표시의 하자, 양도인의 인적 동일성의 흠결 등 양도행위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도 선의취득이 인정된다고 한다. 어음법․수표법이 “「어떤 사유로든」 어음․수표의 점유를 잃은 자”라고 규정하고 있고, 어음․수표는 유통성이 강하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그리고 선의취득 인정 결과 제한능력자 등이 권리를 잃게 되더라도 그들이 어음․수표상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아니므로 제한능력자 등의 보호가 완전히 무시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2) 판례
판례는 “어음의 선의취득으로 인하여 치유되는 하자의 범위 즉, 양도인의 범위는 양도인이 무권리자인 경우뿐만 아니라 대리권의 흠결이나 하자 등의 경우도 포함된다.”라고 하면서, 어음 문면상 회사 명의의 배서를 위조한 총무부장으로부터 어음할인의 방법으로 그 어음을 취득한 사안에서 선의취득을 인정한바 있다(대판 1995.2.10. 94다55217). 형식적으로는 판례가 무제한설을 취한 것처럼 보이나, 무권대리나 무권대행 이외의 경우에도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4. 어음․수표 취득자가 선의․무중과실일 것
선의취득이 성립하려면 취득자에게 악의 또는 중과실이 없어야 한다. ① 악의의 대상은, 무권리자한정설에 의하면 「양도인의 무권리」이고, 무제한설에 의하면 「양도인의 무권리 또는 양도행위의 하자」이다. ② 악의 또는 중과실은 취득자의 「직전의 양도인」에 대한 것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취득자가 직전의 양도인이 무권리자 등인 사정을 알지 못하였다면 그 이전의 자가 무권리자 등인 것을 알았더라도 선의취득은 가능하다. ③ 악의 또는 중과실 유무는 어음․수표의 「취득 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는 백지어음․수표도 마찬가지이므로 취득자가 백지어음․수표를 취득할 때 선의․무중과실이었으면 보충 시에 무권리 등의 사정을 알게 되었어도 선의취득에는 지장이 없다. ④ 취득자의 악의 또는 중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선의취득을 부정하는 자에게 있다.
5. 어음․수표 취득자에게 독립된 경제적 이익이 있을 것
선의취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취득자가 어음․수표의 취득에 대하여 독립된 경제적 이익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취득자를 보호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추심위임배서나 숨은 추심위임배서는 어음․수표금 추심에 관한 대리권을 부여하는 것뿐이어서 피배서인이 어음․수표의 취득에 독립된 경제적 이익을 갖지 않아 피배서인에게 선의취득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입질배서의 피배서인에게는 질권이라는 독립된 경제적 이익이 있으므로 질권의 선의취득이 인정된다.
III. 효과
1. 어음․수표상 권리의 취득
어음법․수표법은 이를 “…그 어음․수표를 반환할 의무가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어음법 제16조 2항, 제21조), 이는 선위취득자가 어음․수표상의 권리를 취득한다는 의미이다. 그 결과 원래의 어음․수표상 권리자는 권리를 상실한다.
선의취득은 원시취득이다. 따라서 그 이후 선의취득자로부터 그 권리를 승계취득하는 자는 취득 시에 선의취득자에 대한 양도인의 무권리 등의 사정을 대하여 악의였다 하여도 완전한 권리를 취득한다. 이를 「엄폐물의 법칙」이라 한다.
2. 인적항변의 절단과의 관계
선의취득이 원시취득이라면 선의취득자는 그 이전의 모든 어음․수표항변이 제거된 권리를 취득하는가? 통설은 선의취득은 권리귀속의 문제이고 어음․수표항변은 채무부담의 문제라는 등의 이유로 어음․수표항변 절단의 문제는 선의취득과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한다. 따라서 선의취득자가 항변이 부착된 어음․수표상 권리를 선의취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예컨대, 甲이 乙에게 약속어음을 발행한 후 그 발행의 원인이 된 매매계약을 해제하였는데 그 후 乙의 무권대리인 乙’가 A에게 그 어음을 배서양도한 경우, A가 乙’의 대리권 없음에 대하여는 선의․무중과실이었으나 甲의 매매계약 해제에 대해서는 해의가 있었다면, A는 甲의 인적항변이 부착된 상태로 어음을 선의취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