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생명보험
1. 의의 및 제한의 필요성
타인의 생명보험이란 보험계약자가 자기 이외의 제3자를 피보험자로 한 생명보험을 말한다. 그런데 타인의 생명보험 중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사망보험은 재산적 이익을 위해 피보험자를 살해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일정한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다. 물론 보험계약자가 당초부터 오로지 피보험자를 살해하고 보험사고를 가장하여 보험금을 취득할 목적으로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면 이 보험계약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이고(대판 2000.2.11. 99다49064), 또 보험계약자나 보험수익자가 피보험자를 살해하거나 그들의 교사에 의해 피보험자가 살해된 경우에는 보험자가 면책되겠지만(제659조 제1항 참조) 이러한 사정이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법은 그 제한의 방식으로 피보험자의 서면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2. 피보험자의 서면동의
(1) 서면동의가 필요한 경우
ⅰ)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사망보험 또는 생사혼합보험의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제731조 제1항), ⅱ) 피보험자의 동의를 얻어 일단 타인의 사망보험계약이 성립된 후에 ‘보험계약으로 인한 권리(보험수익자의 보험금청구권)’를 보험사고 발생 전에 피보험자가 아닌 제3자에게 양도하는 경우(제731조 제2항), ⅲ) 타인의 사망보험계약에서 보험기간 중 보험계약자가 보험수익자를 지정․변경하는 경우(제734조 제2항 → 제731조 제1항)에는 피보험자인 타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다만 단체보험의 경우에는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이라도 원칙적으로 피보험자의 동의가 필요 없다(제735조의3 제1항, 후술). 또한 타인의 생명보험이라도 생존보험의 경우에는 피보험자의 동의를 요하지 않는다.
(2) 서면동의 흠결의 효과
상법 제731조 제1항의 규정은 강행법규로서 이에 위반하여 체결된 보험계약은 무효이다(대판 1996.11.22. 96다37084). 그런데 보험자가 타인의 서면동의 없이 그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그 보험계약이 유효함을 전제로 보험료를 징수하고서 보험사고가 발생한 이후에야 비로소 피보험자의 서면 동의가 없었다는 사유를 내세워 그 보험계약이 무효라는 주장을 하는 것도 허용되는가? 다시 말해 상법 제731조 제1항은 오로지 피보험자인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지 보험자를 위한 규정이 아니므로 보험자의 위와 같은 무효 주장은 신의칙 또는 금반언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가 문제된다.
판례는 아내가 남편의 동의 없이 남편을 피보험자로, 자신을 보험수익자로 한 사망보험에 가입한 후 남편이 사망하자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을 청구한 사안에서, 보험사의 위와 같은 무효 주장을 인정하였다. 즉 “상법 제731조 제1항의 입법취지에는 도박보험의 위험성과 피보험자 살해의 위험성 외에도 피해자의 동의를 얻지 아니하고 타인의 사망을 이른바 사행계약상의 조건으로 삼는 데서 오는 공서양속의 침해의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한 것도 들어있다고 해석되므로, 상법 제731조 제1항을 위반하여 계약을 체결한 자 스스로가 무효를 주장하더라도 그러한 주장이 신의성실 또는 금반언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는 없다(대판 1999.10.8. 98다24563).”고 하였다.
(3) 서면동의의 시기 및 방식
1) 시기
피보험자의 동의는 「보험계약 체결 시」에 얻어야 한다(제731조 제1항). 그런데 타인의 서면동의를 얻지 못하고 체결한 타인의 생명보험계약을 그 타인이 사후에 추인할 수는 있는가? 예컨대, 부모가 자식을 피보험자로 하여 생명보험에 가입하였는데, 보험계약 체결 당시에는 자식의 동의를 얻지 않았으나 이후 자식이 그 보험계약을 명시적으로 추인하거나 계속 보험료를 납부하는 등 묵시적으로 추인하였다면 그 보험계약은 효력을 가질 수 있는가?
학설은 긍정설과 부정설이 대립하는데, 판례는 추인을 부정한다. 즉 “상법 제731조 제1항에 의하면 타인의 생명보험에서 피보험자가 서면으로 동의의 의사표시를 하여야 하는 시점은 ‘보험계약 체결시까지’이고, 이는 강행규정으로서 이에 위반한 보험계약은 무효이므로, 타인의 생명보험계약 성립 당시 피보험자의 서면동의가 없다면 그 보험계약은 확정적으로 무효가 되고, 피보험자가 이미 무효가 된 보험계약을 추인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보험계약이 유효로 될 수는 없다(대판 2006.9.22. 2004다56677).”고 하였다.
2) 방식
① 개별적인 서면동의
피보험자인 타인의 동의는 각 보험계약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서면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포괄적인 동의 또는 묵시적이거나 추정적 동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법이 보험계약 체결 시에 피보험자인 타인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도록 규정한 것은 그 동의의 시기와 방식을 명확히 함으로써 분쟁의 소지를 없애려는데 그 취지가 있기 때문이다(제731조 제1항, 대판 2003.7.22. 2003다24451).
② 대리인의 의한 동의
피보험자인 타인의 서면동의가 그 타인이 보험청약서에 자필 서명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고, 타인으로부터 특정한 보험계약에 관하여 서면동의를 할 권한을 구체적․개별적으로 수여받았음이 분명한 사람이 권한 범위 내에서 타인을 대리 또는 대행하여 서면동의를 한 경우에도 그 타인의 서면동의는 적법한 대리인에 의하여 유효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피보험자인 타인이 참석한 자리에서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보험계약자나 보험모집인이 타인에게 보험계약의 내용을 설명한 후 타인으로부터 명시적으로 권한을 수여받아 보험청약서에 타인의 서명을 대행하는 경우는 적법한 대리인에 의한 유효한 동의이다(대판 2006.12.21. 2006다69141).
(4) 동의의 철회
피보험자의 동의는 보험계약 성립 전에는 언제나 철회할 수 있으나 보험계약의 효력이 발생한 후에는 보험계약자와 보험수익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철회할 수 있다(통설). 그러나 판례는 “피보험자가 서면동의를 할 때 기초로 한 사정에 중대한 변경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계약자 또는 보험수익자의 동의나 승낙 여부에 관계없이 피보험자는 그 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대판 2013.11.14. 2011다101520).”고 하였다.
(5) 서면동의에 관한 설명의무
서면동의 요건은 타인의 생명보험계약에서는 결정적인 요소인데, 보험설계사가 이에 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서면동의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판례는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자에게 피보험자의 서면동의 등의 요건에 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아니하는 바람에 위 요건의 흠결로 보험계약이 무효가 되고 그 결과 보험사고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보험계약자가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었다면 보험자는 보험업법에 기하여 보험계약자에게 그 보험금 상당액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대판 2006.4.27. 2003다60259).”고 하였다.
3. 15세 미만자 등에 대한 계약의 금지
15세 미만자, 심신상실자 또는 심신박약자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은 서명동의의 유무를 묻지 않고 무조건 무효로 한다(제732조 본문). 정신능력 또는 의사능력이 완전하지 않은 이들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경우 보험범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법정대리인에 의한 대리동의도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심신박약자는 일시적으로 정상인 경우도 있고 경제활동이 가능하기도 한데 정신장애의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15세 미만자 등에 대한 계약을 예외 없이 무효로 하면 성인인 심신박약자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스스로를 피보험자로 하여 사망보험을 가입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해져, 이 규정에 의해 오히려 심신박약자 등이 보험가입에 있어 차별을 받는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래서 2014년 개정상법은 심신박약자가 보험계약을 체결하거나 제735조의3에 따른 단체보험의 피보험자가 될 때에 의사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는 사망보험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였다(동조 단서).
4. 단체보험
(1) 의의
단체보험이란 회사 등 특정 단체가 규약에 따라 구성원의 전부 또는 일부를 피보험자로 하여 이들의 생존과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생명보험계약을 말한다(제735조의3 제1항). 단체보험은 단체가 보험계약자가 되고 그 구성원이 피보험자가 되는 형식이므로 타인의 생명보험의 하나이다.
제735조의3의 적용을 받는 단체보험에 해당하려면 단순히 다수의 회사 직원을 피보험자로 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규약」에 따라 보험계약을 체결한 경우이어야 한다. 그러한 규약이 갖추어지지 아니한 경우에는 피보험자인 구성원들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갖추어야 보험계약으로서의 효력이 발생한다(대판 2006.4.27. 2003다60259). 여기서 규약의 의미는 단체협약, 취업규칙, 정관 등 그 형식을 막론하고 단체보험의 가입에 관한 단체내부의 협정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보험가입에 관하여 대표자가 구성원을 위하여 일괄하여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취지를 담고 있는 것이면 충분하다(대판 2006.4.27. 2003다60259).
(2) 단체보험의 특성
1) 피보험자의 변경
원래 인보험에서는 피보험자에 따라 위험률이 크게 달라지고 피보험자를 기초로 보험료가 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피보험자의 변경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단체보험은 그 특성상 단체 구성원이 입사와 퇴사 등을 통해 수시로 변경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구성원의 교체가 있더라도 단체보험계약은 전체로서 그 동일성이 유지되는 특성을 가진다.
2) 서면동의의 불필요
단체보험은 타인의 생명보험임에도 불구하고 계약체결 시 타인의 서면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제735조의3 제1항). 피보험자의 개별적 서면동의를 단체규약으로써 집단적 동의로 갈음한 것이다. 단체는 구성원의 생사에 이해관계가 달려 있기 때문에 단체보험의 경우 일부러 피보험자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가할 염려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한다.
3) 자기를 위한 보험계약 형식의 단체보험
단체보험계약은 보통 단체의 대표자가 구성원의 복리후생을 위하여 구성원을 피보험자 겸 보험수익자로 하여 체결한다. 따라서 단체보험은 일반적으로 타인을 위한 생명보험이 되는데, 최근 고용주가 자신을 보험수익자로 하여 단체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있어 피보험자의 서면동의를 요하지 않는 단체보험계약을 자기를 위한 보험으로도 체결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었다. 이 경우에는 보험사고로 보험금이 나오더라도 실제 손해가 발생한 직원이나 그 유족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고용주가 보험금을 차지하면 단체보험에는 일부러 피보험자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가할 염려가 없다는 논거에도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과거 판례는 “단체보험의 경우 보험수익자의 지정에 관하여는 상법 등 관련 법령에 별다른 규정이 없으므로, 보험수익자를 보험계약자 자신으로 지정하는 것이 단체보험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대판 2006.4.27. 2003다60259).”고 하여 이를 인정하였으나, 2014년 개정상법은 단체구성원 및 그 유족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단체보험계약에서 보험계약자가 피보험자 또는 그의 상속인이 아닌 자를 보험수익자로 지정할 때에는 단체의 규약에서 명시적으로 정하는 경우 외에는 그 피보험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여(제735조의3 제3항), 위 판례의 입장을 입법적으로 변경하였다.
단체의 규약으로 피보험자 또는 그 상속인이 아닌 자를 보험수익자로 지정한다는 명시적인 정함이 없음에도 피보험자의 서면 동의 없이 단체보험계약에서 피보험자 또는 그 상속인이 아닌 자를 보험수익자로 지정하였다면 그 보험수익자의 지정은 구 상법 제735조의3 제3항에 반하는 것으로 효력이 없고, 이후 적법한 보험수익자 지정 전에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피보험자 또는 그 상속인이 보험수익자가 된다(대판 2020.2.6. 2017다215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