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에 대한 보험자대위—청구권대위
(1) 의의
피보험자의 손해가 제3자의 행위로 인하여 생긴 경우에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자는 지급한 금액의 한도 내에서 제3자에 대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권리를 취득한다(제682조 제1항 본문). 이를 청구권대위라 한다. 예를 들어, 보험의 목적이 제3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멸실된 경우 보험자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면 보험자는 피보험자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하게 된다. 청구권대위를 인정하는 이유는 ① 피보험자의 이중이득을 방지하기 위함일 뿐만 아니라, ② 피보험자가 보험금으로 만족하고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보험사고에 책임이 있는 제3자가 면책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다.
(2) 요건
청구권대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① 제3자의 행위로 보험사고가 발생하여 피보험자가 손해를 입어야 하고, ② 보험자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며, ③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제3자에 대하여 권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1) 제3자의 행위로 인한 보험사고의 발생
제3자의 행위에는 불법행위뿐만 아니라 적법행위도 포함된다는 것이 통설이나,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에 기한 책임이 문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제3자의 범위이다. 제3자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 이외의 자가 제3자에 포함됨은 당연하다. 그러면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는 제3자에서 완전히 제외되는가? 이에 관하여 논의가 있다. 보험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하여 발생한 경우에는 보험자가 면책되므로 보험자 대위의 여지가 없다(제659조). 문제는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경과실이 있어 보험자의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 보험자대위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이다.
① 피보험자
피보험자의 경과실로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 보험자의 청구권 대위를 허용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피보험자에 대한 보험의 이익이 박탈되는 결과가 되므로 피보험자는 제3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② 보험계약자
보험계약자의 경과실로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자는 피보험자의 보험계약자에 대한 청구권을 대위할 수 있는가? 제3자의 범위와 관련하여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운송인이 송하인을 위해서 운송보험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운송인의 경과실로 운송물이 멸실하여 보험자가 송하인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경우, 보험자는 송하인의 청구권을 대위하여 운송인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A. 학설
ⓐ 긍정설 보험계약자를 제3자에 포함시키는 견해로서 보험자는 보험계약자에게도 청구권 대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타인을 위한 보험에서 가장 중요한 법익은 피보험자의 보호라는 점, 보험계약자는 설사 보험료를 납입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형식상의 당사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 부정설 보험계약자는 제3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견해로, 보험자가 보험계약자에게는 청구권 대위를 할 수 없다고 한다. 보험계약자는 계약의 당사자로서 많은 의무를 부담하는데 그에게 보험자 대위까지 인정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긍정설에 의하면 타인을 위한 보험계약을 체결한 운송인이나 임차인 등이 보험자 대위권 행사에 대비하여 책임보험까지 가입해야 하는 실무상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B. 판례 판례는 긍정설의 입장이다. 즉 “피보험이익의 주체가 아닌 보험계약자는 그 지위의 성격과 보험자대위 규정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보험자대위에 있어서 당연히 제3자의 범주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대판 1990.2.9. 89다카21965).”라고 하였다.
C. 검토 후술하는 바와 같이 2014년 개정상법은 제682조 제2항을 신설하여 동거가족에 대한 예외조항을 두면서, 피보험자의 가족뿐만 아니라 보험계약자의 가족도 제3자의 범위에서 제외하면서, 그들에 대해서는 보험자가 청구권 대위를 할 수 없도록 하였다. 보험계약자의 가족을 제3자의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은 보험계약자를 제3자에서 제외한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한 입법이다. 따라서 개정상법에서는 보험계약자는 보험자 대위에 있어서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입법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③ 피보험자나 보험계약자의 가족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와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도, 손해가 그 가족의 고의로 인하여 발생한 경우가 아닌 한, 제3자에 포함되지 않는다(제682조 제2항). 예컨대, 피보험자가 아버지로 되어 있는 자동차보험에서 그 동거가족인 아들이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경우, 보험자는 아버지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더라도 그 아들에게 보험자 대위권을 행사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 이를 허용하면 사실상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로부터 보험의 이익을 박탈하는 것과 동일한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2) 보험자의 적법한 보험금 지급
① 보헙자의 보험금 지급은 적법해야 한다. 판례는 “보험약관상 보험자가 면책되는 무면허운전 시에 생긴 사고에 대한 보험회사의 보험금지급은 보험약관을 위배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적법하지 아니하므로, 보험자대위의 법리상 보험회사는 구상권을 대위 행사할 수 없다(대판 1994.4.12. 94다200).”, “제3자에 대한 보험자대위가 인정되기 위하여는 보험자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는 경우여야 하므로 보험자가 보험약관에 따라 면책되거나, 피보험자에게 보험사고에 대한 과실이 없어 보험자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는 경우에는 보험자대위를 할 수 없다(대판 2009.10.15. 2009다48602).”라고 판시한 바 있다. ② 보험자는 보험금의 일부만을 지급한 경우에도 피보험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그 권리를 대위한다(제682조 제1항 단서). 이 점 보험금 전액을 지급해야 대위가 인정되는 잔존물대위와 다르다. ③ 권리를 대위하는 시기는 잔존물 대위와 마찬가지로 「보험금을 지급한 때」이다.
3)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제3자에 대한 권리의 존재
청구권 대위를 위해서는 보험자가 보험금을 지급할 당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제3자에 대한 청구권이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보험자가 보험금을 지급하기 전에,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그 권리를 행사 또는 처분하였거나, 존재하던 권리가 소멸시효 등으로 소멸한 경우, 또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제3자에 대한 권리를 미리 포기한 경우에는 보험자대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물론 피보험자 등이 제3자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거나 처분한 경우에는 피보험자 등은 보험자에 대한 보험금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이중이득의 금지).
보험자 대위의 대상은 보통 피보험자가 제3자에 대하여 갖고 있는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된다. 이 외에 판례는 피보험자가 공동불법행위의 가해자인 경우, 공동불법행위자에 대한 구상권도 보험자대위에 의하여 보험자에게 이전한다고 한다. 즉 판례는, 甲․乙․丙의 공동불법행위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하였는데 丙의 보험자가 피해자들에게 그 손해배상금을 보험금으로 모두 지급하여 甲과 乙도 공동면책된 사안에서 “丙은 상법 제724조 제2항에 의하여 乙의 보험자에게 직접 乙의 부담 부분에 대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고, 또한 丙의 보험자는 상법 제682조의 보험자대위의 법리에 따라 취득한 丙의 乙의 보험자에 대한 직접적인 구상권을 乙의 보험자에게 행사할 수도 있다(대판 1998.12.22. 98다40466).”라고 판시하였다.
하나의 사고로 보험목적물과 보험목적물이 아닌 재산에 대하여 한꺼번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보험목적물이 아닌 재산에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보험계약으로 인한 법률관계를 전제로 하는 상법 제682조의 보험자대위가 적용될 수 없으므로, 보험목적물에 대한 부분으로 한정하여 보험자가 보험자대위에 의하여 제3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의 범위를 결정하여야 한다(대판 2019.11.15. 2019다240629). |
(3) 효과
1) 권리의 이전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제3자에 대한 권리는 보험자의 보험금 지급과 동시에 보험자에게 이전한다. 이러한 권리 이전은 법률상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으로 권리 이전을 위한 별도의 의사표시나 대항요건은 필요하지 않다. 보험자대위에 의하여 피보험자 등의 제3자에 대한 권리는 동일성을 잃지 않고 그대로 보험자에게 이전되는 것이다. 따라서 보험자가 취득하는 채권의 소멸시효 기간과 그 기산점 또한 피보험자 등이 제3자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 자체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판 1999.6.11. 99다3143). 보험자가 상인이라고 하여 상사소멸시효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제3자는 피보험자 등에 대한 모든 항변사유로써 보험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2) 피보험자 등의 권리 처분의 제한
권리가 보험자에게 이전한 이후에는 피보험자 등은 무권리자이므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처분할 수 없다. 따라서 피보험자 등이 처분행위를 하더라도 이는 무효이며 보험자는 여전히 보험자대위를 할 수 있다. 그 결과 보험자는 피보험자 등이 처분행위를 하더라도 이로 인해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으므로 피보험자 등에게 손해배상청구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 판례도 “화재보험의 피보험자가 보험금을 지급받은 후 화재에 대한 책임 있는 자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으면서 나머지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하였다 하더라도, 피보험자의 화재에 대한 책임 있는 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보험자가 보험자로부터 보험금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그 보험금액의 범위 내에서 보험자에게 당연히 이전되므로, 이미 이전된 보험금 상당 부분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포기는 무권한자의 처분행위로서 효력이 없고, 따라서 보험자가 이로 인하여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대판 1997.11.11. 97다37609).”라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제3자가 선의․무과실로 피보험자에게 손해를 배상한 경우, 제3자의 손해배상금 지급은 민법 제470조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 유효하므로, 보험자는 이를 입증하여 피보험자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 또는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대판 1999.4.27. 98다61593).
(4) 대위권 행사의 제한
1) 보험금을 일부 지급한 경우
보험자가 보상할 보험금의 일부만을 지급한 경우에는 보험자는 피보험자 등의 권리를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제682조 제1항 단서). 예를 들어 보험가액 1,000만 원인 물건에 대하여 보험금액을 1,000원으로 한 전부보험이 체결되었는데, 제3자의 과실에 의해 이 물건이 전부 멸실하였다고 하자. 이때 보험자가 보험금을 600만 원만 지급하였다면, 보험자는 600만 원에 대해서만 대위하고 나머지 4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여전히 피보험자가 보유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 제3자의 자력이 500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면 보험자는 단지 100만 원의 범위에서만 대위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고 피보험자가 400만 원을 청구할 수 있다. 보험자는 피보험자의 권리를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대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 일부보험의 경우
일부보험에서 보험자가 보험금액의 전부를 지급한 경우 보험자는 어느 범위에서 대위를 할 수 있는가? 예컨대, 보험가액 1,000만 원인 물건에 대하여 보험금액을 600만 원으로 한 일부보험이 체결되었는데, 제3자의 과실에 의해 이 물건이 전부 멸실하여 보험자가 보험금 600만 원을 모두 지급하였다고 하자. 제3자의 자력이 500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면 피보험자와 보험자는 이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 이는 상법이 청구권 대위에서는 잔존물 대위에서와는 다르게 제681조 단서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제682조 제1항 단서가 자동적으로 적용되지도 않는다. 이것은 보험자가 보험금액의 「전부」를 지급한 경우이지 「일부」를 지급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① 학설
A. 상대설(비례주의, 소수설) 상법 제681조 단서를 유추적용하여 보험자는 보험금액의 보험가액에 대한 비율에 따라 대위한다고 한다. 이에 의하면 위 예에서 보험자는 300만 원(500만 원⨉ )의 범위에서 대위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제3자에게 보험자는 300만 원을, 피보험자는 200만 원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B. 차액설(손해액초과주의, 다수설) 상법 제682조 제1항 단서를 유추적용하여 보험자는 피보험자의 권리를 해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대위를 한다고 한다. 이에 의하면 위 사례에서 피보험자가 400만 원을 청구하여 먼저 만족을 얻고 보험자는 나머지 100만 원에 대해서만 대위할 수 있게 된다.
② 판례
판례는 다수설과 같이 차액설을 취한다. 즉 “일부보험의 경우 보험자가 대위할 수 있는 피보험자의 제3자에 대한 권리의 범위는 피보험자의 권리를 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로 제한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보험사고가 피보험자와 제3자의 과실이 경합되어 발생한 경우 피보험자가 제3자에 대하여 그 과실분에 상응하여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청구권 중 피보험자의 전체 손해액에서 보험자로부터 지급받은 보험금을 공제한 금액만큼은 여전히 피보험자의 권리로 남는 것이고, 그것을 초과하는 부분의 청구권만이 보험자가 보험자대위에 의하여 제3자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게 된다고 할 것이다(대판 2012.8.30. 2011다100312).”라고 판시하였다. 그 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차액설을 확립하였다. 즉 손해보험의 보험사고에 관하여 동시에 불법행위나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제3자가 있어 피보험자가 그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에, 피보험자가 손해보험계약에 따라 보험자로부터 수령한 보험금은 보험계약자가 스스로 보험사고의 발생에 대비하여 그때까지 보험자에게 납입한 보험료의 대가적 성질을 지니는 것으로서 제3자의 손해배상책임과는 별개의 것이므로 이를 그의 손해배상책임액에서 공제할 것이 아니다(대판 2015.1.22. 2014다46211 전원합의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