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주용 아니면 집 팔아라
2017년 8월 부동산정책을 담당하는 장관은 “다주택자, 실거주용 아니면 집을 팔라”고 말했다. 이미 실패로 판명된 부동산 정책이다. 이제 중과세의 경고와 함께 소유권자에게 사실상 거주 내지 사용 의무를 부과하는 정책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그 타당성 및 실효성에 대하여 논란이 많다.
부동산과 지재권은 비교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소유권자와 지재권자는 사용, 수익, 처분의 권리를 가지고, ‘사용의 의무’를 강제할 수 없음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에서 재산권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지재권자가 자신의 특허발명이나 저작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권리 포기를 강요할 수 없다. 특허권자 또는 저작권자는 자신의 발명이나 저작물을 사용할 수도 있고 상업화할 수도 있지만, 그냥 조용히 후속 발명이나 또 다른 창작에 전념할 수도 있다.
상표권은 특허권 및 저작권과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 상표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출처를 표시하기 위한 표장으로, 그 사용에 의하여 명성이나 신용이 축적되면서 비로소 재산적 가치가 형성된다. 우리나라 상표법은 상표사용 여부를 불문하고 일단 상표등록을 허용해주는 반면에, 3년간 계속하여 상표사용이 없는 경우에 상표등록취소의 가능성을 제시하여 사실상 상표사용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상표권자로서는 자신의 상표를 계속 사용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상표권을 포기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미국 상표법(Lanham Act)은 철저한 '사용주의(Use-based system)'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상표등록 출원인은 출원일 당시 자신의 상표를 영업상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 진술서를 함께 제출해야 하고, 상표권자가 상표사용을 중단하여 상표를 포기(abandomment)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상표등록의 취소를 피할 수 없다. 다만, 미국 상표법은 상표사용을 전제로 상표등록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상표권자가 상당기간 상표사용을 중단하더라도 관련 연구개발이나 제조공정 개선 등으로 상표사용을 재개할 구체적인 의도와 계획을 입증(‘CRASH DUMMIES’ 사례)하면 등록취소를 면할 수 있다. 또한,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과 같이 상표불사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고 (‘DESPACITO’ 사례), 상표권자가 팬데믹이 진정된 직후 상표사용을 재개하려는 노력을 하여 상표포기의 의도가 없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상표등록의 취소를 면할 수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상표권자가 정당한 이유없이 5년간 계속하여 자신의 상표를 ‘실질적으로 사용 (genuine use)’하지 않은 경우에 상표등록취소의 대상이 된다. 상표불사용의 정당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있지만, 식품판매를 위한 영업허가 ('Le Chef DE CUISINE' 사례) 또는 의약품 판매를 위한 임상시험 (‘BOSWELAN’ 사례) 등에 소요되는 기간동안 상표를 사용하지 못한 경우에도 상표등록취소를 면할 수 없다고 판단된 바 있다. 유럽연합 법원은 상표의 사용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불합리하게 만드는 사유 가운데 (1)상표불사용과 직접적인 관련(인과관계)이 있고, (2)상표권자의 의지와 무관한 ‘독립한(independent) 장애 사유’가 입증된 경우에 한하여 ‘정당한 이유’가 인정된다고 하는 엄격한 해석론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엄격한 해석론에 의하면, 상표권자가 자신의 기업전략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업 전략을 적시에 추진하지 못한 경우에 상표불사용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항변하면서 등록취소를 면하기는 어렵다.
일본 상표법은 우리나라 상표법과 마찬가지로, 상표권자ㆍ전용사용권자 또는 통상사용권자가 계속하여 3년 이상 자신의 상표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에는 상표등록의 취소를 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 지재고등재판소는 무엇이 상표등록취소를 면할 수 있는 ‘상표사용’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상표불사용의 ‘정당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상당수의 판결을 내린 바 있어서 우리나라 법해석에서 참고할 가치가 있다. 일본 특허청은 상표법 축조해설에서 천재지변의 발생이 상표불사용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표법도 상표권자가 계속하여 3년 이상 자신의 상표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에 상표등록취소의 대상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표 불사용의 ‘정당한 이유’로 질병 기타 천재 등의 불가항력에 의하여 영업을 할 수 없는 경우뿐만 아니라, 법률에 의한 규제, 판매금지, 또는 국가의 수입제한조치 등에 의하여 부득이 등록상표의 지정상품이 거래될 수 없는 경우와 같이 상표권자의 귀책사유로 인하지 아니한 상표 불사용의 경우도 포함된다고 해석되고 있다. 예컨대,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의 규정에 의하여 등록상표의 지정상품을 정상적으로 판매할 수 없는 경우라던가 혹은 무역거래법의 규정에 의하여 수입금지 내지 수입제한됨으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등록상표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경우에는 상표불사용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수입국에서의 판매부진, 건축허가, 행정규제 등으로 인하여 상표를 사용하지 못했거나 지연된 경우에 정당한 이유가 인정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특히, 상표권의 양도가 있었던 경우에 상표불사용의 기간 및 정당한 이유를 판단함에 있어서 상표권양도 이전의 사정도 모두 함께 살펴서 판단하고, 상표권양도 및 회사설립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상표불사용의 정당한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가 등장하고 창업이 증가하면 새로운 상표의 등록과 함께 기존 상표에 관한 분쟁도 증가한다. 한편으로는 기존 상표의 명성과 신용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사업자에 의한 상표선택의 자유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상표등록취소에 관한 분쟁에 있어서, 상표불사용의 기간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 그리고 상표불사용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아니면 상표권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것인지에 관한 비교법적인 검토와 법정책적인 고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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