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SF 공상과학영화 중에 대기업이 다스리는 미래사회를 보여주는 영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기업 X’는 자체적인 군수산업, 보안산업을 기반으로 군과 경찰을 장악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다양한 상품을 국민들에게 팔아 막대한 수익을 거두어들이는 한편, 국민 개개인의 모든 사생활 정보를 통제합니다. 국가는 이름만 있을 뿐,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생활영역이 ‘대기업 X’에 의해 지배됩니다.
위와 같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기업 X’는 존재하진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종종 논란이 되는 ‘대기업의 시장 잠식’ 문제는 '대기업 X'의 단편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때 중소업체의 사장님들 말인 즉, "사장직 버리고 대기업의 하청에 하청에 재하청이라도 줄 대야겠다"는 것입니다. 내 명예와 내 이름 건 중소기업인, 소상공인 될 생각 말고, 대기업 꽁무니에서 부스러기로 던져주는 것들을 받아먹는 게 차라리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전 국민의 간부화'가 아니라 '전 국민의 대기업 사원화'를 연상케 합니다.
대기업의 시장 잠식의 대표 격인 SSM(슈퍼슈퍼마켓)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는 MRO(소모성 자재구매대행), SI(시스템 통합), 건설하청, 광고하청 등에서 심각했는데, 이중 소상공인을 고사시키는 MRO는 특히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애들 코 묻은 돈까지도 대기업이 가져가겠다는 것이니까요.
대기업의 시장 잠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대한민국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그 이면에는 ‘가(家)를 중심으로 한 부(富)의 대물림’이 그 원인인 것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가족제도는 중국의 종법제를 계수한 조선시대의 가족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중국의 종법제는 남계(男系)혈통계승주의와 족외혼제의 2원칙을 그 내용으로 하는 ‘가(家)’ 위주의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념에 따르면 ‘가(家)’는 과거의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현재의 가족을 거쳐 미래의 자손에게 연결되는 초시간적 집단이었고, 결국 현시대를 살고 있는 가족 구성원은 가장(家長)을 중심으로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지금의 가(家)를 발전시켜서 자손에게 인계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60~70년대 소상공인에서 시작하여 대기업을 이룩하신 왕회장님의 자녀들이 현시대의 대기업 총수 자리를 이어받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손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가장(家長)의 역할은 본처는 물론 후처의 자식들에게까지 ‘한 자리’씩 분배함으로써 당시까지 이어받은 부를 인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왕회장님의 7남매와 그 인척들은 물론, 그 밑의 손자녀, 증손자녀 및 인척까지 부(富)가 보장된 자리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여기서 다수의 MRO, SI업체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코멘트] 기업의 주인은 다수의 주주이긴 하지만 자본시장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소유'와 '경영'은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은 주가 상승이나 배당금에 관심이 많을 뿐이어서, 주식차트가 상승세로 뻗어 나간다면 경영자가 무슨 일을 하든 눈감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돈이 되지 않을 거라 보이면 기회를 엿보아 주식 팔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비교적 소수지분을 가진 경영자들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기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일감 몰아주기나 지원행위는 현행 공정거래법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① 우선,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7호는 “부당하게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하여 가지급금·대여금·인력·부동산·유가증권·상품·용역·무체재산권 등을 제공하거나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여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의 하나로서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판례는 이를 엄격하게 해석하는 편입니다. ② 한편, 동법 제11조의 2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특수관계인을 상대방으로 하거나 특수관계인을 위하여 ‘대규모 내부거래(자본금의 10% 또는 100억 원 이상)’를 하고자 하는 때에는 미리 이사회의 의결을 거친 후 이를 공시하도록 규정하였지만, 다수의 ‘소규모’ 거래로 이루어진 MRO, SI는 ‘대규모 거래’가 아니라는 이유로 위 제한을 피해갔던 것입니다. ③ 기타 중소시장 잠식을 예방하기 위한 기업결합 제한(동법 제7조) 등의 논점도 있습니다.
물가폭등, 경제 추락 등의 상황에서 서민들은 추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근 ‘대기업 계열사별 내부거래에 대해 상속세, 증여세까지 부과하고, 대규모 거래의 기준을 하향 조정함으로써 규제대상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방안까지 거론하면서 심란한 중소상인들의 마음을 달래보기도 하지만, 서민들은 ‘말뿐인가’ 하여 냉담한 상황입니다.
[상법 상 내부거래 규제조항] |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관련 판례법리] |
*위 칼럼을 2011년 9월 12일 기고한 후 2011. 12. 31.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3(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증여 의제) 조문이 신설되어 2012. 1. 1.부터 시행되었습니다. 해당 조문의 신설 이유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소개되었습니다.
“1) 특수관계법인을 이용하여 부(富)를 이전하는 변칙적인 증여 사례를 방지하기 위하여 특수관계법인 간 일감 몰아주기를 통하여 발생한 이익을 증여로 의제하여 과세할 필요가 있음.
2)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일감을 받은 법인인 수혜법인의 사업연도를 기준으로 수혜법인과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비율이 일정 비율을 초과하는 경우 해당 수혜법인의 지배주주와 그 지배주주의 친족이 수혜법인의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계산한 이익을 증여받은 것으로 함.
3) 특수관계법인 간 거래를 통한 변칙적인 증여에 대하여 증여세를 부과하여 공평과세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됨.”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