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 변호사

김정현 변호사

문화/예술/콘텐츠의 결을 이해하는 조력자
예술가의 언어를 읽고, 법의 언어로 옮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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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변호사김정현 변호사2025-05-14 06:58

며칠 전, 의뢰인 한 분과 계약서를 검토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제 이야기 그 자체예요.”
몇 번이나 수정 끝에 완성된 문장을 한 줄 한 줄 짚어가시던 그 순간, 작업실의 공기조차 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종종 창작자들의말보다 앞선 말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업물 안에 이미 담긴 의도와 의미,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사람.
법률가로서 제가 해야 하는 일은 그 이야기를 법의 언어로 바꾸어 세상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고고미술사학 전공자에서 변호사로

저는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박물관에서 실습을 하고, 큐레이터 업무를 경험하며, ()학예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습니다.

이 자격을 얻기 위해선 단순히 시험만 통과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5일 기준 1년 이상 총 1,000시간 이상의 실무 경력이 있어야 하고, 학예사 시험은 예술사, 전시기획, 박물관학 등 분야별 이해가 고루 요구되는 쉽지 않은 시험입니다.

시험과 실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하는 이 과정을 수 년에 걸쳐 어렵게 해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모든 시간은 법조인이 된 지금의 저를 만드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문화예술을 직관과 감각이 아닌, 제대로 이해하고 구조화해서 설명하는 법을 익혔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법과 예술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

문화예술과 법은 매우 다른 언어를 사용합니다.
예술은 감성과 직관으로 감동을 주지만, 법은 그 감동이 왜 가치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화예술 사건을 다룰 때 저는 언제나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법정에서는 판사님과 아티스트 사이의 다리가 되어야 하고, 창작자와 일반 대중이나 기업 사이에서도, 상호 언어와 사고방식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문화예술 사건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작품의 배경, 창작자의 의도, 사회적 맥락, 업계의 흐름까지 모두 살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한 후 법적 쟁점으로 바꿔내고 설득해내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공력을 요구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큽니다.

 

뒤집힌 항소심, 함께 만든 증거

지금껏 제가 맡았던 사건들 중에는 1심에서 패소했다가 항소심에서 승소로 뒤집힌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했던 건 단순한 조문 적용이 아니라 작품이 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지를 입증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창작자와 긴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나누고, 작품이 지닌 창작성과 시대적 맥락, 표현 방식의 고유성을 하나하나 입증했습니다. 결국 법정은 그 과정을 이해했고, “창작물도, 창작자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저는 이 일을 단지전문 영역으로 넘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길에 대한 소명과 믿음이 생겼습니다.

 

법률가의 기준 - 삶을 지키는 일

저는 타인과 저를 비교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법조계 안에서는 승소율, 사건 규모 같은 수치로 성과를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제게 더 중요한 것은 의뢰인의 삶과 창작이 제대로 보호받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사건이 종결된 후 어떤 작가님께서내 마음을 정확히 읽어주셨다는 말씀을 해주셨을 때, 그 말이 가장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수많은 사건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왔지만 저는 그 사례들을 바깥에 드러내지 않는 편입니다. 창작자에게는법적 분쟁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호사의 성과보다, 의뢰인의 평온한 일상과 명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창작자의 언어를 지키는 법률가로

이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봅니다.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든 건 아마도 사람의 말과 작품, 그리고 그 삶 자체에 대한 존중이었을 겁니다. 저는 지금도 매 순간 내가 만든 언어가 누군가를 지켜주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창작자는 말보다 작업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법이라는 낯선 세계 앞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도록, 그 곁을 지키는 변호사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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