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5. 7. 18. 선고 2022다311736 판결

대법원 2025. 7. 18. 선고 2022다311736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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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시사항

[1] 강행법규에 반하지 않는 공제약정의 효력(유효) 및 이때 공제의 대상으로 약정하는 양 채권 사이에 견련성이 있어야 하는지 여부(소극) / 공제약정을 한 당사자 일방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견련성이 없는 양 채권 사이의 공제를 허용한 약정이 여전히 유효한지 여부(소극)

[2] 손해배상 예정을 약정한 채무자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 여부를 판단하는 법원이 고려하여야 할 사항

[3] 甲 주식회사가 乙 은행으로부터 건물을 임차하면서 임대차계약에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19조에 근거하여 임차인의 관리인이 계약을 중도에 해지하는 경우, 임차인은 위약벌 및 손해배상 예정액을 임대인에게 지급하여야 하고, 임대인은 이를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고 정하였는데, 그 후 甲 회사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되었고, 甲 회사의 관리인이 임대차계약을 해지한 사안에서, 관련 판결에서 10%로 감액된 손해배상 예정액은 공제약정에 따라 공제할 수 있으나, 위약벌은 임대차보증금과 견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甲 회사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이상 공제약정에 기하여 위약벌까지 공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는 강행규정에 반하지 않는 한 공제에 관한 약정을 할 수 있으므로, 공제 요건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공제 기준시점을 언제로 할 것인지, 공제의 의사표시가 별도로 필요한지 등을 자유롭게 정하여 당사자 사이에 그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때 당사자가 공제의 대상으로 약정하는 양 채권 사이에 반드시 어떠한 견련성이 있어야 한다고 볼 수도 없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이라고 한다) 제145조는, 회생채권자 또는 회생담보권자가 제한 없이 상계권을 행사함에 따라 회생계획에 의하지 않고 채무자로부터 우선하여 변제를 받음으로써 회생채권자 등 상호 간의 공평을 해하고 또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해 있는 채무자의 회생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회생채권자 등의 상계를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규정으로 강행규정에 해당한다. 원칙적으로 공제에는 상계 금지를 정한 채무자회생법 제145조를 비롯하여 상계적상, 상계의 기판력 등 상계에 관한 법률 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이로써 상계보다 강한 담보적 효력을 가진다. 상계와 공제가 복수 채권·채무의 상호 정산을 내용으로 하는 채권소멸의 원인이라는 유사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공제에 관하여 채무자회생법 제145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이유는, 공제의 대상이 되는 양 채권 사이에 견련성이 있다면 공제를 허용하더라도 회생채권자 등 상호 간의 공평을 해하지 않고, 오히려 공제에 관한 회생채권자 등의 정당한 기대를 보호하는 한편 채무자의 회생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보기도 어려워 채무자회생법 제145조의 취지에 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사자가 공제하기로 약정한 양 채권 사이에 견련성이 없더라도 그 약정 자체는 유효하지만, 어느 일방에 대하여 채무자회생법에서 정한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라면 견련성이 없는 양 채권 사이의 공제를 제한 없이 허용하여 채권자 상호 간의 공평을 해하는 것은 강행규정인 채무자회생법 제145조의 취지를 잠탈하는 결과가 되므로, 그 약정은 더 이상 유효하다고 볼 수 없다.

[2] 민법 제398조 제2항은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채무불이행의 경우에 채무자가 지급하여야 할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두는 것으로서, 손해의 발생사실과 손해액에 대한 증명곤란을 배제하고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여 법률관계를 간이하게 해결함과 함께 채무자에게 심리적으로 경고를 함으로써 채무이행을 확보하려는 데에 그 기능이나 목적이 있다.

이러한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은 국가가 당사자 사이의 실질적 불평등을 제거하고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계약의 체결 또는 그 내용에 간섭하는, 사적 자치의 원칙에 대한 제한의 한 가지 형태이다. 법원은 위 규정에 따라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한지와 그에 대한 적당한 감액의 범위를 판단할 때 사실심의 변론종결 당시를 기준으로 그사이에 발생한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이때 손해배상 예정을 약정한 채무자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되었다면,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 여부를 판단하는 법원으로서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경제적 지위, 계약의 목적, 손해배상액 예정의 경위와 거래관행뿐 아니라, 기록상 알 수 있는 채권자의 실제 손해액 또는 예상 손해액의 크기와 이에 대한 손해배상 예정액의 비율을 충분히 고려함으로써, 손해배상 예정을 약정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다른 회생채권자들 사이의 공평을 해하지 않고 그 예정액의 지급이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채무자에게 부당한 압박을 가하여 채무자의 회생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3] 甲 주식회사가 乙 은행으로부터 건물을 임차하면서 임대차계약에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19조에 근거하여 임차인의 관리인이 계약을 중도에 해지하는 경우, 임차인은 위약벌 및 손해배상 예정액을 임대인에게 지급하여야 하고, 임대인은 이를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고 정하였는데, 그 후 甲 회사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되었고, 甲 회사의 관리인이 임대차계약을 해지한 사안에서, 위 손해배상 예정액은 본질적으로 임대차계약과 관련하여 甲 회사가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乙 은행은 임대차계약의 해지로 인하여 향후 지급될 것으로 예상하였던 차임 상당액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건물을 다시 임대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등 상당한 재산상 손해를 입었음이 명백하고, 이는 미지급 차임, 관리비 등과는 구별되는 손해이며, 원래 약 24개월분의 차임 상당액으로 약정되었던 손해배상 예정액은 회생채권조사확정재판을 통해 그중 10%로 감액되었는데, 이는 임대차계약 체결 전후의 사정과 공제약정이 규정된 경위, 甲 회사와 乙 은행의 경제적 지위 등의 사정뿐 아니라 위와 같은 乙 은행의 실제 손해액 또는 예상 손해액까지 모두 고려된 결과로 정당하고, 乙 은행의 손해와 임대차보증금 사이에 견련성도 인정되므로, 그와 같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라면 공제약정에 따라 공제가 허용되어야 하고, 그러한 결과가 甲 회사의 다른 채권자들 상호 간 공평을 해하거나 甲 회사의 회생에 지장을 가져온다고 할 수도 없으나, 위 위약벌은 임대차계약에 기한 甲 회사의 손해배상의무와 상관없는 甲 회사의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벌에 해당할 뿐이어서 甲 회사가 반환받을 임대차보증금과 어떠한 견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甲 회사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이상 공제약정에 기하여 임대차보증금에서 위약벌까지 공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는 볼 수 없는데도, 이와 달리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참조판례

[1] 대법원 2024. 8. 1. 선고 2024다227699 판결(공2024하, 1574) / [2] 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5다209347 판결(공2018하, 1956), 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8다248855, 248862 전원합의체 판결(공2022하, 1659)

원고, 상고인

○○○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정행인 담당변호사 김정만 외 4인)

피고, 피상고인

△△△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세종 담당변호사 김영근 외 3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2022. 11. 23. 선고 2022나2016305 판결

주 문

원심판결 중 위약벌 공제로 인한 원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원고의 나머지 상고를 기각한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다음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에서)를 판단한다. 

1.  사안의 개요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원고는 토목건축공사업 등을 하는 회사로 2012. 7. 16. 유동성 위기 등을 이유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2회합128호로 회생절차개시신청을 하여 2012. 7. 23. 회생절차개시결정을 받았다. 위 회생절차가 진행된 결과 2012. 12. 21. 회생계획인가결정이, 2013. 1. 17. 회생절차종결결정이 각 내려졌다(이하 ‘종전 회생절차’라고 한다).

나.  원고는 2013. 11. 29. 피고와 사이에, 원고 소유이던 서울 종로구 (주소 생략) 토지 및 그 지상에 위치한 지하 3층, 지상 17층 규모의 건물(이하 ‘이 사건 건물’이라 한다)을 피고에게 매도함과 동시에 이를 임대차보증금 5,694,177,840원, 임대차기간 2013. 12. 4.부터 2023. 12. 3.까지로 정하여 원고가 임차하기로 약정하였다(이하 임대차 부분을 가리켜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라고 한다). 원고는 그 무렵 피고에게 위 임대차보증금을 지급하고(이하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이라고 한다), 이 사건 건물을 원고 본사 사옥으로 사용하여 왔다.

다.  이 사건 임대차계약 제19조 제1항에서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19조 또는 제335조에 근거하여 임차인의 관리인 또는 파산관재인이 본 계약을 중도에 해지하는 경우, 임차인은 ‘본 계약 해지 시점 당시의 월 임대료 × 24’로 계산된 위약벌을 임대인에게 지급하여야 하고, 임대인은 본 항에 따른 위약벌을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으며, 임차인은 이에 대하여 아무런 이의 없이 동의한다."라고, 같은 조 제2항에서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19조 또는 제335조에 근거하여 임차인의 관리인 또는 파산관재인이 본 계약을 중도에 해지하는 경우, 임차인은 본 조 제(1)항에 따른 위약벌 이외에 ‘본 계약 해지 시점 당시의 월 임대료 및 월 관리비 합계액 × 24’의 금액과 ‘본 계약 해지 시점부터 2차 임대차기간 종료일까지의 월 임대료 및 월 관리비 합계액’ 중 적은 금액으로 계산된 손해배상 예정액을 임대인에게 지급하여야 하고, 임대인은 본 항에 따른 손해배상 예정액을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으며, 임차인은 이에 대하여 아무런 이의 없이 동의한다."라는 내용을 각 규정하고 있다(이하 이 사건 임대차계약 제19조 제1항, 제2항을 ‘대상조항’이라고 하고, 그중 공제에 관한 부분만을 가리켜 ‘이 사건 공제약정’이라고 한다).

라.  원고는 2017. 9. 11. 서울회생법원 2017회합100149호로 회생절차개시신청을 하여 같은 해 10. 12. 회생절차개시결정을 받았고(이하 종전 회생절차와 구별하여 ‘이 사건 회생절차’라고 한다), 같은 날 선임된 원고의 관리인은 회생법원의 허가를 받아 2018. 4. 6.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이라고 한다) 제119조 제1항에 의하여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인 이 사건 임대차계약을 해지한 다음 2018. 8. 31. 피고에게 이 사건 건물을 인도하였다. 원고에 대하여 2018. 5. 24. 회생계획인가결정이, 같은 해 6. 25. 회생절차종결결정이 각 내려졌다.

마.  한편 피고는 이 사건 회생절차 진행 중인 2017. 11. 15. 이 사건 임대차계약 해지로 인한 장래 위약벌 및 손해배상금 합계 14,506,968,792원의 채권을 신고하였고, 이에 대하여 원고 관리인이 전부 이의함에 따라 피고는 서울회생법원 2018회확100011호로 회생채권조사확정재판을 신청하였다. 위 법원은 2020. 1. 16. 대상조항을 무효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다만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손해배상 예정액을 10%로 감액한다고 하면서, "피고의 원고에 대한 회생채권은 위약벌 6,301,177,176원과 손해배상 예정액 820,579,161원의 합계 7,121,756,337원임을 확정한다."라고 결정하였다(이하 위 위약벌과 손해배상 예정액을 ‘이 사건 위약벌’과 ‘이 사건 손해배상 예정액’이라고 한다).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서울회생법원 2020가합100265호로 이의의 소를 제기하였으나, 위 법원은 2020. 11. 18. 위 회생채권조사확정재판을 인가하는 판결을 하였고, 이에 대한 원고의 항소가 2021. 6. 17. 기각되어 위 판결이 그 무렵 그대로 확정되었다(서울고등법원 2020나2046494호, 이하 ‘관련 판결’이라고 한다).

바.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에서 차임 등을 공제한 나머지 1,324,640,605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고, 이에 대하여 피고는 관련 판결에서 인정된 위약벌 및 손해배상 예정액을 공제하면 원고에게 지급할 보증금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투었다.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고의 피고에 대한 청구는 모두 이유 없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가.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 종료된 이상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 5,694,177,840원에서 원고가 공제를 자인하는 미지급 차임, 관리비, 원상복구비용 등 4,369,537,235원을 공제한 나머지 1,324,640,605원(= 5,694,177,840원 - 4,369,537,235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건물 인도 완료 다음 날인 2018. 9. 1.부터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나.  원고는 2013. 1.경 종전 회생절차종결결정을 받은 후 2013. 11. 29. 이 사건 건물을 피고에게 매도하면서 같은 날 이 사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이러한 경위로 이 사건 임대차계약에 대상조항이 규정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사건 공제약정은 피고에게 공제권을 부여하면서 그 행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음이 명확하고, 이에 따라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에서 관련 판결에 따른 이 사건 위약벌 및 손해배상 예정액 합계 7,121,756,337원의 채권을 공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대상조항은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 해지될 경우 당사자의 손해배상책임 등을 정하는 규정으로 임대차관계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고, 이 사건 임대차계약에 포함되어 작성되어 있는 등 원고의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 반환 채권과 피고의 이 사건 위약벌 및 손해배상 예정액 채권 사이에는 상호 견련성이 인정된다. 이 사건 공제약정은 회생절차 관리인의 임대차계약 이행 내지 해지 선택권 자체를 박탈하거나 그 행사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인이 임대차계약의 해지를 선택하는 경우 발생하는 위약벌 등 채무를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고 정한 것일 뿐이고, 앞서의 이 사건 임대차계약 체결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대상조항에 포함된 이 사건 공제약정이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21조, 제145조 및 공서양속에 반한다고 볼 수도 없다.

다.  따라서 이 사건 공제약정에 따라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 1,324,640,605원에서 이 사건 위약벌 및 손해배상 예정액 합계 7,121,756,337원을 공제하면, 피고가 원고에게 반환할 임대차보증금은 남지 않는다.

3.  대법원의 판단 

가.  관련 법리

1)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는 강행규정에 반하지 않는 한 공제에 관한 약정을 할 수 있으므로, 공제 요건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공제 기준시점을 언제로 할 것인지, 공제의 의사표시가 별도로 필요한지 등을 자유롭게 정하여 당사자 사이에 그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다(대법원 2024. 8. 1. 선고 2024다227699 판결 참조). 이때 당사자가 공제의 대상으로 약정하는 양 채권 사이에 반드시 어떠한 견련성이 있어야 한다고 볼 수도 없다.

2) 채무자회생법 제145조는, 회생채권자 또는 회생담보권자가 제한 없이 상계권을 행사함에 따라 회생계획에 의하지 않고 채무자로부터 우선하여 변제를 받음으로써 회생채권자 등 상호 간의 공평을 해하고 또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해 있는 채무자의 회생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회생채권자 등의 상계를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규정으로 강행규정에 해당한다. 원칙적으로 공제에는 상계 금지를 정한 채무자회생법 제145조를 비롯하여 상계적상, 상계의 기판력 등 상계에 관한 법률 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이로써 상계보다 강한 담보적 효력을 가진다. 상계와 공제가 복수 채권·채무의 상호 정산을 내용으로 하는 채권소멸의 원인이라는 유사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공제에 관하여 채무자회생법 제145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이유는, 공제의 대상이 되는 양 채권 사이에 견련성이 있다면 공제를 허용하더라도 회생채권자 등 상호 간의 공평을 해하지 않고, 오히려 공제에 관한 회생채권자 등의 정당한 기대를 보호하는 한편 채무자의 회생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보기도 어려워 채무자회생법 제145조의 취지에 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사자가 공제하기로 약정한 양 채권 사이에 견련성이 없더라도 그 약정 자체는 유효하지만, 어느 일방에 대하여 채무자회생법에서 정한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라면 견련성이 없는 양 채권 사이의 공제를 제한 없이 허용하여 채권자 상호 간의 공평을 해하는 것은 강행규정인 채무자회생법 제145조의 취지를 잠탈하는 결과가 되므로, 그 약정은 더 이상 유효하다고 볼 수 없다.

3) 한편 민법 제398조 제2항은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채무불이행의 경우에 채무자가 지급하여야 할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두는 것으로서, 손해의 발생사실과 손해액에 대한 증명곤란을 배제하고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여 법률관계를 간이하게 해결함과 함께 채무자에게 심리적으로 경고를 함으로써 채무이행을 확보하려는 데에 그 기능이나 목적이 있다(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8다248855, 24886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러한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은 국가가 당사자 사이의 실질적 불평등을 제거하고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계약의 체결 또는 그 내용에 간섭하는, 사적 자치의 원칙에 대한 제한의 한 가지 형태이다. 법원은 위 규정에 따라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한지 여부와 그에 대한 적당한 감액의 범위를 판단할 때 사실심의 변론종결 당시를 기준으로 그사이에 발생한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5다209347 판결 등 참조). 이때 손해배상 예정을 약정한 채무자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되었다면,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 여부를 판단하는 법원으로서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경제적 지위, 계약의 목적, 손해배상액 예정의 경위와 거래관행뿐 아니라, 기록상 알 수 있는 채권자의 실제 손해액 또는 예상 손해액의 크기와 이에 대한 손해배상 예정액의 비율을 충분히 고려함으로써, 손해배상 예정을 약정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다른 회생채권자들 사이의 공평을 해하지 않고 그 예정액의 지급이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채무자에게 부당한 압박을 가하여 채무자의 회생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나.  앞서 본 사실관계를 이러한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본다.

1) 원고와 피고가 이 사건 임대차계약에 포함된 대상조항을 통해 일정한 경우에 원고가 피고에게 위약벌 및 손해배상 예정액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피고의 의사에 따라 원고가 반환받을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에서 피고가 지급받을 이 사건 위약벌 및 손해배상 예정액을 공제할 수 있다고 한 이 사건 공제약정은, 강행규정에 반하지 않는 한 유효하다. 그러나 원고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이상, 이 사건 위약벌 및 손해배상 예정액 채권이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 반환 채권과 견련성을 가지는지를 따져 보아 이 사건 공제약정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2) 먼저 이 사건 손해배상 예정액에 대하여 살펴본다. 임대차보증금은 임차인의 차임채무, 손해배상채무 등 임대차계약에 따른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담보하고(대법원 1988. 1. 19. 선고 87다카1315 판결, 대법원 2016. 7. 27. 선고 2015다230020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손해배상 예정액은 본질적으로 이 사건 임대차계약과 관련하여 원고가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사건 임대차계약은 원고의 종전 회생절차가 종결된 때부터 불과 10개월 후에 체결되었다. 당시 원고와 피고가 통상의 임대차계약보다 장기인 10년을 임대차기간으로 정하면서 대상조항을 규정한 것은, 이 사건 건물이 원고 본사 사옥으로 사용된다는 원고의 사정을 고려하면서도 동시에 쌍방 모두 임대차기간 중에 원고에 대해 다시 회생절차가 개시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피고의 귀책사유가 없음에도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2항에 근거하여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 해지될 수 있고, 그 경우 피고에게 증명하기 어려운 상당한 재산상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에 인식이 합치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사건 회생절차개시결정에 따라 선임된 원고 관리인이 이 사건 임대차계약을 해지한 것은 원래 약정한 임대차기간 10년 중 절반도 지나지 않은 때였고, 장기간 원고 본사 사옥으로 사용되어 온 지상 17층 규모의 이 사건 건물을 원고와의 임대차계약이 해지된 즉시 피고가 제3자에게 임대하는 것이 용이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피고는, 원고 관리인이 한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해지로 인하여 향후 5년 이상(임대차기간이 계속되는 동안) 지급될 것으로 예상하였던 차임 상당액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 사건 건물을 다시 임대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등 상당한 재산상 손해를 입었음이 명백하고, 이는 원고 스스로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것을 자인한 미지급 차임, 관리비 등과는 구별되는 손해이다. 원래 이 사건 임대차계약상 약 24개월분의 차임 상당액으로 약정되었던 손해배상 예정액은 관련 판결을 통해 그중 10%로 감액되었는데, 이는 앞서 본 이 사건 임대차계약 체결 전후의 사정과 이 사건 공제약정이 포함된 대상조항이 규정된 경위, 원고와 피고의 경제적 지위 등의 사정뿐 아니라 기록상 알 수 있는 위와 같은 피고의 실제 손해액 또는 예상 손해액까지 모두 고려된 결과로 정당하다. 나아가 피고의 손해와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 사이에 견련성도 인정되므로, 그와 같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라면 이 사건 공제약정에 따라 공제가 허용되어야 하고, 그러한 결과가 원고의 다른 채권자들 상호 간 공평을 해하거나 원고의 회생에 지장을 가져온다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원고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에도 이 사건 공제약정에 따라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에서 이 사건 손해배상 예정액을 공제할 수 있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3) 다음으로 이 사건 위약벌에 대하여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위약벌은 손해배상과 관계없이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벌로서 채무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해지는 것으로서 손해배상액의 예정과는 그 기능이 본질적으로 다르다(앞서 본 대법원 2018다248855, 24886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 사건 위약벌 역시 이 사건 임대차계약에 기한 원고의 손해배상의무와 상관없는 원고의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벌에 해당할 뿐이므로, 원고가 반환받을 임대차보증금과 어떠한 견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원고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이상 이 사건 공제약정에 기하여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에서 이 사건 위약벌까지 공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는 볼 수 없다.

다.  그럼에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에서 이 사건 손해배상 예정액뿐 아니라 위약벌까지도 모두 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 부분 원심의 판단에는 채무자회생법상 회생절차에서의 공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4.  결론

원심판결 중 위약벌 공제로 인한 원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원고의 나머지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대법관서경환
대법관노태악
대법관신숙희
주심대법관마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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