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2. 12. 15. 선고 2021도14234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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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검사 

변호인

법무법인 새시대 

담당변호사 임성훈 

원심판결

서울고등법원 2021. 10. 14. 선고 2021노415 판결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관련 법리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 참조). 범행 후 피해자의 태도 중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만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 사정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9도4047 판결 등 참조). 

그리고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로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경우에 피고인의 진술이 경험칙상 합리성이 없고 그 자체로 모순되어 믿을 수 없다고 하여 그것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직접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정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따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거나 직접증거인 피해자 진술과 결합하여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간접정황이 될 수 있다(위 2018도7709 판결 참조). 

2. 공소사실 및 제1심과 원심의 판단 

가.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2020. 4. 26. 16:00경 피고인의 주거지에서, 여자 친구인 피해자 공소외인(여, 가명, 27세)이 헤어지자고 하면서 짐을 싸 나가려고 하자 양손으로 피해자의 어깨를 밀어 그곳 침대에 넘어뜨린 후 피해자의 몸 위에 올라타 피해자의 양팔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피해자의 상의를 올려 가슴을 빨고 피해자의 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음부를 만지다가 피해자의 바지와 속옷을 벗기고 피해자의 음부에 피고인의 성기를 삽입하여 피해자를 강간(이하 ‘이 사건 범행’이라 한다)하였다. 

나. 제1심과 원심의 판단 

1) 피고인은 제1심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의 성관계는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자연스러운 묵시적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피고인의 구체적인 변소 내용은, 피고인과 피해자가 다툰 후 서로 침대 위에서 껴안고 있다가 피해자가 성관계를 수긍하는 태도를 보여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성관계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1심은, 피해자의 진술은 피해 경위에 관한 진술이 주요 부분에서 일관되고 사건 당시 피고인의 말이나 행동, 성적 접촉행위 부위나 방법, 순서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묘사를 하는 등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술하기 어려운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점, 피해자가 피해 직후 사건 현장에서 피고인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녹음파일 녹취록의 내용, 이 사건 이후 피고인과 피해자가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대화 내용 역시 피해자의 진술에 부합하는 점 등의 사정들을 들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2) 피고인은 제1심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유죄가 선고되자 원심에서는 피고인이 설령 성관계를 원치 않는 피해자와 관계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폭행이나 협박에 의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하여 강간을 하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원심은, 피해자의 진술은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내지 협박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나 묘사 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피고인은 연인 사이에서 종전과 유사하게 성관계를 다툼과 화해의 일환으로 생각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피고인과 피해자의 평소 관계나 이 사건 발생 당시 전후 상황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을 행사하였다는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면서 피해자의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가. 이 사건 범행 전의 상황에 관하여 

1) 원심은, 피고인이 피해자와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피해자에게 폭압적인 언행을 하여 왔다거나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제압당하여 온 사정은 보이지 않는 점, 이 사건 범행 직전의 상황을 보더라도, 피고인은 헤어지려는 피해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뿐 피해자에게 강한 유형력을 행사하였다는 정황은 보이지 않는바, 하루 이틀 전에도 피해자와 성관계를 한 사실이 있는 피고인이 유독 이 사건 성관계 당시에만 피해자에게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을 행사하면서까지 성관계를 할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사정 중 하나로 들었다. 

2) 그러나 피고인과 피해자가 연인관계였다거나, 이전에 다툼과 화해의 일환으로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는 사정을 들어 피해자가 이 사건 성관계를 용인하였거나 폭행⋅협박이 없었으리라는 막연한 추측 하에 피해자 진술 전체의 신빙성을 평가하여서는 아니 된다.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의하더라도 이 사건 성관계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동거하는 기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사건 발생 전날 절도신고 등으로 서로 심하게 다툰 직후였고 피해자가 피고인의 집에 임시로 놓아둔 짐을 가져가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더욱이 피해자는 이 사건 범행 당시 명시적으로 피고인에게 성관계를 거부하는 의사를 표시하였고, 피고인도 이 사건 범행 당시의 성관계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나. 이 사건 범행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1) 원심은, 피해자는 이 사건 범행 당시 성관계 과정을 설명하면서 육체적인 고통을 강하게 느꼈다는 진술은 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몸에 강압적인 성관계에서 생길 만한 멍이나 경미한 상처 등 반항의 흔적도 보이지 않으며, 성관계 도중의 자세나 상황에 비추어 피고인이 피해자를 억압하여 일방적으로 성관계를 하였는지도 의문이 든다는 점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사정으로 들었다. 

2) 그러나 피고인은 184cm, 70kg이고, 피해자는 165cm, 43kg로서 피해자는, 피고인이 신체조건의 차이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밀어 침대 위로 넘어뜨린 후 몸부림치는 피해자의 양팔을 붙잡아 옷을 벗기고 피해자의 몸 위에서 누르는 방법으로 제압하였다고 일관된 진술을 하였다. 위 행위는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폭행⋅협박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하고, 나아가 피해자가 성관계 후 육체적인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거나 성관계 도중의 자세에 비추어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강간죄에서의 폭행⋅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다. 이 사건 범행 이후의 상황에 대하여 

1) 원심은, 피해자는 이 사건 범행 직후 증거를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몰래 휴대전화 녹음기를 켜고 피고인과의 대화를 녹음했다고 하면서도, 그 대화에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를 하였다고 피고인을 추궁할 뿐 피해자의 저항 여부나 피고인의 유형력 행사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고 절도신고 사건 등 다른 내용의 대화가 상당 부분 차지하는 사정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사정으로 들었다. 

2)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는 체격 차이로 인한 힘에 제압당하는 형태로 폭행을 당하였는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를 하였다는 피해자의 진술에는 위와 같은 이 사건 폭행에 관한 진술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욱이 사건 발생 직후 서로의 행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당사자 사이에서만 이루어진 대화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구체적인 유형력의 행사 내용을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여 이를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만한 사유로 삼기는 어렵다. 나아가 피고인과 다툼의 주요한 원인은 절도신고 사건이었고 헤어지려는 마음에 짐을 가지고 나오려는 상황이었으므로 성관계 직후 대화 내용 상당 부분이 성관계가 아닌 위 대화 내용이라는 사실이 이례적이거나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도 보이지 않는다. 

라. 고소 경위에 관하여 

1) 원심은, 피해자는 피고인과의 교제와 이별 과정에서 피고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이 사건 범행이 발생한 무렵에는 피고인의 피해자에 대한 절도신고까지 더하여져 자신이 거부 의사를 표현했는데도 피고인이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성관계를 한 것이 강간이라 생각하여 이 사건 고소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는 점 또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사정으로 들었다. 

2) 그러나 원심의 인정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범행 직후의 대화 및 같은 날 몇 시간 후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에서 ‘하지 말라고 했잖아’, ‘넣지 말라고 했잖아’, ‘억지로 했어’라는 말이 반복되었다. 또한 원심이 인정한 다음 날 두 사람의 통화 내용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이 성관계에 대하여 변명하면서 지속적으로 대화를 요청하자 피해자가 반성하지 않는 피고인의 태도를 지적하며 화를 내는 상황이 확인되고, 이에 피해자는 이 사건 범행 발생일로부터 이틀 후에 곧바로 피고인을 강간 혐의로 고소하였다. 피해자의 위와 같은 행동과 고소 경위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강간 사실 자체가 아닌 다른 부수적 사유에 의하여 고소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은 합리적이지 않다. 

마. 소결론 

위와 같은 사정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해자의 진술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그런데도 원심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기에 부족하거나 양립 가능한 사정, 혹은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이 없는 부수적 사정만을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여 그 증명력을 배척하고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검사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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