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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한국 특허법의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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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핵심 요약>

한국의 특허제도는 일제강점기의 타율적 이식에서 시작되었으나, 해방 후 미국법의 영향을 받아 기틀을 잡았습니다. 특히 1980년대 미국의 강력한 통상 압력은 물질특허 도입과 국제 조약 가입을 이끌어내며 한국 특허법이 현대적인 국제 표준에 맞게 급격히 선진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제도적 공백과 의용(依用)

  • 도입 이전: 19세기 말까지 현대적 제도가 없어 기술은 가업 승계나 비밀 유지에 의존했습니다.
  • 일제강점기: 1908년 한국특허령을 시작으로 일본 특허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이는 일본의 특허권을 한국까지 확대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며, 일본어 출원 강제로 인해 한국인의 활용도는 매우 낮았습니다.

2. 해방 후와 미군정기: 미국법의 유입 (1945~1946)

  • 기틀 마련: 1946년 미군정 하에서 최초의 특허법(군정법령 제91호)이 제정되었습니다.
  • 특징: 특허권 존속기간(17년), 식물특허, 디자인특허 포함 등 미국 특허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3. 특허 제도의 독자적 정착 (1960~1970년대)

  • 체계화(1960): 실용신안·디자인을 분리하고 특허 고유의 요건을 정리했습니다. 신규성 상실의 예외, 선사용자의 실시권 등 발명가 보호 규정이 도입되었습니다.
  • 발전(1973): 외국 간행물에 의한 신규성 판단, 국내 수요 대응을 위한 강제실시권, 공무원 직무발명 규정 등이 추가되었습니다.

4. 1980년대: 미국의 통상 압력과 국제화

  • 배경: 미국의 통상법(제301조) 및 국제무역위원회(ITC)를 통한 지식재산권 보호 요구가 거세졌습니다.
  • 국제 조약 가입: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1979), 파리협약(1980), 특허협력조약(PCT, 1982)에 차례로 가입하며 글로벌 기준을 수용했습니다.
  • 제도 정비: 다항제 채택, 출원 조기공개제도, 내국민 대우 및 우선권 주장 규정이 마련되었습니다.

5. 주요 기술 영역의 확대와 물질특허 (1986~)

  • 물질특허 도입: 1986년 개정을 통해 의약·화학물질에 대한 물질발명이 특허 대상으로 포함되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강한 정책적 영향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 컴퓨터 관련 발명: 미국의 판례(Diamond v. Diehr)를 참고하여 소프트웨어 및 컴퓨터 관련 발명의 심사 기준이 정립되었습니다.

* 본 법률위키는 저자의 허락을 받아 『지식재산권법』(제6판)의 원문을 수록하였습니다. 본 저서의 전체 목차와 체계적인 분류는 [지식재산권법] 목차 및 전체 가이드: 정상조·박준석 공저 (제6판) 페이지에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까지 근대적인 의미의 특허제도가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기술과 발명이 제도적으로 보호받기 어려웠고 비밀유지와 가족 단위의 구전 등의 자구책에만 의존해 오던 실정이었다. 그 후 개화기를 맞아서 지석영 선생과 같은 선각자들이 근대적인 특허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였지만, 근대적인 기술과 제도에 대한 국내의 검토와 수용의 충분한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일본이 한국까지 지배하게 됨에 따라서 특허제도에 있어서도 일본의 특허법이 한국에 의용 및 시행되게 되었다. 즉, 1908년 8월 12일에 한국특허령(칙령 제196호)에 의해서 그 당시의 일본 특허법이 한국에 의용되기 시작했고, 1910년 8월 29일부터는 한일합방에 의해서 한국 특허령도 폐지되고 일본 특허법이 한국에 곧바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일본 특허법이 한국에 의용 및 시행된 것은 일본이 자국의 발명을 보호하고 자국의 특허권의 효력을 한국에까지 확대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국의 기술과 발명의 보호와는 무관한 것이었고, 특히 한국인도 일본에 가서 일본어로 특허출원을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한국인에 의한 특허제도의 활용도는 아주 낮은 실정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청은 조선정부 광공국에 소위 특허원을 설립하고 특허원으로 하여금 특허, 상표, 디자인, 실용신안 및 저작권에 관한 모든 업무를 관장하도록 하였고, 특허원은 미군정청과의 협력 하에 미국 특허법과 일본 특허법을 참고해서 1946년에 특허법(군정법령 제91호)을 제정하였다. 이렇게 해서 제정된 1946년 특허법은 특허와 실용신안뿐만 아니라 디자인 특허(Design patents)까지 함께 규정하고 있다는 점과 특허제도 가운데 식물특허제도도 포함하고 있고 특허권의 존속기간도 미국 특허권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17년으로 규정되어 있었던 점에서 미국 특허법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현재의 우리 특허법 윤곽이 형성된 것은 1960년 군사혁명 이후 실용신안과 디자인 특허를 제외하고 특허제도에 대해서만 규정한 특허법이 제정된 이후부터이다. 1960년에 새로이 제정된 특허법은 특허받을 수 있는 발명의 개념과 요건을 새로이 정리하고 체계적인 규정들을 둠과 동시에,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자가 시험이나 발명전시회출품 등으로 인해서 신규성을 상실한 경우에 그러한 발명자를 보호할 수 있는 예외규정과 특허출원 당시에 동일한 발명을 선사용하고 있는 선의의 발명자가 있는 경우에 그러한 선사용 발명자에게 실시권을 인정해 주는 규정 등을 두게 되었다. 특허법은 1963년에 보완적인 개정을 거쳐서 1973년에는 신규성의 판단자료로서 외국간행물에 게재된 발명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특허권자의 독점에 의해서 국내시장에서의 수요에 응하지 못할 때에는 제3자에게 강제실시권을 허락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였으며, 또한 공무원의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과 관리를 위한 근거규정을 두는 내용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우리 특허법은 60년대 이래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오다가 8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는 미국의 통상압력의 일환으로 특허법 개정의 요구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국내적으로도 한국 기업들의 첨단기술의 개발을 조장하기 위한 법적 환경을 선진화하고 국내기업들의 국제적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특허법이 대폭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의 특허법 이론이 많이 소개되어 우리 특허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의 영향은 크게 나누어서 한미 쌍방적인 관계에서의 미국의 영향과 국제적인 다자조약 또는 다자협상에서의 미국의 영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미 쌍방적인 관계에서의 미국의 영향이라고 함은 미국의 연방관세법 또는 통상법에 그 법적 근거를 둔 미국의 통상압력23)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컨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는 세관 절차에 있어서 미국으로 수입되어 오는 외국상품이 미국에 등록된 특허권, 저작권, 상표권, 반도체회로배치설계권(mask work)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당해 상품의 통관절차를 중지하거나 수입을 금지할 것을 명할 수 있다.24) 이러한 관세법 절차는 한국 기업들에 대하여 여러 차례 원용된 바 있는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결정에 관한 통계를 분석해 보면 약 30%의 사건에서만 지식재산권 침해사실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어서 미국 기업들로서는 상당히 높은 성공확률과 신속성(1년 미만의 결정 시한)에 힘입어서 위 관세법 절차를 활발히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25) 또한 미국 통상법은 미국통상대표(USTR)에게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외국의 지식재산권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고 실제로 1985년도 이래로 우리나라의 지식재산권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26) 즉 미국 통상법 제301조는 특정 외국의 정책이나 관행이 특정 통상협정하의 미국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미국의 상업을 제한한다고 미국통상대표가 판단한 경우에는 일정한 무역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27) 통상법의 그러한 규정을 배경으로 하여, 미국통상대표는 한국 정부에 대하여 저작권법을 비롯한 지식재산권법을 개정하고 한국에서 미국인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해 왔다.

23) R. Michael Gadbaw, Intellectual Property and International Trade, 22 Vanderbilt Journal of Transnational Law 223(1989). 
24) 19 U.S.C. §1337.
25) Ashoka Mody, “New International Environment for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in Science, Technology, and Economic Performance (Edited by F.W. Rushing and C.G. Brown, Westview Press, San Francisco, 1990), p. 222. 
26) Patricia I. Hansen, “Defining Unreasonableness in International Trade: Section 301 of the Trade Act 1974”, 96 Yale L.J. 1122, 1145(1987). 
27) 19 U.S.C. §2411

이러한 원인과 배경 하에서 한국은 1979년에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가입하고 1980년에는 ‘산업재산권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28)에 가입하였다. 파리협약 등에의 가입에 따라 1981년에 국내법을 정비하기 위한 목적에서 청구범위 기재에 있어서의 다항제 채택, 출원 조기공개제도의 채택, 그리고 파리협약 회원국 국민에 대한 내국민대우와 우선권주장에 관한 규정을 두는 개정이 이루어졌다. 곧이어 1982년에 특허협력조약에의 가입에 따라서 국제출원절차에 관한 규정을 두기 위한 개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986년 12월 31일에 개정된 우리 특허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국 특허법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바 그중 가장 특기할 점은 특허받을 수 있는 발명의 범위 가운데 의약 및 화학물질에 대한 물질발명이 포함된 것이다.29) 물질발명에 대한 특허는 물론 유럽에서도 인정되는 것이지만, 우리 특허법의 개정은 미국의 특허법정책 또는 특허권에 관한 미국통상정책의 영향을 받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가령 개정특허법 발효일 당시 한국에 계류 중인 미국인의 제법특허출원은 물질특허청구를 포함하도록 보정신청할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의 한미조약이 체결된 바 있다. 물질특허와 마찬가지로 특허대상에 있어서 컴퓨터관련발명에 관한 특허법적 보호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우리 특허청이 1984년에 마련한 ‘컴퓨터관련 발명의 심사기준’은 다분히 미국 판례 Diamond v. Diehr30)에서 제시된 기준과 명세서 해석에 관한 종합적 해석법 등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8) Paris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Industrial Property, 1980.4.14. 다자조약 제707호. 
29) 1986. 12. 31. 개정 특허법 (법률 제3891호).
30) 450 U.S. 175, 67 L.Ed.2d 155 (1981).

 

*출처: 정상조, 박준석,『지식재산권법』 (제6판, 홍문사, 2024년) 제2장 특허법Ⅰ. 특허법의 연혁  2. 한국 특허법의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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