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분석] 기능적 형태는 디자인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가? – 비상 게이트 힌지 판례 분석(특허법원 2021허3857 판결)
디자인보호법의 근본 취지는 제품 외관의 독창성을 보호하여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있다. 따라서 물품의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즉 기능 구현에만 초점을 맞춘 필연적 형태는 디자인의 차별성을 결정하는 외관상 특징으로 보기 어렵다. 우리 디자인보호법 역시 오로지 기능 확보에 필수불가결한 형상만으로 이루어진 디자인은 등록 받을 수 없다고 명시한다(디자인보호법 제34조 제4호). 대법원 또한 양 디자인의 공통되는 부분이 물품의 기능을 확보하는 데에 불가결한 형상인 경우에는 그 중요도를 낮게 평가하여야 하므로 이러한 부분들이 유사하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양 디자인이 서로 유사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 하고 있다(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후1710 판결 등 참조).
디자인보호법 [시행 2024. 8. 7.] [법률 제20200호, 2024. 2. 6., 타법개정] 제34조(디자인등록을 받을 수 없는 디자인)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디자인에 대하여는 제33조에도 불구하고 디자인등록을 받을 수 없다. 1. 국기, 국장(國章), 군기(軍旗), 훈장, 포장, 기장(記章), 그 밖의 공공기관 등의 표장과 외국의 국기, 국장 또는 국제기관 등의 문자나 표지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디자인 2. 디자인이 주는 의미나 내용 등이 일반인의 통상적인 도덕관념이나 선량한 풍속에 어긋나거나 공공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디자인 3. 타인의 업무와 관련된 물품과 혼동을 가져올 우려가 있는 디자인 4. 물품의 기능을 확보하는 데에 불가결한 형상만으로 된 디자인 |
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후1710 판결 디자인의 유사 여부는 이를 구성하는 각 요소를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대비할 것이 아니라 그 외관을 전체적으로 대비 관찰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이한 심미감을 느끼게 하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고, 그 지배적인 특징이 유사하다면 세부적인 점에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유사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 경우 디자인이 표현된 물품의 사용 시뿐만 아니라 거래 시의 외관에 의한 심미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한편 양 디자인의 공통되는 부분이 물품의 기능을 확보하는 데에 불가결한 형상인 경우에는 그 중요도를 낮게 평가하여야 하므로 이러한 부분들이 유사하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양 디자인이 서로 유사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물품의 기능을 확보할 수 있는 선택 가능한 대체 형상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물품의 기능을 확보하는 데에 불가결한 형상이 아니므로, 이 경우 단순히 기능과 관련된 형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디자인의 유사 여부 판단에 있어서 그 중요도를 낮게 평가하여서는 아니 된다. |
하지만 동일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선택지가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특정 기능과 연관되더라도 디자이너의 창작이 개입된 부분으로, 일반 수요자에게 미적인 감각을 일으킬 수 있다면 디자인보호법의 보호 대상이 된다. 기능적으로 우수하면서도 심미적으로 뛰어난 제품들이 기능적 부분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합리를 막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물품의 기능을 확보할 수 있는 선택 가능한 대체 형상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물품의 기능을 확보하는 데에 불가결한 형상이 아니므로, 이 경우 단순히 기능과 관련된 형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디자인의 유사 여부 판단에 있어서 그 중요도를 낮게 평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후1710 판결 등 참조).
'비상 게이트 힌지' 관련 특허법원 판결은 이러한 기능적 형상의 보호 범위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다.
#사건의 개요
A는 2019년 1월 25일 '철도용 비상 게이트 힌지' 디자인을 출원하여 같은 해 8월 16일 디자인권을 등록했다. 그러자 동종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경쟁업체 B가 2020년 1월 31일 A의 디자인에 대해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하며 법적 분쟁이 시작되었다.
#등록 무효를 주장한 B의 논리
B의 핵심 주장은 A의 등록디자인이 기존에 공개된 선행디자인 1과 유사하여 신규성이 없거나, 통상의 디자이너가 선행디자인들을 조합하여 쉽게 만들 수 있는 수준(디자인보호법 제33조 제1항 제3호 또는 같은 조 제2항에 해당)이므로 등록이 무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자인보호법 [시행 2024. 8. 7.] [법률 제20200호, 2024. 2. 6., 타법개정] 제33조(디자인등록의 요건) ① 공업상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디자인에 대하여 디자인등록을 받을 수 있다. 1. 디자인등록출원 전에 국내 또는 국외에서 공지(公知)되었거나 공연(公然)히 실시된 디자인 2. 디자인등록출원 전에 국내 또는 국외에서 반포된 간행물에 게재되었거나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공중(公衆)이 이용할 수 있게 된 디자인 3. 제1호 또는 제2호에 해당하는 디자인과 유사한 디자인 ② 디자인등록출원 전에 그 디자인이 속하는 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따라 쉽게 창작할 수 있는 디자인(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디자인은 제외한다)은 제1항에도 불구하고 디자인등록을 받을 수 없다. 1. 제1항제1호ㆍ제2호에 해당하는 디자인 또는 이들의 결합 2. 국내 또는 국외에서 널리 알려진 형상ㆍ모양ㆍ색채 또는 이들의 결합 |
이 사건 등록디자인 | 선행 디자인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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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선행디자인 1과의 유사성 주장
- A의 디자인이 선행디자인 1과 다른 점(상부면의 돌출부, 중앙의 걸림 쇠)은 힌지의 회전 각도를 180°로 제한하는 기능적 장치에 불과하다. 또한 정면이나 상면 등 특정 각도에서만 관찰되므로 디자인 전체의 인상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 두 디스크 직경의 차이로 인해 생긴 단차 역시 흔한 창작 기법을 응용한 것에 불과하다.
② 창작 용이성 주장
결론적으로 A의 디자인은 통상의 디자이너가 선행디자인 1이나, 선행디자인 1과 다른 공지 디자인을 결합하여 용이하게 창작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특허법원의 판결 (특허법원 2022. 2. 11. 선고 2021허3857 판결)
특허법원은 B의 주장을 모두 기각하고 A의 디자인권이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① 선행디자인 1과의 비유사성 인정
A의 등록디자인은 선행디자인 1과 대비할 때 돌출부와 걸림 쇠의 형상이나 단차의 형상 등에 있어 심미적으로 차이가 존재하여, 선행디자인 1과 유사하지 아니하다. 양 디자인의 차이점으로 볼 수 있는 돌출부와 걸림 쇠의 형상이나 단차의 형상은 물품의 기능과 관련된 형상이라고 하더라도 물품의 기능을 확보하는 데에 불가결한 형상이라고 볼 수 없다.
② 창작 용이성 불인정
A의 등록디자인은 통상의 디자이너가 선행디자인 1에 따르거나 선행디자인 1과 공지디자인의 결합에 따라 쉽게 창작할 수 있는 디자인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A의 등록디자인은 선행디자인 1과는 상이한 미적 느낌과 인상을 불러일으키고, 선행디자인 1과 대비하여 다른 미감적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기능적 변형에 불과하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으며, A의 등록디자인이 창작수준이 낮은 디자인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어떠한 사유도 구체적으로 증명되지 못하고 있다.
특허법원 2022. 2. 11. 선고 2021허3857 판결 판시 요지 (1) 이 사건 등록디자인과 선행디자인 1은 모두 ‘비상 게이트 힌지’에 관한 것으로서, 양 디자인의 대상물품은 그 용도 및 기능이 동일한 물품에 해당한다. 이 사건 등록디자인과 선행디자인 1은 공통점 부분들 즉 전체적으로 고정디스크, 상부·중부·하부 디스크, 캡디스크가 순차 배치되어 있고, 중부 디스크에 상·하부 스프링이 있으며, 그 상·하부 스프링의 바깥 부분에 2개의 샤프트가 형성되어 있는 점만을 놓고 보면, 어느 정도 유사한 미적 느낌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상단의 고정디스크의 형상에 관한 차이점 ㉮ 부분 즉 이 사건 등록디자인은 상부면 한쪽 측에 돌출부가 형성되고 중앙에 걸림 쇠가 형성되어 있으나 선행디자인 1에는 그러한 돌출부와 걸림 쇠의 형상이 없는 점과, 하단의 캡디스크의 형상에 관한 차이점 ㉯ 부분 즉 이 사건 등록디자인은 큰 직경의 디스크와 작은 직경의 디스크 간에 큰 단차가 형성되어 있으나 선행디자인 1에는 그러한 단차가 형성되어 있지 아니한 점까지 보태어 전체적으로 대비·관찰한다면, 이 사건 등록디자인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행디자인 1과는 상이한 미적 느낌과 인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이 사건 등록디자인은 선행디자인 1과 유사하지 아니하다. (2) 원고는, 통상의 디자이너가 선행디자인 1에 따르거나 선행디자인 1과 공지디자인의 결합에 따라 이 사건 등록디자인을 쉽게 창작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와 같은 용이 창작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주장사유로 선행디자인 1과 사이에 차이점 ㉮ 부분을 가져오는 이 사건 등록디자인의 ‘상단 고정디스크에 형성된 돌출부와 걸림 쇠’는 다른 미감적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기능적 변형에 불과하다는 점과, 선행디자인 1과 사이에 차이점 ㉯ 부분을 가져오는 이 사건 등록디자인의 ‘하단 캡디스크에 형성된 단차’는 흔한 창작수법에 의한 변경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등록디자인의 ‘상단 고정디스크에 형성된 돌출부와 걸림 쇠’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행디자인 1과는 상이한 미적 느낌과 인상을 불러일으킨다고 봄이 타당함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고, 이와 다른 전제에서 선행디자인 1과 대비하여 다른 미감적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기능적 변형에 불과하다고 볼 만한 아무런 자료도 없다. 또한 이 사건 등록디자인의 ‘하단 캡디스크에 형성된 단차’가 통상의 디자이너에 흔한 창작수법에 의한 변경에 불과하다고 볼 만한 사정에 관해서도 원고의 아무런 주장·증명이 없다. 이처럼 이 사건 등록디자인이 창작수준이 낮은 디자인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어떠한 사유도 구체적으로 증명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원고의 위 주장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
#시사점
이 판례는 디자인의 기능적 요소에 대한 중요한 법리를 재확인한다. 어떤 부분이 기능적 목적을 갖더라도, 그것이 기능을 구현할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고 그 자체로 독창적인 심미감을 제공한다면, 디자인보호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기능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창작자의 권리를 폭넓게 인정하려는 사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