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방위 상황 - 현재의 부당한 침해
정당방위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정당방위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 침해
(1) 사람의 침해
침해란 법익에 대한 공격이나 위태화로 이해되는 인간의 행태이다. 따라서 법인에 의한 침해는 인정될 수 없다. 여기서 침해는 인간의 행위로서의 성질을 가져야 하므로(행위개념에 적합한 인간행위) 반사적ㆍ무의식적 행동 또는 동물, 사물, 혹은 자연현상에 의한 침해는 이에 포함되지 않고, 긴급피난의 대상이 될 뿐이다. 따라서 소위 대물방위는 불가능하고, 긴급피난만이 가능할 뿐이다.
다만 사람이 동물을 침해의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가능하다. 즉 동물의 공격이라도 사육주의 고의ㆍ과실로 공격이 야기되었다면 사육주의 고의ㆍ과실 있는 침해행위에 대한 정당방위가 인정된다. 예컨대 ① 이웃집 사람의 사주를 받은 맹견이 달려 나와 甲의 애완견을 물려고 하여 甲이 몽둥이로 그 맹견을 후려쳐 다치게 한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또한 ② 사육주의 과실로 허술하게 묶여있던 이웃집 맹견이 달려 나와 사람을 물려고 하여 甲이 그 맹견을 사살한 행위 역시 정당방위로 평가될 수 있다.
(2) 침해의 방법
침해는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행위이든, 또는 책임 없는 행위에 의한 것이든 불문한다. 또한 작위의무가 있고 그 의무의 불이행이 가벌적일 때에는 부작위에 의한 침해(ex. 퇴거불응)가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한 계약상의 채무불이행의 경우에는 가벌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정당방위를 할 수 없다.
가령 임대차기간이 만료되었는데도 명도를 하지 않자 임대인 甲은 명도소송을 제기하였고, 승소하였으나 그래도 퇴거하지 않자 판결문정본을 보여주면서 집기와 비품을 들어 낸 경우 임차인이 퇴거하지 않는 것은 부작위로서 단순한 계약상의 채무불이행이라고 할 것이므로 가벌성이 인정되지 않고, 따라서 정당방위의 요건인 ‘침해’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甲에게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는다.
2. 침해의 현재성
(1) 현재의 침해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현재의 침해라 함은 법익에 대한 침해가 계속되고 있거나 급박한 상태에 있는 경우를 의미하므로, 과거의 침해나 장래에 발생할 침해를 이유로 하는 정당방위는 원칙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
따라서 침해행위에서 벗어난 후 분을 풀려는 목적에서 나온 공격행위나(대법원 1996. 4. 9. 선고 96도241 판결), 피해자가 손에 과도를 들고 있던 것을 피고인이 손을 쳐서 칼을 땅에 떨어뜨리게 한 다음 이를 주워 오른손에 잡고 피해자의 가슴을 찌른 행위(대법원 1989. 3. 14. 선고 89도94 판결)는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
(2) 침해가 급박한 상태이면 인정되므로 반드시 침해행위가 범죄 실행의 착수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 아니며, 범죄의 기수 이후라 하더라도 침해행위가 지속되고 있으면 현재의 침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도 『'침해의 현재성'이란 침해행위가 형식적으로 기수에 이르렀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침해상황이 종료되기 전까지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일련의 연속되는 행위로 인해 침해상황이 중단되지 아니하거나 일시 중단되더라도 추가 침해가 곧바로 발생할 객관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중 일부 행위가 범죄의 기수에 이르렀더라도 전체적으로 침해상황이 종료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0도6874 판결). 이를 나누어서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A. 침해행위가 실행에 착수되기 직전: 침해행위가 실행에 착수되기 직전이라도 방어를 지체하면 방어가 곤란해지는 경우에는 현재성이 인정된다. 따라서 부당한 침해가 임박한 상태에 있으면 정당방위를 할 수 있다(ex. 흉기를 집어 들었을 때 또는 권총에 총알을 장전하고 있을 때).
B. 침해행위가 기수에 이른 때: 범죄가 이미 형식적인 기수에 달한 후라 할지라도 법익침해가 현장에서 계속되고 있으면 현재성이 인정된다(ex. 기수직후의 절도범을 현장에서 추격하여 도품을 탈환한 경우 정당방위 인정(자구행위나 정당행위로 보는 견해도 있음).
C. 계속범의 경우: 위법상태가 제거될 때까지 침해의 현재성이 있다. 예컨대 퇴거불응죄의 경우 퇴거요구시부터 퇴거시까지 침해의 현재성이 인정된다.
(3) 침해의 현재성은 방위행위시가 아니라 침해행위시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장래의 침해를 예견한 방위조치(전기철조망 설치 등)에 대해서는 침해행위가 개시되거나 진행 중인 때에만 방위효과가 나타나므로 침해가 행해지는 시점에서 침해의 현재성이 인정되어 정당방위가 성립한다.
(4) 한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장래에 발생할 침해를 이유로 하는 정당방위는 원칙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데, 관련하여 예방적 정당방위가 가능한지가 문제된다. 즉 과거에 계속적으로 침해가 있었고 미래에도 침해가 반복될 위험이 있는 공격에 대한 정당방위가 가능한가 하는 것이 예방적 정당방위의 문제이다. 판례는 ‘의붓아버지 살해사건(대법원 1992. 12. 22. 선고 92도2540 판결)’에서 반복적 위험을 이유로 침해의 현재성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통설은 제21조의 입법취지에 반하고, 자기방어권의 지나친 확대가 야기되므로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3. 침해의 부당성
부당한 침해, 즉 위법한 침해여야 한다. 위법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는 (긴급피난이 가능함은 별론으로 하고) 그 개념상 정당방위는 성립할 수 없다. 대법원도 『어떠한 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되려면 그 행위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서 상당성이 있어야 하므로, 위법하지 않은 정당한 침해에 대한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아니하고, 방위행위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것인지 여부는 침해행위에 의해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 정도, 침해의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과 방위행위에 의해 침해될 법익의 종류, 정도 등 일체의 구체적 사정들을 참작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3. 11. 13. 선고 2003도3606 판결)고 판시하고 있다.
이러한 침해의 부당성은 위법성을 의미하며 형법적 불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법질서전체를 기준으로 파악해야 하는 포괄적ㆍ일반적 위법개념이다. 따라서 과실범처벌규정이 없는 과실행위와 같이 구성요건해당성이 없는 침해도 객관적으로 위법성이 인정되면 정당방위가 가능하다(ex. 과실절도, 과실손괴 등). 그리고 공격이 유책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책임무능력자(형사미성년자, 정신병자)의 위법한 공격에 대하여도 정당방위가 가능하다. 그러나 적법한 침해, 즉 정당방위ㆍ긴급피난에 대한 정당방위는 불가능하고, 긴급피난만이 가능하다. 법령에 의한 공무원의 직무집행행위, 징계권자의 징계행위 등도 그 행위 자체에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수인의무가 존재하므로 정당방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대법원 2002. 5. 10. 선고 2001도300 판결 현행범인으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관들이 동행을 거부하는 자를 체포하거나 강제로 연행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그 체포를 면하려고 반항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에게 상해를 가한 것은 불법 체포로 인한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 |
대법원 2000. 7. 4. 선고 99도4341 판결 경찰관의 행위가 적법한 공무집행을 벗어나 불법하게 체포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 그 체포를 면하려고 반항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에게 상해를 가한 것은 불법 체포로 인한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 *사실관계 경찰관 乙과 丙은 112 경찰차로 순찰을 돌던 중 교통사고를 낸 차량이 도주하였다는 무전연락을 받고 주변을 수색하다가 약 10분이 경과한 후 교통사고가 발생한 지점으로부터 약 1㎞ 떨어져 있는 장소에서 범퍼 및 펜더 부분의 파손상태로 보아 사고차량으로 인정되는 차량을 발견하였다. 경찰관 乙과 丙은 운전자 甲이 자동차에서 내리자 甲에게 검문에 응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甲은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경찰관들은 甲을 현행범으로 간주하고 긴급체포하여 파출소로 연행하려고 다짜고짜 甲을 강제로 순찰차에 태우려 하자, 甲은 격렬하게 저항하며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팔꿈치와 손으로 경찰관들의 가슴부분을 밀어 넘어뜨려서 乙과 丙에게 상해를 입혔다. |
대법원 2006. 9. 8. 선고 2006도148 판결 (변호사 공무집행방해사건) 검사가 참고인 조사를 받는 줄 알고 검찰청에 자진출석한 변호사사무실 사무장을 합리적 근거 없이 긴급체포하자 그 변호사가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위 검사에게 상해를 가한 것이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사실관계 변호사 甲은 위증교사, 위조증거사용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2002. 11. 25.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당시 이 사건의 공판검사이던 A는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후, 위 무죄가 선고된 공소사실에 대한 보완수사를 한다며 甲의 변호사사무실 사무장이던 乙에게 2003. 1. 3.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408호 검사실로 출석하라고 요구하였다. A검사는 자진출석한 乙에 대하여 참고인 조사를 하지 아니한 채 곧바로 위증 및 위증교사 혐의로 피의자신문조서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 사이 甲이 위 408호 검사실로 찾아와서 A검사에게 “참고인 조사만을 한다고 하여 임의수사에 응한 것인데 乙을 피의자로 조사하는 데 대해서는 협조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하며 乙에게 검사실에서 나가라고 지시하였다. 乙이 일어서서 검사실을 나가려 하자 A검사는 乙에게 “지금부터 긴급체포하겠다”고 말하면서 乙의 퇴거를 제지하려 하였고, 甲은 乙에게 계속 나가라고 지시하면서 乙을 붙잡으려는 A검사를 몸으로 밀어 제지하였고 이로 인해 A검사는 상해를 입게 되었다. |
대법원 1989. 3. 14. 선고 87도3674 판결 甲 회사가 乙이 점유하던 공사현장에 실력을 행사하여 들어와 현수막 및 간판을 설치하고 담장에 글씨를 쓴 행위는 乙의 시공 및 공사현장의 점유를 방해하는 것으로서 乙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라고 할 수 있으므로 乙이 그 현수막을 찢고 간판 및 담장에 씌어진 글씨를 지운 것은 그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다. |
대법원 2005. 6. 9. 선고 2004도7218 판결 축협의 사용자가 적법한 직장폐쇄 기간 중 일방적으로 업무에 복귀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퇴거요구에 불응한 채 계속하여 사업장 내로 진입을 시도하는 해고 근로자를 폭행, 협박한 것이 사업장 내의 평온과 노동조합의 업무방해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정당방위 내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 |
대법원 2004. 12. 23. 선고 2004도6184 판결 나이트 클럽에서의 폭행사건 신고를 받고 3명의 경찰관들이 이 사건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피고인 일행과 상대방 일행간의 싸움은 이미 종결된 상태여서 비록 경찰관들의 임의동행 여부를 거부한 피고인에 대하여 물리력을 행사하여 연행하려고 한 시도가 부적법한 것으로서 이에 저항하기 위하여 피고인이 경찰관들을 밀치고 몸싸움을 한 행위가 부당한 법익침해를 방위하기 위하여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여기에서 더 나아가 피고인이 경찰관들의 모자를 벗겨 모자로 머리를 툭툭 치고 뺨을 때린 행위는 저항의 상당한 정도를 벗어나는 것이어서 부당한 법익침해를 방위하기 위하여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라고 볼 수 없고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는 야간의 폭행으로 인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를 구성한다고 할 것이므로 경찰관들이 피고인을 체포한 것은 현행범 체포의 실질적인 요건을 구비하였다고 할 것이며, 나아가 설령 경찰관들이 피고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함에 있어서 사전에 범죄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고지는 폭력으로 대항하는 범인을 실력으로 제압하는 경우에는 제압하는 과정에서 하거나 일단 제압한 후에 지체 없이 행하면 되는 것인데,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에게 수갑을 채울 당시 체포의 이유, 변호인 선임권 등을 고지하였다는 경찰관들의 진술에 비추어 볼 때 경찰관들이 고지절차를 위반한 것으로 보이지도 아니하므로, 결국 경찰관들이 피고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은 적법하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그 이후 피고인이 순찰차 뒷좌석에 누운 상태에서 경찰관들을 발로 차 상해를 가한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 피고인이 경찰관의 임의동행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저항하는 정도를 벗어나 경찰관을 폭행하고 상해를 가한 경우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사례임. |
대법원 2003. 11. 13. 선고 2003도3606 판결 공직선거 후보자 합동연설회장에서 후보자 甲이 적시한 연설 내용이 다른 후보자 乙이 구의회 동료 여성의원을 성희롱했다는 발언으로서 乙에 대한 명예훼손 또는 후보자비방의 요건에 해당되나 그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 甲의 연설 도중에 乙이 마이크를 빼앗고 욕설을 하는 등 물리적으로 甲의 연설을 방해한 행위가 甲의 ‘위법하지 않은 정당한 침해’에 대하여 이루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상당성’을 결여하여 정당방위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한 사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