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방위의 요구성(사회윤리적 제한)
1. 서론
(1) 의의
현재의 정당방위이론은 기술한 성립요건에 추가하여 상당성에 대한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회윤리적 제한’이라는 이론을 끌어 들이고 있다. 즉 사회윤리적 제한을 받는 정당방위는 상당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즉 정당방위의 사회윤리적 제한이란 정당방위는 예외적 허용에 의한 정당화이므로 방위행위의 요구성이라는 규범적 요소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2) 정당방위 제한이론의 인정여부
A. 긍정설 - 상당한 이유에 포함시키는 견해
상당성은 정당방위의 필요성 외에 법질서 전체의 입장에서 요구된 행위이어야 한다는 요구성도 포함한다. 따라서 사회윤리적 제한사유가 있는 경우일지라도 상당성일탈로 인한 과잉방위가 성립할 수 있다(통설).
B. 부정설
정당방위의 제한은 방위행위자에 대한 형벌권의 확대를 의미하므로 법치국가형법에 위배된다.
C. 결론
부정설에 대해서는 정당방위의 제한이 형법 제21조에 법정된 상당성의 개념에 내재되어 있는 해석상의 광협에 속하는 문제인 이상 설득력 있는 근거 없이 이를 부정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긍정설의 견해가 타당하다.
(3) 정당방위 제한의 근거
A. 학설의 대립
① 제1설 : 권리남용이론에서 찾는 견해
② 제2설 : 정당방위의 제한을 결정짓는 실질원리도 자기보호의 원리와 법질서수호의 원리에 있으므로 자기보호의 이익 또는 법질서수호의 이익이 결여되거나 현저하게 약화되는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제한된다는 견해
③ 제3설 : 법질서수호라는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견해
④ 제4설 : 상당성의 원칙에서 찾는 견해
B. 결론
정당방위의 기본원리가 자기보호의 원리 또는 법질서수호의 원리라면 정당방위에 대한 제한원리 역시 자기보호의 원리와 법질서수호의 원리에서 찾는 견해가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할 것이다.
2. 제한의 유형
(1) 책임 없는 자의 침해에 대한 방위
예컨대 어린이, 정신병자, 명정자, 법률의 착오나 과실로 인하여 행위 하는 자의 공격은 공격자에게 귀책가능한 법질서에 대한 공격이 아니므로 정당방위가 제한된다. 이때에는 회피수단이 있는 경우에는 방어수단을 택하지 말고 회피 하여야 하며,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적극적인 방어행위는 할 수 없고, 소극적인 보호방위만이 허용된다.
(2) 긴밀한 인적관계에 있는 자의 침해
부부나 가족과 같은 긴밀한 신분관계에 있는 자 상호간에는 방위자의 공격자에 대한 특수한 보호의무를 고려하여 자기보호를 위한 필요한 범위 내에서의 방위행위만이 허용된다. 따라서 생명침해에 대한 방위행위는 엄격한 보충성의 원칙과 법익균형성의 원칙하에서만 인정되고, 신체침해에 대항하여 가족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방위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대판 2001.5.15. 2001도1089) 司44ㆍ47 이혼소송 중인 남편이 찾아와 가위로 폭행하고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하는 데에 격분하여 처가 칼로 남편의 복부를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그 행위는 방위행위로서의 한도를 넘어선 것으로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기 때문에 정당방위나 과잉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 사례에서는 상해치사죄를 인정하였음. 사실관계■乙은 甲의 남편으로 평소 노동에 종사하여 돈을 잘 벌지 못하면서도 낭비와 도박의 습벽이 있고, 사소한 이유로 평소 甲에게 자주 폭행ㆍ협박을 하였으며,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요하는 등의 사유로 결혼생활이 파탄되어 별거하기에 이르고, 이어서 甲이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그 소송이 계속 중이었는데, 乙이 甲의 월세방으로 찾아오자 乙이 칼로 행패를 부릴 것을 염려하여 甲은 부엌에 있던 부엌칼 두 자루를 방의 침대 밑에 숨긴 뒤 도망가려 하자, 乙이 도망가는 甲을 붙잡아 방안으로 데려온 후 부엌에 있던 가위를 가지고 와서 이혼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하는 데에 격분하여 甲이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칼로 남편의 복부를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
(3) 극히 경미한 침해에 대한 과격한 방위
공격으로 위협받는 법익과 반격으로 침해되는 법익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이 있는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고 과잉방위가 문제된다(ex. 새우깡 한 봉지를 훔친 노숙자에게 쇠파이프로 타격을 가하는 경우).
(4) 도발된 침해에 대한 방위
A. 의도적 도발
(가) 의의
정당방위상황을 이용하여 공격자를 침해할 목적으로 고의로 공격을 유발하는 경우를 의도적 도발이라고 하며 고의의 도발이라고도 한다. 예컨대 상대방을 해할 의도로 모욕을 가하여 이에 격분한 상대방이 공격해 오자 이를 핑계삼아 폭행을 가하는 경우이다. 의도적 도발에 대해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견해의 일치가 있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나) 정당방위제한의 근거
a. 학설
① 법질서수호의 원리ㆍ자기보호의 원리 : 의도적 도발에 의한 정당방위는 법질서수호의 원리나 자기보호의 원리가 적용될 수 없으므로 정당방위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의도적 도발이라 할지라도 자기보호의 원리는 적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② 법질서수호의 원리 : 방위자가 정당방위를 구실로 해서 의도적으로 침해행위를 도발한 경우에 그 방위행위에서는 아무런 법질서수호의 이익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견해이다. 다만 이 때도 자기보호의 원리만큼은 인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보호의 원리만으로도 정당방위가 가능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③ 권리남용이론 : 정당방위라는 구실로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타인의 공격을 유발한 사람은 권리남용을 한 것이므로 정당방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도발자에게는 처음부터 정당방위를 할 권리가 없으므로 애당초 권리남용이란 있을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④ 원인에 있어서 위법한 행위이론 : 원인행위인 도발행위(A)가 정당방위를 하기 위한 불순한 목적에서 나온 원인에 있어서 위법한 행위이고, 따라서 도발된 침해(B)에 대한 방위행위(C)는 적법하지만 원인행위인 도발행위(A)가 위법하기 때문에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방위행위자에게 한편으로 정당방위(C)와 관련하여 적법한 행위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도발행위(A)와 관련하여 위법한 행위를 인정하게 되는 모순에 빠진다.
(대판 1983.9.13. 83도1467)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먼저 가격한 이상 피해자의 반격이 있었더라도 피해자를 살해한 소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사실관계■甲은 해외취업 중인 A의 처인 B와 불륜의 관계를 맺어오다가 A가 귀국하자 A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甲의 친척동생인 乙에게 돈 17만원을 줄테니 살해행위에 가담할 것을 종용한 후 乙의 승낙을 얻어 상호 공모하여 살해장소로 A를 꾀어내어 乙이 먼저 나무몽둥이로 A의 목 부분을 때리고 甲이 돌과 칼로 A를 살해하였다. 다만 甲과 乙이 A를 공격할 때 A도 B의 간통 사실을 알고 있으니 죽여버리겠다고 하면서 칼을 들고 甲을 찌르려고 하였다. |
(대판 1968.11.12, 68도912) 당일 피고인의 형인 甲과 丙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가 그것이 일단 제지된 후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비행을 따지기 위하여 그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 술집으로 甲과 함께 찾아가서 그 집 문전에서 먼저 甲과 丙 사이에 싸움이 시작되자 피해자들이 뛰어나오는 것을 보고 피고인도 갑에게 가세하여 그들과 싸우게 되었던 것이고 그 싸움 중에 피해자 乙이 쥐고 있던 칼을 빼앗아 동인을 찌르고 다른 피해자들이 달려들므로 그들에 대하여도 그 칼을 휘두르며 공격하여 피해자들에게 그 판시와 같은 살상을 입히게 된 것이라면 그 행위와 흉기의 성질상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에는 적어도 살인에 관한 미필적인 고의가 있었던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또 그것이 정당방위나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없다. |
b. 결론
의도적 도발에 있어서는 자신이 도발한 침해이므로 자기보호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고, 법질서수호의 원리의 관점에서를 이를 보호해 줄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법질서수호의 원리ㆍ자기보호의 원리가 타당하다.
B. 비의도적 도발
(가) 논의의 제기
행위자가 정당방위를 구실 삼아 고의로 공격을 도발하지는 않았지만 법적ㆍ사회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의무위반행위로 인하여 유책하게 상대방의 침해를 유발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 이때에도 정당방위가 허용되는가에 대해서는 그 유형을 나누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 도발행위가 적법한 경우
이때에는 도발행위로 인하여 침해가 유발되더라도 정당방위는 제한되지 않는다. 예컨대 집행관이 저항을 예상하면서도 강제집행을 하자 상대방이 공격해 온 경우 그 공격에 대해서 정당방위가 가능하다.
(다) 도발행위가 위법한 경우
예컨대 간통현장을 목격한 남편의 공격에 대한 情夫의 반격행위는 의도적 도발이 아니므로 정당방위가 원칙적으로 인정되지만, 다만 이 경우에는 회피원칙이 우선적으로 적용되어 경미한 침해행위는 수인하여야 하며, 부득이한 경우일지라도 가능한 한 보호방위에 그쳐야 한다(다수설).
(라) 단지 사회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정도의 유발행위
예컨대 정치집회에서 야비한 발언을 상대편에 함으로써 상대방의 폭행을 유발한 경우와 같이 그 유발행위가 위법하지는 않으나 사회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정도에 그친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허용된다.
3. 정당방위 제한의 효과
상당한 이유와 정당방위 제한을 별개로 보는 입장에서는 정당방위 제한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정당방위는 물론 과잉방위에도 해당하지 않고, 제21조 제2항 및 제3항의 적용은 없다. 반면에 상당한 이유에 정당방위의 제한을 포함시키는 견해에 의하면 요구된 방위행위가 그 요구된 정도를 벗어났을 때에 면책사유인 과잉방위가 될 수 있으며, 제21조 제2항 및 제3항이 적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