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행정의 내용 - 법률유보의 원칙
(1) 의의
① 법률의 유보란 ‘국가의 행정은 법적 근거를 갖고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법률유보의 원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기능을 하는 동시에 행정권 발동의 근거로서 기능을 한다.
② 여기서 법률이란 국회에서 제정한 형식적 의미의 법률과 법률의 위임을 받은 법규명령을 의미하므로 불문법으로서의 관습법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판례: 법률유보원칙에서 말하는 법률에는 예산은 포함되지 않는다 예산은 일종의 법규범이고 법률과 마찬가지로 국회의 의결을 거쳐 제정되지만 법률과 달리 국가기관만을 구속할 뿐 일반국민을 구속하지 않는다. 국회가 의결한 예산 또는 국회의 예산안 의결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소정의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헌법재판소 2006. 4. 25.자 2006헌마409 결정). |
③ 법률우위의 원칙은 행정권의 행사가 법률에 저촉되지 않도록 행사해야 하는 법치행정의 소극적 측면의 문제이지만, 법률유보의 원칙은 행정권의 행사는 법률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법치행정의 적극적 측면의 문제이다. 따라서 법률우위의 원칙은 법률이 있는 경우에 문제가 되지만, 법률유보의 원칙은 법률이 없는 곳에서 문제된다.
법률우위의 원칙과 법률유보의 원칙 비교
법률우위의 원칙 | 법률유보의 원칙 | |
개념 | 행정권 행사는 법률에 위반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 | 행정권 행사는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 |
의미 | • 법치행정의 소극적 측면 (행정권 행사는 법률에 저촉되지 않도록 행사) • 법의 단계질서 문제 | • 법치행정의 적극적 측면 (행정권 행사는 법률에 근거하여) • 입법과 행정 사이의 권한배분 문제 |
법률의 범위 | • 형식적 의미의 법률, 관습법, 법률위임에 따른 법규명령, 행정법의 일반원칙, 자치법규 등이 포함 • 행정규칙은 포함되지 않는다. | • 형식적 의미의 법률을 의미하므로 불문법으로서의 관습법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 위임을 받은 법규명령은 포함 • 행정규칙은 포함되지 않는다. |
적용영역 | 모든 행정작용에 적용 | 모든 행정작용에 적용 ✕(견해대립) |
행정규칙에 적용여부 | 적용 | 적용되지 않음 |
(2) 적용범위
(가) 문제의 소재
법률우위의 원칙은 행정의 모든 분야에서 적용되지만 법률유보의 원칙은 적용되는 범위가 문제된다. 즉 어떠한 행정권 행사에는 법적 근거가 요구되고, 어떠한 행정권의 행사는 법적 근거가 없이도 가능한지가 문제된다.
(나) 학설
① 침해유보설 :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행정작용은 반드시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견해이다. 침해유보설은 소극적 질서유지, 개인의 자유와 재산의 보호가 중요시되었던 근대국가에서 타당하였고 통설적 지위를 누렸지만, 행정작용의 중점이 적극적인 급부행정으로 옮겨지게 된 오늘날의 복지국가에서 급부행정을 법률유보로부터 제외시킨다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② 전부유보설 : 민주주의원칙에 의하면 국민에 의한 행정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행정에는 법률의 근거가 필요하다고 보는 전부유보설이 요구된다. 그러나 전부유보설에 의하면 법률의 수권이 없는 한 국민에게 필요한 급부를 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있다.
③ 권력행정유보설 : 침해행정이나 수익행정을 불문하고 모든 권력행정은 법률의 근거를 요한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침해유보설의 변형에 불과하므로 침해유보설에 대한 비판과 동일한 비판이 가해질 수 있다.
④ 사회유보설(급부행정유보설) : 침해행정 이외에 급부행정영역에도 법률유보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견해이다. 현대사회와 같이 개인이 국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야 되는 상황에서 급부의 거부는 실제로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침해행정과 사실상 차이가 없으므로 급부행정의 경우에도 법률유보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급부행정의 범위가 불문명하고, 법률이 없으면 급부가 불가능해진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⑤ 중요사항유보설(본질사항유보설·본질성설)➊
㉠ 기본적인 규범영역에서 모든 중요하고 본질적인 결정은 적어도 입법자가 스스로 법률로 정하여야 한다는 견해로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칼카르 결정)를 기초로 한다. 즉 중요사항유보설에 의하면 법률유보의 범위와 강도는 여러 단계 존재한다. 매우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는 모든 사항이 법률로만 정하여져야 하고 보다 덜 중요한 사항은 그에 비례하여 행정입법권에게도 입법권이 수권될 수 있고, 중요하지 않은 사항은 법률의 근거를 요하지 않게 된다.
㉡ 중요사항유보설은 2중의 의미 내지 2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는 법률의 유보, 즉 입법사항의 문제이고, 2단계는 법률의 유보를 전제로 위임입법과의 관계에서 입법자가 위임입법에 위임할 수 없고 반드시 입법자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의미의 문제이다. 이러한 2단계에서의 문제, 즉 위임금지를 통해 강화된 법률유보를 의회유보라고도 부른다(의회유보설). 헌법재판소도 이를 채택하고 있다.
㉢ 이 견해에 대해서는 중요사항(본질사항)과 비중요사항(비본질사항)의 구별의 기준이 불분명하고 중요사항이라는 것이 매우 모호하여 법률유보의 범위를 판단함에 있어 어려움이 있다는 약점이 있다.
⑥ 신침해유보설 : 기본적으로 침해유보설과 같은 입장이지만 특별행정관계에도 법률의 유보를 인정하고, 급부행정의 영역에 있어서는 법률유보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견해이다.
⑦ 검토(사견) : 침해행정에 대해서 법률유보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이 없으나 급부행정이나 기타 행정영역에 대해서는 행정영역과 행정작용의 성질, 기본권관련성, 규율사항이 국민생활에서 갖고 있는 실제적 중요성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다) 판례
대법원은 중요사항유보설의 입장에서 판시한 경우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중요사항유보설(의회유보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 본질적인 사항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
판례: 텔레비전방송수신료의 금액에 대하여 국회가 스스로 결정하거나 결정에 관여함이 없이 한국방송공사로 하여금 결정하도록 한 한국방송공사법 제36조 제1항이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적극)(헌법재판소1999. 5. 27.자 98헌바70 결정) 오늘날 법률유보원칙은 단순히 행정작용이 법률에 근거를 두기만 하면 충분한 것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와 그 구성원에게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영역, 특히 국민의 기본권실현과 관련된 영역에 있어서는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가 그 본질적 사항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요구까지 내포하고 있다(의회유보원칙). 그런데 텔레비전방송수신료는 대다수 국민의 재산권 보장의 측면이나 한국방송공사에게 보장된 방송자유의 측면에서 국민의 기본권실현에 관련된 영역에 속하고, 수신료금액의 결정은 납부의무자의 범위 등과 함께 수신료에 관한 본질적인 중요한 사항이므로 국회가 스스로 행하여야 하는 사항에 속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방송공사법 제36조 제1항에서 국회의 결정이나 관여를 배제한 채 한국방송공사로 하여금 수신료금액을 결정해서 문화관광부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한 것은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된다. 판례: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시행자인 토지등소유자가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하기 전에 얻어야 하는 토지등소유자의 동의요건을 토지등소유자가 자치적으로 정하여 운영하는 규약에 정하도록 한 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28조 제4항이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적극) (헌법재판소 2011. 8. 30.자 2009헌바128 결정) 토지등소유자가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시행하는 경우 사업시행인가 신청시 필요한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는 개발사업의 주체 및 정비구역 내 토지등소유자를 상대로 수용권을 행사하고 각종 행정처분을 발할 수 있는 행정주체로서의 지위를 가지는 사업시행자를 지정하는 문제로서 그 동의요건을 정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의 형성에 관한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사항이므로 국회가 스스로 행하여야 하는 사항에 속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시행인가 신청에 필요한 동의정족수를 토지등소유자가 자치적으로 정하여 운영하는 규약에 정하도록 한 것은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된다. 비교판례: 사업시행인가 신청시의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요건이 토지 등 소유자의 재산상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법률유보 내지 의회유보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소극) (대법원 2007. 10. 12. 선고 2006두14476 판결). 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상 조합의 사업시행인가 신청시의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요건이 비록 토지 등 소유자의 재산상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시행계획에 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동의요건은 사업시행인가 신청에 대한 토지 등 소유자의 사전 통제를 위한 절차적 요건에 불과하고 토지 등 소유자의 재산상 권리·의무에 관한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사항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법률유보 내지 의회유보의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없고, 따라서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28조 제4항 본문이 법률유보 내지 의회유보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7. 10. 12. 선고 2006두14476 판결). |
■ 본질적인 사항에 대한 대법원 판결
판례: 병의 복무기간은 국방의무의 본질적 내용이다(대법원 1985. 2. 28. 선고 85초13 판결). 병의 복무기간은 국방의무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것이어서 이는 반드시 법률로 정하여야 할 입법사항에 속한다고 풀이할 것인바 육군본부 방위병소집복무해제규정 제23조가 질병휴가, 청원휴가, 각종사고(군무이탈, 구속, 영창, 징역, 유계결근), 1일 24시간 이상 지각, 조퇴한 날, 전속 및 보직변경에 따른 출발일자부터 일보변경 전일까지의 기간 등을 복무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여 병역법 제25조 제3항이 규정하지 아니한 구속 등의 사유를 복무기간에 산입하지 않도록 규정한 것은 병역법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할 것이다. |
(3) 행정유형별 고찰
① 침해행정 :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때에는 법률의 근거를 요한다(헌법 제37조 제2항).
② 급부행정 : 급부행정에 있어서의 평등성을 확보하고, 기준, 대상, 방법 등을 객관적으로 명백히 하기 위하여 법적근거를 요한다고 보는 견해와 예산도 국회가 의결하는 것이라는 점 등을 논거로 급부행정에 있어서는 그를 위한 예산상의 근거가 있는 한 법률상의 근거가 없어도 이를 행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③ 비권력행정 : 비권력행정에 있어 상대방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법률의 근거를 요하지 않는다. 판례와 통설은 공법상 계약과 행정지도는 법률의 근거가 없어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비권력행정이라 하더라도 국민에게 침익적 영향을 미치는 행위 등 중요한 행위(예: 개인정보 수집행위, 사실상 규제적 성질을 갖는 행정지도)는 침익적 영향을 받는 국민의 동의가 없는 한 법률의 근거를 요한다.
④ 특별권력관계 : 종래의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특별권력관계의 경우 법률유보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으나, 오늘날은 특별권력관계내에서도 원칙적으로 법률유보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보고 있다.
⑤ 직권 취소·철회 : 법률에 근거가 없더라도 더 큰 공익을 위해서 행정청의 직권 취소·철회권이 인정된다.
⑥ 행정조직 : 행정기관의 성립 및 권한에 관한 사항은 국민의 권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법률로 정하여야 한다(행정조직법정주의, 헌법 제96조).
⑦ 지방자치행정 : 조례는 원칙적으로 주민의 대표기관인 지방의회에서 제정하므로 법률의 위임이나 근거 없이도 제정할 수 있다. 다만, 침해행정에 관한 것이라면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
(4) 법률유보원칙 위반의 효과
①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된 행정작용은 위법한 행위가 된다. 이에 관한 법규나 법원칙은 없으므로 개별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법적 근거없이 이루어진 행정행위는 중대명백설에 따를 경우 무효 또는 취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위법한 법규명령은 처음부터 무효이다.
② 법률유보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행정법의 일반원칙에 구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