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분석] 휴대용 선풍기 디자인 분쟁으로 살펴본 신규성 상실의 예외: 디자인 출원 전 자기 공개와 모방품 등장을 둘러싼 법적 판단
디자인 권리를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세상에 공개하기 전에 먼저 출원을 마치는 것이다. 하지만 제품의 생명 주기가 극도로 짧은 소형 가전 시장에서는,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디자인 출원보다 제품 공개를 서둘러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생기곤 한다.
원칙적으로 디자인보호법은 이미 대중에게 알려졌거나(공지) 사용된(공용) 디자인, 또는 그와 비슷한 디자인에 대해서는 ‘신규성’을 인정하지 않아 디자인 등록을 허용하지 않는다. 공지된 디자인을 기반으로 약간의 변형을 가한 창작물 역시 등록 대상이 될 수 없다(디자인보호법 제33조 제1항 제1호, 제2호).
디자인보호법 [시행 2024. 8. 7.] [법률 제20200호, 2024. 2. 6., 타법개정] 제33조(디자인등록의 요건) ① 공업상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디자인에 대하여 디자인등록을 받을 수 있다. 1. 디자인등록출원 전에 국내 또는 국외에서 공지(公知)되었거나 공연(公然)히 실시된 디자인 2. 디자인등록출원 전에 국내 또는 국외에서 반포된 간행물에 게재되었거나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공중(公衆)이 이용할 수 있게 된 디자인 3. 제1호 또는 제2호에 해당하는 디자인과 유사한 디자인 |
그러나 이 신규성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디자인을 창작한 권리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할 수 있으며 산업 발전을 장려하는 디자인보호법의 본래 목적과도 어긋난다.
이 때문에 디자인보호법 제36조는 ‘신규성 상실의 예외’ 조항을 마련했다. 이는 디자인 창작자 스스로 자신의 디자인을 먼저 공개했을 경우, 그 공개일로부터 12개월(2017. 3. 21. 일부개정된 것 이전의 구법의 경우 6개월) 안에 디자인을 출원하고 소정의 절차를 밟으면 신규성을 잃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는 제도이다.
디자인보호법 [시행 2024. 8. 7.] [법률 제20200호, 2024. 2. 6., 타법개정] 제36조(신규성 상실의 예외) ① 디자인등록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자의 디자인이 제33조제1항제1호 또는 제2호에 해당하게 된 경우 그 디자인은 그날부터 12개월 이내에 그 자가 디자인등록출원한 디자인에 대하여 같은 조 제1항 및 제2항을 적용할 때에는 같은 조 제1항제1호 또는 제2호에 해당하지 아니한 것으로 본다. 다만, 그 디자인이 조약이나 법률에 따라 국내 또는 국외에서 출원공개 또는 등록공고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7. 3. 21.> ② 삭제 <2023. 6. 20.> |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떠한가? 자사의 디자인을 먼저 공개했고, 그 후 경쟁사가 모방품을 출시한 것을 인지한 시점에서야 부랴부랴 디자인을 출원했다면 말이다.
이때에도 ‘신규성 상실의 예외’라는 법적 보호막은 유효하게 작동할까?
한 휴대용 선풍기 디자인 분쟁 사례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본다.
#사건의 전개
중국의 D사는 2015년 7월 2일 '휴대용 선풍기' 디자인을 출원해 2016년 1월 18일 디자인등록 제30-0836046호로 디자인권을 등록했다. 이후 2016년 3월 8일 '갑'이라는 회사가 D사로부터 이 권리를 양도받았다.
비슷한 시기, '을' 회사가 유사한 형태의 휴대용 선풍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에 '갑'은 '을'에게 디자인권 침해를 중단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자 '을'은 2016년 5월 13일, '갑'이 보유한 디자인권 자체가 무효라며 특허심판원에 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특허심판원은 2016당1588호로 심리한 다음 2017년1월 6일 이 등록 디자인이 신규성 상실 예외 요건을 충족한다며 '을'의 청구를 기각했다. '을'은 이 결정에 불복하여 특허법원에 심결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의 엇갈린 주장
1. '을' 회사의 주장 ①
‘을’ 회사는, 이 사건 등록디자인의 출원 전에 다음과 같은 이 사건 등록디자인과 형상과 모양이 거의 동일한 공지디자인 2, 3이 이미 공지되었으므로, 이 사건 등록디자인은 디자인의 등록요건인 ‘신규성’이 없어 그 등록이 무효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디자인보호법 제33조 제1항 제2호, 121조 제1항).
공지디자인 2 | 공지디자인3 |
2015. 6. 28. http://www.yiwugo.com 게시 | 2015. 7. 1. 유투브에 게시 |
삼성휴대폰 미니선풍기 USB 선풍기 칼라신형 미니선풍기 | Mini USB For Samsung Cellphone Plug & Pl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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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갑’의 주장
이에 대해 ‘갑’은, ‘알리바바닷컴’의 메인화면 및 관리자 사이트에 저장된 자기실시디자인의 실물사진(아래 ‘공지디자인 1’)과 같이, 이 사건 등록디자인은 그 출원 전인 2015년 6월 15일 출원인 “D”사에 의해 중국 ‘알리바바닷컴’에 게시되었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등록디자인은 2015년 6월 15일 출원인에 의해 실시된 공지디자인이므로 디자인보호법 제36조에서 정한 신규성 상실의 예외에 해당하여 이 사건 등록디자인에는 무효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공지디자인 1 | |
2015. 6. 15. www.1688.com 게시 | |
USB선풍기 미니선풍기 샤오미스타일 휴대용선풍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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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갑’은 ‘을’ 회사가 제출한 공지디자인 2, 3은, ‘갑’의 자기실시디자인의 공지일 후에 공지된 것으로 ‘갑’의 이 사건 등록디자인을 단순 모방한 디자인에 불과하여, 이 사건 등록디자인의 신규성 상실이 입증자료로서 채택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3. ‘을’ 회사의 주장 ②
그러자 ‘을’ 회사는 이 사건 등록디자인이 최초로 공지된 시점이 분명하지 아니하여 ‘공지된 때로부터 6개월 이내에 출원될 것’이라는 신규성 상실의 예외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다시 주장하였다.
#특허법원의 결론
(특허법원 2017. 8. 11 선고 2017허905 판결-2017. 8. 26. 확정)
특허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사건 등록디자인에는 ‘을’ 회사가 주장하는 무효사유가 존재하지 않다고 하며, ‘을’ 회사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 이 사건 등록디자인의 최초 공지 시점 : 이 사건 등록디자인의 출원인인 ‘D’사는 2015. 6. 15. 중국 인터넷 쇼핑몰 ‘알리바바 닷컴’에 ‘공지디자인 1’을 게재하여 공지되었고, 이 공지된 ‘공지디자인 1’은 이 사건 등록디자인과 실질적으로 동일하므로, 이 사건 등록디자인은 출원인인 ‘D’사에 의해 2015. 6. 15. 최초 공지 후 그로부터 6개월 이내인 2015. 7. 2. 출원된 것이다(즉, 신규성 상실의 예외 요건이 충족되었다).
- 공지디자인 2, 3으로 인한 신규성 상실 여부 : 디자인을 창작한 사람이 자신의 디자인을 공개한 후에 공개된 디자인에 기초하여 제3자가 동일한 디자인을 공개하더라도 이는 창작자의 원래의 공개행위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후속 공개로 인하여 신규성 상실의 예외 규정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공지디자인 2, 3에 의한 공지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등록디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규성 상실의 예외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
특허법원 2017. 8. 11. 선고 2017허905 판결 등록무효 판결요지 갑이 ‘휴대용 선풍기’를 명칭으로 하고 도면과 같은 등록디자인의 디자인권을 이전받은 을을 상대로 등록디자인이 출원일 전에 전기통신회선을 통해 공지되었으므로 디자인보호법 제33조 제1항 제2호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등록무효심판을 제기한 사안에서, 등록디자인의 출원인이 2016. 6. 15. 중국 인터넷 쇼핑몰에 공지디자인을 게재함으로써 그 디자인이 위 날에 공지된 점, 공지디자인과 등록디자인은 모두 휴대용 선풍기로서 동일하고, 특징적인 주요 형상면에서 공통점을 가짐을 알 수 있으며, 달리 서로 상이한 심미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으므로 등록디자인은 공지된 디자인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점, 출원인이 등록디자인과 동일한 공지디자인을 최초로 게재한 2015. 6. 15.부터 6개월 이내인 2015. 7. 2.에 특허청에 디자인등록출원을 한 점, 최초 공지 이후에 있은 2회의 공지는 최초 공지행위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이어서 후속 공개로 인하여 신규성 상실 예외 규정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지 않는 점에 비추어 보면, 등록디자인은 디자인보호법 제36조 제1항에 따라 2015. 6. 15.자 공지에도 신규성이 상실되지 않으므로 갑이 주장하는 무효사유가 없다고 한 사례. |
#시사점
이 휴대용 선풍기 사례는 디자인 출원 전에 제품을 공개하고 모방품까지 등장했지만, '신규성 상실의 예외'를 성공적으로 주장하고 입증하여 권리를 지켜낸 경우이다.
이는 부득이하게 제품을 먼저 알려야 할 때, 자신이 최초 공개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날짜와 매체 등의 자료를 철저히 보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하지만 '갑'은 권리를 지키는 데는 성공했을지라도, '을'을 비롯한 여러 이해관계자와의 심판 및 소송을 거치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소모했을 것이다. 만약 D사가 디자인을 공개하기 전 신속하게 출원을 마쳤다면, 이러한 분쟁의 싹을 처음부터 자를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은 '선출원, 후공개'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