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분석] '지배적 특징' 유사성 판단과 침해금지 청구의 범위 - 밸브 패킹 디자인권 침해 판례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합564101)
밸브의 누수를 막는 핵심 부품인 패킹은 그 기능적 특성상 단순한 형태로 인식되기 쉽다. 밸브 내부에 장착되는 이 부품의 외관만 보면 디자인으로서의 독창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사례를 분석해 보면, 밸브 패킹이라 할지라도 디자인보호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한다면 명백히 보호받는 디자인권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건의 개요
산업용 자동제어밸브 제조·판매업을 영위하는 A사는 2016년 10월 6일 '개폐밸브용 패킹'이라는 명칭으로 디자인을 출원하여 2017년 8월 18일 디자인권 등록을 마쳤다. 한편, 동종 업계의 B사는 2018년에서 2019년 사이, 문제가 된 '피고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개시했다. 이에 A사는 2019년 6월, B사의 제품이 자사의 등록디자인을 침해했다는 취지의 경고장을 발송하며 법적 절차의 시작을 알렸다.
A사의 등록디자인과 B사의 피고 제품은 다음과 같다.
A의 이 사건 등록디자인 | B의 이 사건 피고 제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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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는 A사의 디자인권 자체를 문제 삼아 특허심판원에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했으나, 특허심판원은 B사의 주장을 기각했다(특허심판원 2020. 9. 11. 2019당2142 심결). B사는 이에 불복하여 특허법원에 심결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특허법원 역시 B사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A사의 디자인권이 유효함을 재확인했다(특허법원 2021. 6. 10. 선고 2020허6552 판결).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A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B사를 상대로 디자인권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사는 B사 제품의 생산 중단은 물론, 생산에 사용된 설비의 폐기와 금전적 손해의 배상을 요구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2. 10. 선고 2021가합564101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A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B사에 대해 침해 행위를 금지하고 2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구체적인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디자인 동일·유사에 관한 판단의 법리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먼저 디자인의 유사 여부에 관한 다음과 같은 대법원의 판단 기준을 제시하였다.
“디자인의 유사 여부는 이를 구성하는 각 요소를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대비할 것이 아니라 그 외관을 전체적으로 대비 관찰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이한 심미감을 느끼게 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이 경우 디자인을 보는 사람의 주의를 가장 끌기 쉬운 부분을 요부로서 파악하고 이것을 관찰하여 심미감에 차이가 생기게 하는지 여부의 관점에서 그 유사 여부를 결정하여야 하고, 그 디자인이 표현된 물품을 사용할 때는 물론, 거래할 때의 외관에 의한 심미감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또한 대비의 대상이 되는 디자인의 지배적인 특징이 유사하다면 세부적인 점에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대법원 2004. 1. 16. 선고 2002후1461 판결, 대법원 2001. 5. 15. 선고 2000후129 판결 등 참조)”
2. 두 디자인의 동일·유사 여부
법원은 A사의 등록디자인과 B사의 피고 제품 단면을 비교하며 총 여덟 가지의 핵심적인 공통점을 발견했다.
A의 이 사건 등록디자인 | B의 이 사건 피고 제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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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통점 ① : 본체의 일면에 고정링의 환형 돌출띠가 삽입되는 환형의 요입홈이 45도 경사지게 형성됨.
- 공통점 ② : 요입홈의 양측으로 고정링의 걸림단부를 감싸 패킹이 지지되도록 하는 걸림턱이 형성되어 있는 점
- 공통점 ③ : 본체의 내부면에 볼의 반구형상 돌출부가 접속되는 둥근 접속면과 체결링의 플랜지가 접속되는 통공이 연이어 형성되어 있는 점
- 공통점 ④ : 요입홈의 형상이 “”와 같이 폭이 낮고 가로방향이 길며, 모서리 좌측은 각진 형태, 우측은 둥근 형태로 형성되어 있는 점.
- 공통점 ⑤ : 걸림턱의 형상에 관하여, 수평걸림턱의 내측 끝단에, 고정링의 걸림 단부에 형성된 하향경사부에 걸리는 하향돌출부가 “”와 같이 형성되고, 수직걸림턱의 내측 끝단에도 고정링의 걸림단부에 형성된 측면경사부에 걸리는 측면돌출부가 “
”와 같은 형상인 점
- 공통점 ⑥ : 확관부와 수직걸림턱의 형상에 관하여, 접속면과 연이어져 형성되는 통공의 입구 측에 확관부가 형성되고 확관부와 연이어진 수직걸림턱의 외주면이 “ ”와 같은 둥근 형상임.
- 공통점 ⑦ : 수평걸림턱의 형상에 관하여, 우측면이 수직()으로 형성됨.
- 공통점 ⑧ : 접속면의 가로 부분의 두께가 나머지 부분의 두께보다 두꺼움( ).
위와 같은 공통점 ①~⑧에 관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개폐밸브용 패킹”의 형상과 사용 형태를 고려하면 앞서 본 공통점 ①~③은 선행디자인에 공지된 부분으로 유사 여부 판단 시 그 중요도를 높게 평가할 수는 없으나, 공통점 ④~⑧ 부분은 디자인의 지배적인 특징을 나타내면서 보는 사람의 주의를 끌기 쉬운 부분으로서 요지에 해당하고, 양 디자인은 지배적인 부분에서 심미감이 유사하다고 보았다.
물론 이 사건 등록디자인과 달리 이 사건 피고 제품은
i) 접속면 내부 요입홈 형상이 곡선 형태인 점,
ii) 하향돌출부 위쪽, 측면돌출부, 수평걸림턱의 내측과 우측면 상단이 모두 라운드진 형태인 점,
iii) 수평걸림턱과 수직면 두께가 동일하고 측면돌출부의 내측면과 외측면 사이의 두께가 두껍게 형성된 점에서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위
i)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패킹의 안쪽에 있어 단면을 절개하지 않는 한 내부 곡률 파악이 쉽지 않다는 점,
ii)의 차이점은 제품 가공 과정의 기술적 결과에 지나지 않으며, 차이점
iii) 역시 패킹의 안쪽 부분에 있어, 위 차이점들은 모두 심미감 형성에 기여하기에 미약하므로 양 디자인의 전체적 심미감을 좌우한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전체적으로 관찰했을 때 두 디자인의 미적 인상을 결정하는 지배적 특징이 유사하므로 B사의 제품은 A사의 디자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2. 10. 선고 2021가합564101 판결 가) 이 사건 등록디자인과 이 사건 피고 제품은 '개폐밸브용 패킹'으로서 그 형상과 사용 형태를 고려하면, 위에서 살펴본 공통점 ① 내지 ③ 부분은 별지3 기재 선행디자인에 공지된 부분으로서 유사 여부 판단 시 그 중요도를 높게 평가할 수는 없으나, 공통점 ④ 내지 ⑧ 부분은 디자인의 지배적인 특징을 나타내면서 보는 사람의 주의를 끌기 쉬운 부분으로서 디자인의 유사여부 판단에 있어 그 중요도를 높이 평가하여야 할 것이므로, 양 디자인은 그 지배적인 특징이 동일하여 전체적인 심미감이 유사하다. 나) 위에서 살펴본 차이점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공통점 ④ 내지 ⑧을 상쇄할 정도로 디자인의 심미감 형성에 기여하기에는 미약하므로, 위 차이점만으로는 양 디자인의 전체적인 심미감을 좌우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1) 차이점 ① 부분: 이 사건 피고 제품의 접속면 내부 가로방향 가운데 부분의 두께가 5~6mm 정도에 불과하고, 위 부분은 패킹의 안쪽에 있는 것으로서 패킹의 단면을 절개하지 않는 한 접속면 내부 곡률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 차이점 ② 부분: 이 사건 피고 제품의 라운드 형태는 고무재질 패킹 제품의 가공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술적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이고, 보는 사람의 심미감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3) 차이점 ③ 부분: 패킹의 안쪽 부분으로서 그 두께를 육안으로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 이 사건 등록디자인은 이 사건 피고 제품 디자인과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는 있지만 앞서 살핀 공통점으로 인하여 그 미감적 가치가 상이하다고 볼 정도는 아니므로, 이 사건 등록디자인과 이 사건 피고 제품 디자인은 지배적인 특징이 동일하여 전체적인 심미감이 유사하다. |
3. 금지 및 폐기 청구의 허용 범위
디자인보호법 제113조에 따라 권리자는 침해자에게 침해 행위의 금지를 청구할 수 있다. 법원은 B사에 대해 침해 제품의 생산, 사용, 양도, 대여, 수입 및 이를 위한 전시 행위를 금지했다. 또한 보관 중인 완제품과 반제품을 모두 폐기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A사가 청구한 '생산설비 일체'의 폐기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산설비 일체'라는 표현이 폐기 대상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아, 향후 강제집행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금지 청구의 대상은 사회통념상 다른 것과 구별될 수 있도록 명확히 특정되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결정이다(대법원 2011. 9. 8. 선고 2011다17090판결 등 참조).
대법원 2011. 9. 8. 선고 2011다17090 판결 민사소송에서 청구취지는 내용 및 범위를 명확히 알아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 하므로, 특허권에 대한 침해의 금지를 청구하는 경우 청구의 대상이 되는 제품이나 방법은 사회통념상 침해의 금지를 구하는 대상으로서 다른 것과 구별될 수 있는 정도로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 한다. |
#결론 및 시사점
이 판결은 둥근 링 형태의 기능성 부품이라도 독창적인 심미감을 주는 특징이 있다면 디자인권으로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디자인권 분쟁에서 일부 사소한 차이점의 존재보다는,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하는 '지배적 특징'의 유사성이 침해 여부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된다. 또한, 권리자가 침해금지 소송을 제기할 때는 금지나 폐기를 구하는 대상을 집행이 가능하도록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는 점 역시 중요한 실무적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