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변경의 원칙의 인정 여부
1. 문제점
민법은 사정변경의 원칙에 입각한 개별적인 규정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지료 또는 차임증감청구(제286, 제628조), 부득이한 사유로 인한 고용계약해지(제661조), 현저한 사정변경에 의한 증여계약의 해제(제557조) 등이 있다. 문제는 일반규정이 없음에도 일반원칙으로서 사정변경의 원칙을 인정할 수 있는지 하는 점이다.
2. 학설
통설(긍정설)은 민법 제2조의 신의칙에 의하여 또는 사정변경의 원칙에 입각한 개별 규정을 기타 계약에 유추하여 사정변경의 원칙을 긍정하고 있다. 반면 일반적으로 이를 허용하는 경우에는 법관의 자의에 의한 법 적용이 생길 수 있는 점을 우려하여 비상사태에만 이를 허용하는 제한적 허용설, 이를 인정한다면 법관에 의한 계약관계에의 관여를 허용하게 되어 계약의 안정성이나 거래의 안전을 해치게 되므로 일반원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부정설도 있다.
3. 판례
가. 매매계약
대법원은 계약 체결당시에 비하여 목적물의 시가가 무려 1620배 이상 앙등하여 매도인이 사정변경을 이유로 매매계약 해제를 주장한 사안에서 "매매계약을 맺은 때와 그 잔대금을 지급할 때와의 사이에 장구한 시일이 지나서 그 동안에 화폐가치의 변동이 극심하였던 탓으로 매수인이 애초에 계약할 당시의 금액표시대로 잔대금을 제공한다면 그 동안에 앙등한 매매목적물의 가격에 비하여 그것이 현저하게 균형을 잃은 이행이 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민법상 매도인으로 하여금 사정변경의 원리를 내세워서 그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권리는 생기지 않는다(대법원 1963. 9. 12. 선고 63다452 판결).", "매매계약체결 후 9년이 지났고 시가가 올랐다는 사정만으로 계약을 해제할 만한 사정변경이 있다고 볼 수 없고, 매수인의 소유권 이전등기 절차이행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도 할 수 없다(대법원 1991. 2. 26. 선고 90다19664 판결)."고 판시하여 사정변경의 원칙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이후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 해제는 계약 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하였고 그러한 사정의 변경이 해제권을 취득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으로서, 계약 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에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인정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사정이라 함은 계약의 기초가 되었던 객관적인 사정으로서, 일방 당사자의 주관적 또는 개인적인 사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계약의 성립에 기초가 되지 아니한 사정이 그 후 변경되어 일방 당사자가 계약 당시 의도한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됨으로써 손해를 입게 되었다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계약내용의 효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법리는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의 해지를 주장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3다26746 전원합의체 판결).”라고 판시한 바 있고, 다만 당해 사안에서 통화옵션계약의 해지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나. 특정채무에 대한 보증계약
대법원은 "회사의 이사가 채무액과 변제기가 특정되어 있는 회사 채무에 대하여 보증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계속적 보증이나 포괄근보증의 경우와는 달리 이사직 사임이라는 사정변경을 이유로 보증인인 이사가 일방적으로 보증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대법원 1999. 12. 28. 선고 99다25938 판결).",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계속적인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확정한 채무를 보증하는 이른바 계속적 보증의 경우뿐만 아니라 특정채무를 보증하는 일반보증의 경우에 있어서도,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신의칙에 비추어 용납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인 때에는 보증인의 책임을 제한하는 것이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나, 일단 유효하게 성립된 보증계약에 따른 책임을 신의칙과 같은 일반원칙에 의하여 제한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사적 자치의 원칙이나 법적 안정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하여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1. 27. 선고 2003다45410 판결)."고 판시하여, 사정변경에 대한 해지권은 인정하지 않으나 책임제한은 예외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 계속적 계약관계
대법원은 계속적 계약에서는 "계속적 보증계약에 있어서 보증인의 주채무자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는 등 보증인으로서 보증계약을 해지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보증인으로 하여금 그 보증계약을 그대로 유지 존속케 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그 계약해지로 인하여 상대방인 채권자에게 신의칙상 묵과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 하는 등 특단의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보증인은 일방적으로 이를 해지할 수 있다(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0다37937 판결)." 또는 "계속적 보증계약에서 보증인은 변제기에 있는 주채무 전액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고, 다만 보증 당시 주채무의 액수를 보증인이 예상하였거나 예상할 수 있었을 경우에는 그 예상 범위로 보증책임을 제한할 수 있으나, 그 예상 범위를 상회하는 주채무 과다 발생의 원인이 채권자가 주채무자의 자산 상태가 현저히 악화된 사실을 잘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탓으로 이를 알지 못하는 보증인에게 아무런 통보나 의사 타진도 없이 고의로 거래 규모를 확대함에 연유하는 등 신의칙에 반하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보증인의 책임을 합리적인 범위 내로 제한할 수 있다(대법원 1998. 6. 12. 선고 98다8776 판결)."고 판시하여 사정변경에 대한 해지권 및 책임제한을 인정하고 있다.
또 "임대차계약에 있어서 차임불증액의 특약이 있더라도 그 약정 후 그 특약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인정될 정도의 사정변경이 있다고 보여지는 경우에는 형평의 원칙상 임대인에게 차임증액청구를 인정하여야 한다(대법원 1996. 11. 12. 선고 96다34061 판결)."고 판시하여 사정변경에 의한 증액청구를 인정하였다.
한편 판례는 "회사의 이사가 채무액과 변제기가 특정되어 있는 회사 채무에 대하여 보증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계속적 보증이나 포괄근보증의 경우와는 달리 이사직 사임이라는 사정변경을 이유로 보증인인 이사가 일방적으로 보증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대법원 2006. 7. 4. 선고 2004다30675 판결)."고 판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