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권의 발생(2): 임의대리 - 수권행위
1. 서설
임의대리권은 수권행위에 의하여 발생한다. 수권행위란 대리인에게 대리행위를 할 수 있는 일정한 자격 또는 지위를 부여하는 법률행위 즉 대리권수여를 목적으로 하는 법률행위를 의미한다.
수권행위(대리권수여행위)는 논리적으로 기초적 내부관계(원인관계라고도 함. 예컨대 위임, 고용, 도급, 조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대리관계는 외부관계라고 함)와는 구별하여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리권은 본인을 위하여 일정한 행위를 할 의무를 지는 자에게 그 의무를 수행케 하기 위하여 주어지며 따라서 수권행위는 위임 등의 기초적 내부관계와 함께 존재하고, 양자는 수단ㆍ목적의 관계를 갖는다.
2. 수권행위의 법적 성질
가. 문제점
수권행위의 법적성질에 대한 견해대립은 대리인이 될 자의 승낙의 의사표시가 필요한지 여부, 수권에 있어 대리인의 의사에 하자가 있는 경우 수권행위에 영향을 주는지 여부와 기본적으로 관련이 있다.
나. 학설
단독행위설은 수권행위는 기초적 내부관계와는 독립적으로 대리권 발생만을 목적으로 하는 대리인이 될 자의 수령을 요하는 단독행위라고 한다.
그 근거에 대하여 통설은 ⅰ) 수권행위는 대리인에게 일정한 자격이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므로 대리인이 될 자의 승낙은 불필요하며, ⅱ) 단독행위로 보는 것이 거래안전에 기여하며, ⅲ) 실정법적으로 대리인의 행위능력 불요 원칙(제117조, 계약이면 대리인이 될 자의 행위능력이 필요함), 수권행위만의 철회(제128조 후단, 무인성) 규정을 들고 있다.
계약설은 대리권발생을 위하여는 본인의 수권행위뿐만 아니라 대리인이 될 자의 이에 대한 승낙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다. 검토
통설에 따르면 ⅰ) 수권행위에 대하여 대리인이 될 자의 수령은 필요하나 승낙이 불필요하며 따라서 승낙이 없더라도 대리인이 될 자에게 대리권이 발생하고, ⅱ) 본인의 수권 의사표시에 하자가 있는 경우 본인은 이를 취소할 수 있으나 대리인 승낙의 의사표시에 하자가 있더라도 수권행위를 취소할 수 없고, ⅲ) 대리인이 무능력임을 이유로 수권행위를 취소할 수 없다. 또한 ⅳ) 수권행위는 기초적 내부관계와 독립적이므로 수권행위가 있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기초적 내부관계에 있어 의사표시 또는 능력의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이를 취소할 수 있다. 이때에 유인성ㆍ무인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3. 수권행위의 독자성 문제
가. 문제점
독자성이란 수권행위가 본인과 대리인 사이의 기초적 내부관계에 대하여 독립적인지 및 기초적 내부관계의 변동은 대리권의 내용에 영향을 주는지의 문제이다.
나. 학설
소수설(융합계약설)은 대외적으로 제3자와 법률행위를 수행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원인관계를 설정시키는 경우에 그 원인계약에 의하여 당연히 대리권이 발생되며, 대리권수여의사는 이 계약에 필수적으로 수반된다고 보아 수권행위의 독자성을 부인한다. 즉 수권행위가 아닌 위임 등의 원인계약에 의하여 직접 대리권이 발생한다고 하며 내부관계의 변동에 따라 대리권의 내용도 변동된다고 한다.
통설(독자성 긍정설)은 외부적인 대리관계와 내부적인 기초적 법률관계는 독립되어 있으며 또한 수권행위는 기초적 내부관계와 독립하여 외부적인 대리권의 발생만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라고 한다.
다. 판례
대법원은 "위임과 대리권수여는 별개의 독립된 행위로서 위임은 위임자와 수임자간의 내부적인 채권채무관계를 말하고 대리권은 대리인의 행위의 효과가 본인에게 미치는 대외적 자격을 말하는 것이므로 위임계약에 대리권수여가 부수되는 일은 있으나 위임계약만으로는 그 효력은 위임자와 수임자 이외에는 미치는 것이 아니므로 구 민법 제655조의 취지는 위임종료의 사유는 이를 상대방에 통지하거나 상대방이 이를 안 때가 아니면 위임자와 수임자간에는 위임계약에 의한 권리의무관계가 존속한다는 취지에 불과하고 대리권관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대법원 1962. 5. 24. 선고 4294민상251,252 판결)."고 판시하여 독자성 긍정설의 입장이다.
라. 검토
우리 민법은 기초적 내부관계와는 독립적으로 수권행위만의 철회를 인정하고 있으며(제128조 후단), 중개업(상법 제53조)ㆍ위탁매매(상법 제101조) 등은 위임이면서도 대리를 수반하지 않고 있으며, 위임 등의 내부적 법률관계에 의하여 의무가 발생하는 반면 대리권은 이와는 성질을 달리하여 단순한 지위 내지 자격의 부여라는 점을 고려할 때 통설이 타당하다고 보인다.
4. 수권행위의 무인성 문제
가. 문제점
기초적 내부관계에 있어 의사표시의 하자가 있거나 대리인이 무능력자인 경우에 이를 이유로 본인을 내부적 법률관계(특히 위임계약)를 취소 등으로 실효시킬 수 있다. 이 경우에 수권행위도 그 영향을 받아 소급하여 효력을 잃게 되는지 즉 대리권이 소급적으로 소멸하는지의 문제이다. 이는 수권행위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논의되는 문제이다.
나. 학설
무인성설은 수권행위는 기초적 내부관계와 개념상 구별되며, 거래안전 또는 제3자의 보호를 위하여 기초적 내부관계가 무효ㆍ취소ㆍ해제ㆍ해지 등으로 실효되더라도 수권행위는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유효하다는 견해이다.
유인성설은 기초적 내부관계가 무효ㆍ취소ㆍ해제ㆍ해지 등으로 실효되면 수권행위도 그 효력을 상실한다는 견해이다. 근거로 제128조 전단의 규정은 유인성을 전제로 한 규정이며, 유인성설이 당사자의 의사에 부합하다는 점을 제시한다. 한편 무명계약설을 취하는 견해는 수권행위는 기초적 내부관계의 부수행위로 보아 유인성설을 취하고 있다.
5. 수권행위의 방식
가. 불요식행위
단독행위설은 일치하여 이를 상대방의 수령을 요하는 단독행위이며 불요식행위라고 한다. 따라서 위임장 없이 구두의 방법으로 또는 묵시적인 방법으로 대리권 수여가 가능하다. 대리행위가 요식행위라도 반드시 수권행위가 그 방식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통설의 입장이다(반대견해 있음).
통상적으로는 대리인에게 위임장을 주는 방식으로 대리권이 수여되고 있으나 이때 위임장은 위임계약에 대한 계약증서가 아니라 대리권 수여 사실을 증명하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수권행위의 상대방으로서 대부분의 견해는 대리인뿐만 아니라 대리인과 거래할 상대방도 가능하다고 본다.
나. 백지위임장 교부에 의한 수권행위
1) 유효 여부
본인이 대리사항란 또는 수임자란이 공란인 위임장을 교부하면서 백지보충권을 수여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대리권 수여는 주로 대리인(수임자) 또는 백지보충권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특색을 가진다. 이러한 수권방식에 대하여 학설은 대체로 유효성을 인정한다.
2) 수권행위의 시기
백지위임장이 전전하더라도 백지에 보충된 자와 교부자 사이에는 수권이 수반하는 위임계약이 성립되는 것이며, 백지위임장을 교부받은 자가 백지에 수임자로서 자기의 이름을 기입한 때에 수권행위가 있다고 본다(통설).
3) 백지보충권 남용 문제
(1) 문제점
백지보충권을 넘어 위임장을 작성한 경우 즉 대리권의 범위를 넘어 대리사항란을 임의보충하거나 거래의 상대방을 지정하였음에도 거래의 상대방을 임의로 임의보충하거나 대리인을 특정인으로 지정하거나 대리인의 범위를 변호사 등으로 지정하여 주었음에도 대리인을 임의로 보충한 경우에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는지의 문제이다.
(2) 학설
무권대리설(다수설)은 본인의 보호를 우선하여 고려하므로 백지보충권의 범위와 백지위임장의 내용에 차이가 있는 경우 대리행위를 무권대리로 보고 상대방이 선의ㆍ무과실인 경우에는 표현대리의 주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3) 검토
백지위임장의 교부를 소지인의 임의보충에 대한 묵시적 수권이 있다고 보는 것은 본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해석이며, 무권대리로 보더라도 상대방의 선의ㆍ무과실이 인정되면 표현대리의 성립이 가능하므로 이를 거래안전을 해하는 해석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권대리설이 타당하다.
구체적으로 ⒜ 대리인란을 임의보충한 경우에는 복임권의 문제로 제125조의 표현대리가 적용될 수 있고, ⒝ 대리사항란을 임의보충한 경우에는 월권대리의 문제로 제126조의 표현대리가 적용될 수 있고, ⒞ 거래의 상대방을 임의보충한 경우에는 제125조의 표현대리가 적용될 수 있다.
6. 수권행위의 하자와 철회
가. 수권행위의 의사표시 하자
수권행위의 하자에 대하여 대리행위의 하자에 관한 제116조 제1항을 적용할 것은 아니고 법률행위에 관한 제107조 이하의 일반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 수권행위가 의사표시 하자를 이유로 무효ㆍ취소되면 대리권이 소급적으로 소멸하고 따라서 이미 한 대리행위도 무효(무권대리)가 된다.
상대방이 보호받는 제3자에 해당하면 보호받을 수 있다. 즉 선의의 제3자에 대하여는 유권대리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권행위에 절대적 무효사유가 있는 경우(본인의 행위무능력에 의한 취소, 반사회질서 행위)는 제3자 선의에 무관하게 무권대리가 된다. 이 경우 상대방은 표현대리를 주장하여 보호받을 수 있는데, 논리적으로 제129조가 아닌 제125조의 표현대리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나. 수권행위의 철회
기초적 내부관계의 종료에 상관없이 본인은 수권행위를 철회할 수 있고(제128조 후단), 이 경우 대리권은 소멸한다.
철회의 상대방은 수권행위와 마찬가지로 대리인 또는 상대방이라고 본다.
다만 대리인에게만 철회를 한 경우에는 제129조의 표현대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