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측 과실 이론
1. 의의
피해자측 과실이론이란 불법행위의 피해자 본인이 아니더라도 피해자와 동일시할 수 있는 제3자의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그 제3자의 과실도 과실상계의 참작사유로 삼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채무불이행책임에는 적용되지 않음). 이는 손해배상제도를 손해에 대한 공평한 분담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과실상계제도의 탄력적 운용과 맞물려 인정된 이론으로서 구상관계의 합리적 처리, 공동불법행위자의 무자력 위험의 분배의 기능을 하고 있다.
2. 인정여부
판례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책임 및 그 범위를 정함에 있어 피해자의 과실을 참작하는 이유는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공평하게 분담시키고자 함에 있으므로, 피해자의 과실에는 피해자 본인의 과실뿐 아니라 그와 신분상 내지 사회생활상 일체(一體)를 이루는 관계에 있는 자의 과실도 피해자측의 과실로서 참작되어야 하고, 어느 경우에 신분상 내지 사회생활상 일체를 이루는 관계라고 할 것인지는 구체적인 사정을 검토하여 피해자측의 과실로 참작하는 것이 공평의 관념에서 타당한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1999.7.23. 98다31868)."고 판시하여 피해자측 이론을 적용하고 있다.
3. 특징
가. 과실상계와의 관계
과실상계에서의 피해자의 과실은 사회통념상의 약한 부주의를 의미하지만, 피해자측의 피해자 아닌 자의 과실은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닌 피해자 본인을 향한 것이며, 따라서 그 정도도 위법성이 인정될 정도의 강력한 고유의 과실인 것이다.
나. 공동불법행위와의 관계
피해자측 이론은 통상적으로 피해자에 대하여 공동불법행위자가 있고, 그 중 일부의 공동불법행위자가 피해자와 일체적 관계에 있는 다른 공동불법행위자를 상대로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 결과 공동불법행위자 사이의 연대채무관계를 분할채무관계로 전환시켜 피해자를 희생시키고 가해자를 보호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4. 요건
통상적으로 공동불법행위의 경우에 문제되므로, 공동불법행위를 중심으로 요건을 서술한다.
가. 공동불법행위의 성립
피해자에 대하여 다수의 가해자가 있어야 하고, 이들은 공동불법행위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피해자측으로 볼 수 있는 공동불법행위자도 고유한 과실, 책임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나. 공동불법행위자 중 일부가 피해자와 신분상ㆍ생활관계상 일체를 이룰 것
공동불법행위자 중 일부가 피해자와 신분상ㆍ생활관계상 일체를 이루고 있어 피해자측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측으로 볼 수 있는 자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미성년자 감독의무자의 과실
과실상계에 있어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는 때라 함은, 행위의 책임을 변식할 지능이 없는 미성년자의 피해에 대하여 보호감독 의무자에게 과실이 있는 때를 포함한다 할 것이고, 따라서 그 보호감독 의무자에게 과실이 있는 때는, 불법행위자의 미성년자(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또는 그 금액을 정함에 있어서 이를 참작해야 할 것이다(1968.4.16. 67다2653). 감독의무자의 과실은 미성년자가 사리변식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참작하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1967.4.18. 67다238). 따라서 미성년자가 노상을 배회하다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경우, 미성년자 감독의무자의 보호감독의무 해태의 과실은 미성년자의 과실로 참작되어야 한다.
(2) 피용자의 과실
피해자가 사용자 본인인 경우, 피해자가 피용자의 선임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다하였거나 상당한 주의를 하여도 손해가 있을 경우임을 입증하지 않는 이상 손해배상의 책임과 금액을 정함에 있어 피용자의 과실을 피해자측의 과실로 참작하여야 한다(1969.7.29. 69다829). 따라서 丙이 운영하는 회사 소속 甲이 회사차를 운전하다가 乙과의 쌍방 과실로 말미암아 사고가 발생한 경우, 법원은 丙의 甲에 대한 선임감독상의 과실을 심리하여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사용자의 불법행위로 말미암아 피용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에는 사용자의 과실을 피해자측의 과실로 참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3) 가족관계에 있는 자의 과실
가족 또는 친족관계에 있는 자는 피해자와 신분상 일체가 있으므로, 피해자와 생활상의 일체성(예컨대 공동생활관계)이 어느 정도 나타나 있으면 피해자측에 해당하게 된다. 따라서 장기간 별거 중인 배우자간이나 출가하여 완전히 독립생계를 유지하는 딸과 부모와의 관계 등에 있어서는 신분관계만을 이유로 곧바로 피해자측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 판례는 ⅰ) 夫가 그의 처를 오토바이 뒷죄석에 태우고 운전하다가 승용차와 충돌한 경우(1987.2.10. 86다카1759, 부부관계), ⅱ)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량에 아버지와 생계를 같이하는 미성년자 아들이 동승하고 가다가 사고가 발생한 경우(1989.12.12. 89다카43, 부자관계), ⅲ)출가한 누나가 남동생이 운전하는 차량에 동승하였다가 사고가 발생한 경우(1996.10.11. 96다27384, 형제남매관계), ⅳ) 피해자가 외삼촌이 운전하는 어머니 소유의 차량에 동승하였다가 사고가 발생한 경우(1996.2.27. 95다41239, 친척관계), ⅴ) 피해자인 미성년자가 부모의 이혼으로 인하여 친권자로 지정된 母와 함께 살고 있었으나, 사고 당시 父가 재결합하려고 母와 만나고 있던 중이었으며 父가 그 미성년자와 母를 비롯한 처가식구들을 차에 태우고 장인, 장모의 묘소에 성묘를 하기 위해 가던 중 사고가 발생한 경우(1999.7.23. 98다31868) 등에서 피해자측에 해당한다고 보았지만, 가족회사에서 직장동료로 근무하던 4촌형제이지만 각 성년으로서 각자의 직업을 가진 독립적인 경제주체인 경우(1996.11.12. 96다26183)에는 피해자측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4) 호의동승
차량사고에 있어 운전자의 과실을 피해자측의 과실로 보아 동승자에 대하여 과실상계를 하기 위하여는, 그 차량 운전자가 동승자와 신분상 또는 생활관계상 일체를 이루고 있어 운전자의 과실을 동승자에 대한 과실상계 사유로 삼는 것이 공평의 원칙에 합치한다는 구체적인 사정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1998.8.21. 98다23232). 다만 오로지 호의동승 차량 운전자의 과실로 인한 사고로 동승자가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어 동승자 혹은 그 유족들이 그 동승 차량의 운행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그 운전자의 과실은 오로지 동승 차량 운행자의 손해배상채무의 성립 요건에 해당할 뿐 피해자측의 과실로 참작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1997.11.14. 97다35344). 판례는 다방 종업원이 차배달을 목적으로 다방 주인이 운전하는 차량에 동승하였다가 사고를 당한 경우(1998.8.21. 98다23232)에는 피해자측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5) 자동차소유자
자동차의 소유자는 자배법상의 '보유자'로서 자동차의 운행으로 이익을 볼 뿐만 아니라 운행을 지배하는 지위에 있는 자로서 운전자의 선정에서부터 그 지휘ㆍ감독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주의를 다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자이고, 운행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부담할 지위에 있는 자이므로 자동차의 소유자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동차를 운전하게 하고 그 자동차에 함께 탔다가 제3자의 과실로 인하여 교통사고가 발생한 결과 손해를 입은 경우에, 그 자동차의 운전자에게도 과실이 있었다면 그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는 제3자가 자동차의 보유자에게 배상하여야 할 재산상 손해의 액과 위자료의 액을 정함에 있어서 그 자동차 운전자의 과실을 참작하는 것이 타당하다(1994.4.26. 94다2121). 이때 운전자와 소유자 사이에 친척관계나 고용관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 피해자의 과실이 있을 것
피해자의 과실이 있어야 하고, 여기서 피해자의 과실은 과실상계에서의 피해자의 과실과 같이 약한 부주의를 의미한다. 피해자는 책임능력이 있을 필요는 없고 사리변식능력정도만 갖추고 있으면 된다.
5. 효과
가. 피해자의 과실이 없는 경우
예컨대 甲이 자신의 아들 乙을 태우고 백화점에 가던 중, 丙이 운전하는 차량과 충돌하여 乙에게 100만원의 피해가 발생하였고 甲과 丙의 과실은 각 40%, 60%로 확정된 경우에, 乙이 丙을 상대로 100만원을 청구하는 경우 법원은 피해자측 과실을 고려하여 60만원만을 인용하여야 한다. 만일 법원이 피해자측 과실을 인정하지 않고 100만원 전액을 인용하게 되면 丙은 다시 甲에게 40만원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할 수 밖에 없어 불필요한 구상절차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나. 피해자의 과실이 있는 경우
예컨대 甲이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출근하다가 乙이 같이 사는 자신의 딸 丙을 태우고 등교하던 차를 부주의로 추돌하게 되었고, 증거조사의 결과 피해자 丙이 입은 총피해액은 1백 5십만원(위자료 5십만원)으로 밝혀지고, 丙은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았던 걸로 밝혀져 丙의 과실은 40%로, 甲과 乙의 과실은 7:3으로 확정된 경우, 乙과 丙의 관계로 보아 피해자측 과실 이론이 적용되므로, 丙의 과실 합계는 40% + 60% × 0.3 = 58%가 된다. 따라서 위자료를 제외한 1백만원에 대하여 과실상계한 甲이 지급하여야 할 손해배상액은 42만원이므로, 丙은 甲을 상대로 92만원을 청구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