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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이행이익과 신뢰이익을 같이 청구할 때 주의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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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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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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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불이행으로 계약이 해제된 뒤 원고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실무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산식은 “기지출비용(신뢰이익) + 장래 순이익(이행이익)”이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하다. 계약을 믿고 이미 돈을 썼고, 계약이 정상 이행되었더라면 남겼을 이익도 놓쳤으니 둘 다 달라는 논리다. 그러나 법원이 이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이유는 단순하다. 손해배상은 “많이 주장한 만큼”이 아니라 “중복 없이, 실질 손해만”을 배상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 유형에서 판결의 분기점은 이행이익과 신뢰이익의 ‘병합 청구 가능성’이 아니라, 두 항목이 동일 손해를 두 번 포장해 청구하는 ‘중복 청구’가 아닌지 여부다.

원칙적으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이행이익 배상이 중심이다. 즉, 계약이 이행되었더라면 채권자가 얻었을 경제적 이익을 채무자가 배상해야 한다는 구도다. 이때 이행이익은 단순 매출이나 총수익이 아니라, 통상 비용을 공제한 순이익 내지 순수익으로 산정된다. 반면 신뢰이익은 계약 체결·이행을 믿고 지출한 비용 중 계약이 깨짐으로써 회수할 수 없게 된 손해를 의미한다. 문제는, 실무에서 원고가 주장하는 “기지출비용”이 실제로는 이행이익 산정의 전제가 되는 비용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이행이익은 ‘이익’만을 말하는 듯하지만 실제 계산은 ‘수익 – 비용’이고, 그 비용 속에 기지출비용이 포함되기 쉽다. 그러면 기지출비용을 따로 신뢰이익으로 더하는 순간, 같은 비용이 “이행이익 산식에서 한 번, 신뢰이익 항목에서 또 한 번” 사용되는 셈이 된다. 법원이 가장 민감하게 경계하는 중복이 바로 이것이다.

중복 청구인지 여부를 가르는 핵심 질문은 단 하나로 정리된다. “그 비용은 계약이 정상 이행되었더라도 결국 회수되었을 비용인가, 아니면 계약이 파기됨으로써 회수가 불가능해진 순수한 매몰비용인가.” 만약 전자라면, 그 비용은 원래 이행이익의 과정에서 수익으로 회수되거나, 최소한 순이익 산정에서 이미 반영되는 항목이다. 이 경우 동일 비용을 ‘신뢰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청구하면, 형식은 다르더라도 실질은 이중보상이다. 반대로 후자라면, 그 비용은 계약이 이행되더라도 별도로 회수될 구조가 아니었거나, 계약 파기 탓에 유일한 회수 경로가 차단된 비용이므로 신뢰이익으로서 독립성이 생긴다. 법원은 이 구별을 통해 손해 항목을 “이행이익에 흡수되는 비용”과 “독립된 신뢰이익”으로 분해한 뒤, 전자에 대해서는 별도 청구를 배제하거나 감액하는 방식으로 중복을 제거한다.

이 구별은 특히 플랫폼 구축·운영대행, 신사업 론칭, 개발·마케팅 결합형 계약에서 날카롭게 작동한다. 예컨대 개발 인건비, 서버 운영비, 솔루션 구입비, 테스트 장비, 운영 인력 투입비 등은 대체로 “이 사업을 통해 수수료나 매출이 발생하면 회수된다”는 구조를 갖는다. 즉, 본래 이 비용은 ‘사업이 돌아가는 동안 수익에서 흡수되어 회수될 비용’이다. 이런 항목을 신뢰이익으로 전액 인정하면, 사실상 “사업이 정상 진행되었을 때의 이익(또는 수익)을 배상하라”는 이행이익과 별개로 “그 사업을 하기 위해 들인 비용도 전액 배상하라”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이 두 요구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사업이 정상 이행되었을 때의 경제적 상태를 복원해 주겠다는 이행이익 배상의 틀 안에서, 그 비용을 또 한 번 따로 보상하는 것은 ‘정상 이행 상태’를 넘어서는 과잉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판결문에서는 흔히 “원고가 주장하는 기지출비용 중 일부는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었더라도 필연적으로 지출되었을 비용이고, 다른 사업에도 전용·활용 가능한 성격이 있으며, 이행이익 산정에 이미 반영될 수 있다”는 취지의 문장이 등장하며 중복 제거의 근거로 사용된다.

원고 입장에서는 “대법원이 이행이익과 신뢰이익을 함께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는 문구가 유혹적이다. 그러나 실무에서 그 문구는 ‘둘 다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행이익으로도 포섭되지 않는 잔여 손해(특히 회수 불가능한 매몰비용)가 존재한다면 그것까지 배상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즉, 병합 청구는 가능하되, 그 병합이 허용되는 범위는 “중복되지 않는 잔여 손해”로 좁혀진다. 여기서 원고가 자주 범하는 실수는, 기지출비용을 전부 신뢰이익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이행이익도 순이익 형태로 청구해 두고, 중복 여부는 “산식상 이미 차감했으니 중복이 아니다”라고만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이 보는 중복은 산식의 모양이 아니라 경제적 실질이다. 산식에서 차감했다고 해도, 그 비용이 원래 이행이익 구조에서 회수되는 성격이라면, 다시 신뢰이익으로 더할 때 결국 ‘정상 이행 시보다 더 좋은 상태’를 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복 문제를 피하면서도 신뢰이익을 설득력 있게 세우려면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 첫째, 기지출비용을 일괄 묶지 말고 “회수 가능성”을 기준으로 분해해야 한다. 예컨대 특정 도메인·인증서·장비·인력투입 중 일부가 다른 프로젝트에도 전용 가능한지, 계약 해제 시점 이후에도 사용 가능한지, 실제로 회수되었거나 회수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따라 손해성이 달라진다. 둘째, 비용의 성격을 “이행이익 산정에 이미 반영되는 운영비”와 “계약 상대방의 이행이 전제될 때만 회수 가능한 비용”으로 나누어야 한다. 후자, 즉 상대방의 협조(서버비 분담, 마케팅 수행, 오픈 일정 확정 등)가 없으면 회수 경로 자체가 막히는 비용이라면, 그 부분은 이행이익과 별개의 신뢰이익으로 독립시킬 여지가 커진다. 셋째, 이행이익(장래 이익)을 함께 주장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신뢰이익 범위를 더 보수적으로 잡는 편이 판결을 염두에 둔 전략이 된다. 이행이익이 장래 추정에 불과해 감액될 가능성이 높은 사건에서는, 신뢰이익까지 과도하게 주장하면 법원이 “전체적으로 과장된 손해 주장”으로 인상 평가를 할 위험이 있다. 중복을 제거하지 못한 손해 산정은 신뢰성 자체를 깎아 먹는다.

결국 법원이 손해배상을 일부 인용하는 전형적 결론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나타난다. “기지출비용 전액은 인정하기 어렵고, 계약 해제로 회수 불가능해진 범위만 손해로 본다.” 동시에 “순이익 전액도 불확실성이 크므로 상당인과관계 범위에서 감액한다.” 이 문장들 사이에 놓인 실질적 기준이 바로 중복 제거다. 법원은 신뢰이익을 ‘이행이익에 더하는 보너스’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행이익 산정으로는 포섭되지 않는 잔여 손해가 있는지, 그리고 그 잔여 손해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동일 손해를 두 번 계산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먼저 본다. 따라서 이행이익과 신뢰이익을 함께 청구하는 사건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화려한 총액이나 복잡한 산식이 아니라 “이 비용이 왜 이행이익에 흡수되지 않는가”를 설명하는 정교한 분해와 입증이다. 중복을 제거하지 못하는 순간, 청구액의 상당 부분은 ‘손해가 아니라 계산의 중복’으로 취급되고, 판결의 결론은 감액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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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작성일시: 2026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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