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
(1) 책임의 완화
운송인은 운송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며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무불이행 책임을 진다. 그러나 운송은 그 과정에서 물건의 손상·멸실·연착 등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또 1회 운송에서 다량의 화물을 취급하므로 그 손해의 규모도 매우 대형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운송업자에게 일반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그대로 지우면 그 책임이 너무 무거워 누구도 운송업을 영위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운송 중에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 비전문가인 송하인에게 운송인의 과실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가혹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상법은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완화하였다. 즉 ① 손해배상책임을 정형화하였고, ② 고가물에 대한 책임을 경감하였으며, ③ 손해배상책임의 특별소멸사유를 정하였고, ④ 1년의 단기소멸시효를 정하였다.
(2) 책임발생의 요건
운송인은 자기 또는 운송주선인이나 사용인, 그 밖에 운송을 위하여 사용한 자가 운송물의 수령, 인도, 보관 및 운송에 관하여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운송물의 멸실, 훼손 또는 연착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상법 제135조).
① 과실책임주의를 취하며, ② 이행보조자의 과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고 있으며, ③ 운송인 본인 및 이행보조자의 과실을 추정하고 있고, ④ 손해의 원인을 운송물의 수령, 인도, 보관, 운송에 관한 주의해태로, 손해의 유형을 운송물의 멸실, 훼손, 연착으로 각각 나열하고 있는 점에 특징이 있다. 통설에 따르면 ①, ②, ③은 민법상 채무불이행책임의 법리를 주의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민법의 특칙이라 할 수 없고, ④에서 열거하고 있는 손해의 원인과 유형도 예시적인 것이 불과하여 이 또한 민법의 특칙이라 할 수 없다고 한다.
(3) 손해배상액의 정형화 및 제한
1) 취지
상법은 대량의 운송물을 신속하게 운송해야 하는 운송업의 성질상 법률관계를 획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정형화하였다. 그리고 이는 운송업 보호·육성을 위해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을 경감하는 의미도 있다.
2) 민법상 손해배상의 범위
채무자는 채무불이행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모든 통상의 손해를 배상해야 하고(민법 제393조 제1항), 특별손해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손해는 배상해야 한다(민법 제393조 제2항).
3) 상법의 특칙
① 원칙
A. 전부멸실·연착의 경우 운송물이 전부멸실 또는 연착된 경우의 손해배상액은 인도할 날의 도착지의 가격에 의한다(상법 제137조 제1항). 즉 전부멸실의 경우는 인도할 날의 도착지의 시가 상당액이 손해배상액이고, 연착의 경우는 인도할 날의 도착지 가격과 연착되어 실제로 인도된 날의 도착지 가격의 차이에 해당하는 금액이 손해배상액이다. 연착의 경우를 보면 「인도한 날」의 가격이 「인도할 날」의 가격보다 하락하면 운송인이 위 금액만큼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나 상승하거나 변동이 없으면 운송인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B. 일부멸실·훼손의 경우 운송물이 일부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의 손해배상액은 인도한 날의 도착지의 가격에 의한다(상법 제137조 제2항). 이는 잔존물이 인도할 날에 인도된 경우에 적용된다. 이때 손해배상액은 인도한 날의 완전한 물건의 가격에서 일부멸실·훼손된 상태의 가격을 뺀 금액이다. 일부멸실·훼손된 상태에서 연착한 경우의 손해배상액은 어떻게 산정하는가? 인도할 날의 완전한 물건의 가격에서 인도한 날의 잔존물의 가격을 뺀 금액이 배상액이다.
그리고 위 A. B. 모두의 경우 도착지의 가격을 기준으로 손해배상액을 정하였으므로 운송물의 멸실·훼손·연착으로 인한 특별손해는 설사 운송인이 그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배상 범위에서 제외된다.
② 예외
위의 원칙은 운송인에게 경과실이 있을 경우에만 적용된다. 운송물의 멸실, 훼손 또는 연착이 운송인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운송인은 모든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상법 제137조 제3항). 즉 운송인은 민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운송물의 멸실·훼손·연착과 상당인과관계 있는 모든 통상의 손해를 배상해야 하고, 또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도 배상해야 한다.
③ 운임 등의 상계
운송물의 멸실 또는 훼손으로 인하여 지급을 요하지 아니하는 운임 기타 비용은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하여야 한다(상법 제137조 제4항).
(4) 고가물에 대한 특칙
1) 취지
고가물은 일반 물건보다 도난·분실의 위험도 높고 분실·훼손 시 손해의 규모도 크기 때문에 운송에 깊은 주의가 요구된다. 따라서 운송비용도 많이 소요되고 그만큼 운임도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송하인이 고가물임을 명시하지 않아 운송인이 보통물의 운임만 지급 받고 고가물을 운송하다가 고가물에 알맞은 주의를 베풀지 못해 운송 도중 손해가 발생한 경우 운송인에게 이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매우 불공평하다. 그래서 상법은 송하인이 고가물임을 명시하지 않은 경우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고 있다. 즉 화폐, 유가증권 기타의 고가물에 대하여는 송하인이 운송을 위탁할 때에 그 종류와 가액을 명시한 경우에 한하여 운송인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상법 제136조).
2) 고가물의 판단
고가물이란 화폐·유가증권·귀금속·보석·미술품·골동품과 같이 부피·무게 등에 비추어 다른 물건보다 현저히 비싼 물건을 말한다. 고가물인지 판단은 물건의 객관적 가치만으로 하며 송하인 등의 주관적 가치는 고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진, 연인의 편지 등은 주관적 가치는 매우 크나 객관적 가치는 크지 않은 물건이므로 고가물이라고 볼 수 없다.
3) 운송인의 책임
① 고가물임을 명시하지 않은 경우
A. 운송인이 고가물임을 모른 경우
ⓐ 운송인이 보통물에 대한 주의를 기울인 경우 운송인이 그 고가물을 보통물로 보고 보통물에 대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운송인은 그 고가물이 멸실·훼손되더라도 손해배상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다. 고가물로서의 책임뿐만 아니라 보통물로서의 책임도 지지 않는다.
ⓑ 운송인이 보통물에 대한 주의 조차도 기울이지 않은 경우 운송인이 보통물에 대한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아 고가물이 멸실·훼손된 경우 운송인의 책임은 어떻게 되는가? 송하인이 고가물이라는 것을 명시하지 않았으므로 고가물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음은 당연하다. 그러면 보통물로서의 책임은 지는가? 통설은 이때도 운송인은 전혀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보통물로서의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가물을 보통물로 바꾸어 가격을 산정하기가 어렵고, 송하인으로 하여금 고가물임을 명시하도록 촉구하기 위함이다.
ⓒ 운송인이 고의로 운송물을 멸실·훼손한 경우 운송인이 고가물임을 모른 경우에도 고의로 그 고가물을 멸실·훼손한 경우에는 운송인은 고가물로서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이때도 운송인을 면책시키는 것은 심히 형평에 반하기 때문이다.
B. 운송인이 고가물임을 우연히 안 경우
이 경우 운송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 극단적으로 송하인의 명시가 없었다면 운송인이 고가물임을 알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운송인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견해, ⓑ 반대로 운송인이 고가물임을 안 이상 고가물에 대한 주의를 베풀어야 하고 이를 게을리하면 고가물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견해, ⓒ 그 중간으로 운송인은 이를 알았더라도 고가물로 명시된 것도 아니고 그에 상당한 운임을 받은 것도 아니므로 보통물로서의 주의를 기울이면 되고 이를 게을리 한 경우에 한해 고가물로서의 책임을 진다는 견해(다수설)가 대립한다.
② 고가물임을 명시한 경우
송하인이 고가물임을 명시한 경우 운송인이 고가물로서의 책임을 짐은 물론이다. 이 경우 배상액은 송하인이 명시한 가액을 최고한도로 하여 상법 제137조를 적용해 계산한다.
4) 증명책임
상법 제136조에 의해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운송인이 운송물이 고가물이라는 사실, 송하인이 고가물임을 명시하지 않은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5) 손해배상책임의 소멸
운송인은 대량의 운송을 반복하므로 자신의 무과실 입증을 위한 증거를 장기간 보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상법은 운송인의 책임관계를 신속히 종결지음으로써 운송인을 보호하기 위해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조기에 소멸시키는 규정을 두고 있다.
1) 특별소멸사유
① 수하인 또는 화물상환증소지인이 유보 없이 운송물을 수령하고 운임 기타의 비용을 지급한 때에는 원칙적으로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은 소멸한다(상법 제146조 제1항). 운임 등의 지급과 운송물의 인도가 교환될 때에는 운송계약의 이행을 승인한 것으로 의제한 것이다. 그리고 유보란 운송계약 이행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뜻을 통지하는 것이다. 예컨대, 추후 운송물을 검사할 뜻을 통지하거나 운송물이 멸실·훼손된 사실을 통지하는 것 등이다. ② 운송물에 즉시 발견할 수 없는 훼손 또는 일부멸실이 있는 경우에 운송물을 수령한 날로부터 2주간 내에 운송인에게 그 통지를 발송한 때에는 운송인의 책임이 소멸하지 않는다(상법 제146조 제1항 단서). 또 운송인 또는 그 사용인이 악의인 경우에는 수하인 또는 화물상환증소지인이 유보 없이 수령한 경우에도 운송인의 책임은 소멸하지 않는다(상법 제146조 제2항). 여기서 「악의」인 경우란 운송물이 멸실·훼손된 사실을 알고 인도한 경우를 뜻한다.
2) 단기소멸시효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은 전부멸실의 경우에는 운송물을 인도할 날로부터, 기타 손해의 경우에는 수령권자가 운송물을 수령한 날로부터 각각 1년을 경과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상법 제147조, 제121조 제1항·제2항). 다만 이 단기소멸시효는 운송인 또는 그 사용인이 악의인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는다(상법 제147조, 제121조 제3항). 이때 「악의」인 경우란 판례에 의할 때 운송물의 훼손 또는 일부멸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이를 수하인에게 알리지 않고 인도한 경우를 가리킨다(대법원 1987. 6. 23. 선고 86다카2107 판결).
(6) 불법행위책임과의 관계
1) 문제점
운송인의 운송물에 대한 멸실·훼손은 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에도 해당하나 타인의 물건을 멸실·훼손한 것으로서 불법행위에도 해당할 수 있다. 그러면 운송인이 운송물을 멸실·훼손한 것이 불법행위의 요건을 충족하면 운송인에 대하여 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책임을 묻지 않고 불법행위책임을 묻는 것도 가능한가? 또 만약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할 때 상법 제135조의 입증책임에 관한 규정이나 전술하였던 운송인의 책임 완화를 위한 특칙들이 불법행위책임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2) 불법행위책임의 가능성
이에 대해서는 견해가 대립한다. ① 계약법은 특별법으로서 일반법인 불법행위에 관한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므로 채무불이행책임만을 물을 수 있을 뿐 불법행위책임은 물을 수 없다는 법조경합설과 ② 계약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은 그 요건과 효과를 달리하므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과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서로 별개로 성립하고, 피해자는 두 청구권을 선택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청구권경합설이 있다. 청구권경합설이 통설이고 판례이다.
3) 불법행위책임에 대한 운송법 특칙의 적용 가능성
운송법의 특칙이 채무불이행 책임에 적용됨은 당연하다. 그러면 불법행위책임에도 적용되는가?
다수설과 판례는 이를 부정한다. 따라서 전술한 정액배상주의, 고가물에 대한 특칙, 특별소멸원인, 단기소멸시효 등은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상법 제135조 역시 적용되지 않으므로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경우 송하인 등이 운송인의 고의·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판례는 “고가물 불고지로 인한 면책 규정은 일반적으로 운송인의 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청구에만 적용되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는 그 적용이 없다(대법원 1991. 8. 23. 선고 91다15409 판결).”라고 판시한 바 있다.
4) 불법행위책임에 대한 면책약관의 적용 가능성
①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규정은 임의규정으로서 당사자 간의 특약으로 배상책임을 가중하거나 경감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운송약관에는 운송인의 책임 일부를 경감·면제하는 내용이 포함되는 예가 많다. 이를 면책약관이라 한다. ② 운송인의 채무불이행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이 경합하는 경우 면책약관은 채무불이행책임뿐만 아니라 불법행위책임에도 적용되는가? 판례는 원칙적으로 당사자 간의 합의가 없는 한 적용할 수 없다고 한다. 즉 “운송계약상의 면책약관이나 상법상의 면책조항은 당사자 사이에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약정이 없는 이상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의 경우에까지 확대하여 적용될 수 없다(대법원 1980. 11 .11. 선고 80다1812 판결).”라고 판시하였다. 다만 판례는 해상운송에서 선하증권에 기재한 면책약관은 다르게 취급하였다. 즉 “운송인이 선하증권에 기재한 면책약관은 불법행위책임에 적용키로 하는 별도의 명시적·묵시적 합의가 없더라도 당연히 불법행위 책임에도 그 효력이 미친다(대법원 1983. 3. 22. 선고 82다카1533 판결).”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판례의 입장은 육상운송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본다. 주의할 점은 위 판례는 그 적용을 일부 제한하여 “선하증권의 면책약관도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불법행위책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