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음수표행위의 무권대리
(1) 의의
어음․수표행위의 무권대리라 함은 대리권 없이 타인을 대리하여 어음․수표행위를 하는 것을 말하는 바, 광의의 무권대리와 협의의 무권대리로 나누어진다. 광의의 어음․수표의 무권대리에는 협의의 무권대리와 월권대리가 포함된다. 권한 없는 자가 타인의 대리인으로서 한 어음․수표행위를 본인이 추인하지도 않고 표현대리도 성립하지 않으면 협의의 무권대리가 된다. 민법에 의하면 무권대리인은 상대방의 선택에 좇아 계약의 이행 또는 손해배상을 할 책임이 있으나(민법 제135조 제1항), 어음법․수표법에는 이에 대한 특칙이 있다(어음법 제8조, 수표법 제11조). 즉 무권대리인은 손해배상의 책임은 없고, 단지 본인이 부담하였을 어음․수표상의 책임을 질 뿐이다(동조 1문).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하면 상대방이 무권대리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한편, 어음․수표를 유통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 요건
① 「대리권 없는 자」가 어음․수표행위를 대리하였어야 한다. ② 대리행위는 「대리인으로서 기명날인 또는 서명하는 방식」으로 하였어야 한다. 본인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을 하였을 때에는 어음․수표 위조의 문제가 된다. ③ 어음․수표소지인이 무권대리임을 알지 못했어야 한다. 악의의 취득자는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④ 본인이 무권대리 행위를 추인하지 않아야 한다. 본인이 추인을 하면 무권대리 행위는 소급하여 유권대리가 되어 본인만 책임을 지고 무권대리인은 책임을 면한다(민법 제130조). ⑤ 표현대리가 성립하지 않아야 한다.
(3) 효과
1) 본인의 책임
무권대리의 본인은 어음․수표상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물적항변으로서 모든 어음․수표소지인에게 대항할 수 있다. 어음․수표행위의 문언성에 반하기는 하나 아무 귀책사유도 없는 자에게 책임을 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본인이 책임을 지는 경우가 세 가지 있다. ⅰ) 본인이 추인하는 경우, ⅱ) 표현책임을 지는 경우, ⅲ) 사용자 책임을 지는 경우가 그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위조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2) 무권대리인의 책임
① 책임의 내용
ⅰ) 무권대리인은 유권대리였다면 본인이 졌어야 할 책임과 동일한 어음․수표상의 책임을 부담한다(어음법 제8조, 수표법 제11조). 예컨대, 발행을 무권대리한 자는 발행인으로서의 책임을, 배서를 무권대리한 자는 배서인으로서의 책임을 진다. ⅱ) 무권대리인은 어음․수표소지인에게 유권대리라면 본인이 가졌을 항변을 원용할 수 있다. 예컨대, 甲의 乙에 대한 물품대금채무의 변제를 위해 무권대리인 甲’가 甲을 대리하여 乙에게 약속어음을 발행하였는데, 乙이 甲에게 물품을 인도하지 않는 경우 甲’는 이를 항변으로 원용할 수 있다. 그러나 무권대리인 자신이 가지는 항변은 원용할 수 없다. 본인이 아니라 무권대리인이 책임을 짐으로 인해 상대방이 더 불리해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② 월권대리인의 책임의 범위
대리인이 주어진 대리권의 범위를 초과하여 대리행위를 한 경우에도 무권대리인의 책임이 발생한다(어음법 제8조 3문, 수표법 제11조 3문). 이와 같이 대리인이 주어진 대리권의 범위를 초월하여 대리한 어음․수표행위의 경우를 월권대리라고 한다. 예컨대, 1,000만 원의 범위에서 어음발행 권한의 부여 받은 자가 1,500만 원의 어음을 발행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어음․수표소지인에 대한 무권대리인의 책임 범위는 어떻게 되는가? 이는 권한을 넘은 표현대리(민법 제126조)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에만 발생하는 문제이다. 학설은, ⅰ) 대리인이 어음․수표금 전액(1,500만 원)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이를 이행한 후 유권대리부분(1,000만 원)은 본인에게 구상할 수 있다는 견해(본인무책임설), ⅱ) 대리인은 권한을 넘은 부분(500만 원)에 한해 책임을 지고, 대리권이 있는 부분(1,000만 원)은 본인이 책임진다는 견해(책임분담설)도 있으나, ⅲ) 대리인은 어음․수표금 전액(1,500만 원)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본인도 수권 범위(1,000만 원)에서는 책임을 진다는 견해(책임병존설)가 통설이다.
③ 책임의 발생시기
무권대리행위에 대한 본인의 추인과 관련하여 무권대리인의 책임이 언제 발생하는가에 관해 견해가 대립한다. ⅰ) 정지조건설은 무권대리인의 책임은 본인의 추인 거절 시에 비로소 발생한다고 한다고 한다. ⅱ) 반면 해제조건설은 무권대리인의 책임은 행위 시에 발생하고 본인이 추인을 하면 소급적으로 소멸한다고 한다. 통설의 입장이다. 정지조건설에 의하면 추인거절 시까지 본인과 무권대리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책임의 공백상태가 발생하여 부당하다는 이유를 든다.
④ 입증책임
어음․수표소지인이 무권대리인에게 책임을 추궁함에 있어 대리권 흠결에 대한 입증책임은 누가 부담하는가? 견해가 대립한다. ⅰ) 어음․수표소지인이 대리권의 흠결을 입증해야 무권대리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ⅱ) 어음․수표소지인은 본인이 무권대리를 이유로 이행을 거절한 사실을 증명하면 족하고, 책임을 면하려면 무권대리인이 대리권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는 견해가 통설이다.
3) 책임을 이행한 무권대리인의 권리
무권대리인이 책임을 이행한 때에는 본인과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어음법 제8조 2문, 수표법 제11조 2문). 즉 본인의 전자에 대하여 어음․수표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예컨대, 甲이 乙에게 발행한 약속어음을 乙’가 권한 없이 乙을 대리하여 A에게 배서양도한 경우, 乙’가 A에게 상환의무를 이행하였다면 乙’는 본인인 乙의 지위에서 甲에게 어음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 결과 무권대리인의 전자, 즉 무권대리인으로부터 청구를 받은 채무자는 무권대리인에 대한 항변사유뿐만 아니라 본인에 대한 항변사유로도 무권대리인에게 항변할 수 있다.
4) 본인의 권리
무권대리인이 권한 없이 본인을 대리하여 배서를 함으로써 본인이 어음․수표의 소지를 잃게 된 경우, 본인은 제3자인 어음․수표소지인 또는 책임을 이행한 무권대리인에 대하여 어음․수표의 반환을 구할 수 있는가? 乙이 甲으로부터 약속어음을 발행 받아 소지하고 있었는데, 乙’가 권한 없이 乙을 대리하여 이 어음을 A에게 배서양도한 경우를 예로 들어 살펴보도록 하자.
① 제3자인 어음․수표소지인에 대한 어음․수표의 반환청구
위 예에서 乙은 어음소지인인 A에 대하여 어음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가? A가 선의취득을 하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A가 선의취득을 하지 못하였다면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반면 선의취득을 하였다면 어음의 반환은 청구할 수 없고, 乙은 단지 乙’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따름이다.
② 책임을 이행한 무권대리인에 대한 어음․수표의 반환청구
위 예에서 무권대리인 乙’가 어음을 선의취득한 A에게 상환의무를 이행하고 그로부터 어음을 교부 받아 소지하고 있다면, 본인인 乙은 무권대리인 乙’에게 어음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가?
견해가 대립한다. ⅰ) 소수설은 A의 선의취득에 의해 이미 乙은 어음상의 권리를 상실하였으므로 乙’에 대하여도 어음의 반환은 청구할 수 없다고 한다. 乙은 단지 乙’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ⅱ) 반면 다수설은 乙은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는데 어음상의 권리를 상실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며 乙’에 대하여 어음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