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음수표의 변조
(1) 의의
1) 개념
어음․수표의 변조란 타인이 앞서 한 어음․수표행위 중 「기명날인 또는 서명 이외의 부분」을 권한 없이 변경하여 어음․수표행위의 「내용」에 변경을 가하는 것이다. 예컨대, B가 권한 없이 A가 발행한 약속어음의 금액을 1,000만 원에서 7,000만 원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변경에는 기존의 문언을 다른 문언으로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의 문언을 제거하거나 새로운 문언을 첨가하는 것도 포함된다. 필수적 기재사항뿐만 아니라 유익적 기재사항을 변경해도 변조가 되나, 무익적 기재사항을 변경․추가․말소하는 것은 어음․수표의 효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변조가 아니다.
2) 기명날인 또는 서명의 변경
어음수표에 이미 존재하는 甲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을 권한 없이 乙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으로 변경하는 것은 甲에 대해서는 변조가 되고 乙에 대해서는 위조가 된다. 따라서 甲은 변조 이전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에 의해서 어음․수표상의 책임을 지고 乙은 피위조자의 책임을 지게 된다.
3) 자신이 기재한 내용의 변경이 변조에 해당하는지 여부
① 원칙
변조란 권한 없이 어음․수표행위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이므로, 어음․수표행위 내용을 변경하더라도, ⅰ) 어음․수표행위자 자신이 타인에게 어음․수표를 교부하기 전에 하거나, ⅱ) 타인이 어음․수표행위자의 동의를 받아 하는 변경은 원칙적으로 변조가 되지 않는다.
② 다른 이해관계자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른 다른 결론
A. 영향을 미치는 경우 자신이 기재한 내용을 변경하는 경우라도 이미 어음․수표상에 다른 권리․의무를 가진 자가 생겼고 그 변경이 이들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한 변경은 변조가 된다. 예를 들어 보자. 먼저 ⅰ)의 경우를 보면, 甲이 1,000만 원의 약속어음을 작성하였다가 乙에게 교부하기 전에 어음금액을 2,000만 원으로 변경하는 것은 변조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甲’가 이 어음에 보증을 한 후라면 이와 같은 변경은 甲’의 동의가 없는 한 변조가 된다. 그 변경으로 인해 甲’의 보증채무가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ⅱ)의 경우를 보면, 甲이 乙에게 어음금 1,000만 원의 약속어음을 발행하였는데, 乙이 이를 소지하고 있다가 甲의 동의를 받아 어음금액을 2,000만 원으로 변경하였다면 이는 변조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乙이 A에게 배서하여 A가 그와 같이 변경을 하였다면 이는 乙의 동의가 없는 한 변조가 된다. 그 변경으로 인해 乙의 상환의무의 범위가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판례도 같은 취지에서 “甲이 乙을 수취인으로 기재하여 작성한 약속어음에 甲'로부터 발행인을 위한 어음보증을 받은 다음, 甲'의 동의 없이 멋대로 수취인란의 기재를 삭제하고 X에게 이를 교부하여 X가 그 수취인란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었다면 이와 같은 약속어음의 수취인란 기재변경은 甲'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어음의 변조에 해당하고, 위 어음 보증의 주된 채무는 발행인 갑의 수취인 을에 대한 채무이며, X에 대한 채무가 아니므로 변조된 수취인인 X에 대하여서까지 어음보증의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다(대판 1981.10.13. 81다726).”라고 판시하였다.
B.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 그러나 다른 이해관계인이 생겼더라도 그 기재내용의 변경으로 어음․수표의 효력이나 어음․수표관계자의 권리․의무의 내용에 영향이 없고, 단순히 착오로 기재된 것을 정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변경은 변조에 해당하지 않는다(대판 1995.5.9. 94다40659). 예를 들어 甲이 乙을 수취인으로 하여 약속어음을 발행하였는데, X가 甲의 채무를 보증할 목적으로 이 어음에 乙을 피배서인으로 하여 배서를 한 경우, 甲이 X의 동의를 받지 않고 수취인을 乙에서 X로 변경하였더라도 이는 변조가 아니다. 甲이 X에게 발행하고 X가 乙에게 배서하는 것이 원래 당사자들의 의사였으므로, 이와 같은 변경은 단순히 착오를 정정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취지에서 판례는 무권리자가 수표 발행인 회사의 상호가 변경된 후에 임의로 그 회사가 상호변경 전에 적법하게 발행하였던 백지수표의 발행인란의 기명 부분만을 사선으로 지우고 그 밑에 변경 후의 상호를 써넣은 사안에서도, “그 백지수표의 발행인란의 기명을 그와 같이 변경함으로 말미암아 그 백지수표의 효력이나 그 수표 관계자의 권리의무의 내용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므로 이를 수표법상 수표의 변조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없다(대판 1996.10.11. 94다55163).”라고 판시하였다.
(2) 변조의 효과
1) 어음․수표행위자의 책임
변조에 의해 기존의 어음․수표행위의 내용이 변경되고, 또 변조된 어음․수표가 유통되면서 어음․수표행위가 계속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음․수표 변조의 법리는 일반적으로 변조의 전과 후로 나누어서 본다.
① 변조 전에 기명날인 또는 서명한 자의 책임
변조 전에 기명날인 또는 서명한 자는 원래의 문구에 따라 책임을 진다(어음법 제69조, 수표법 제50조 각 후단). 원래의 문구가 기명날인자의 어음․수표행위의 내용을 이루기 때문이다. 설사 변조로 어음․수표요건이 흠결되었어도 원래의 문구에 따라 책임을 진다. 권한 없는 자가 이미 행하여진 어음․수표행위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 부분을 甲에서 乙로 변경하면, 이는 甲에 대하여는 변조가 되고 乙에 대하여는 위조가 된다. 따라서 甲은 원문언에 따라 책임을 지고 乙은 피위조자로서 원칙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변조의 항변은 물적항변으로서 누구에게든 대항할 수 있다.
② 변조 후에 기명날인 또는 서명한 자의 책임
변조 후에 기명날인 또는 서명한 자는 변조된 문구에 따라 책임을 진다(어음법 제69조, 수표법 제50조 각 전단). 어음․수표행위자는 행위 당시에 어음․수표가 표시하는 대로의 채무를 부담할 의사로 기명날인 또는 서명을 하기 때문이다. 어음․수표행위 독립의 원칙 상 당연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조로 인하여 어음․수표요건이 흠결되었다면 그 후에 기명날인 또는 서명한 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③ 변조자의 책임
ⅰ) 변조자가 변조를 한 다음 어음․수표에 기명날인 또는 서명을 하였다면 변조 후의 문언에 따라 책임을 지게 된다. ⅱ) 그렇다면 변조자가 변조만 하고 기명날인 또는 서명을 하지 않아 어음․수표문면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는 어떠한가? 불법행위책임과 형사상 책임을 짐은 당연하나, 변조된 어음․수표에 따로 어음․수표행위를 하지 않는 한 어음․수표상의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다수설은 위조자와 마찬가지로 무권대리의 규정(어음법 제8조, 수표법 제11조)을 유추적용하여 변조자의 어음․수표상의 책임을 인정한다.
2) 변조의 특수문제
① 만기의 변조와 보전절차
만기가 변조된 경우에는( 만기가 2015.5.1.에서 2015.6.1.로 변조), 변조 전의 어음행위자에 대한 상환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하여는 변조 전의 만기를 기준으로, 변조 후의 어음행위자에 대한 상환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하여는 변조 후의 만기를 기준으로, 지급제시기간 내의 지급제시, 거절증서작성 등의 상환청구권보전절차를 밟아야 한다. 판례도 “약속어음의 최종 소지인이 배서인에 대하여 변개 전의 원문언에 따른 소구의무자로서의 책임을 묻기 위하여서는 소지인이 변개 전의 원문언에 따른 적법한 지급제시를 하였음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대판 1996.2.23. 95다49936).”라고 하여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변조된 어음의 소지인은 변조사실을 알지 못하고 변조 후의 만기를 기준으로 상환청구권 보전절차를 밟을 것임이 분명한데, 이러면 결국 변조 전의 어음행위자에 대하여는 상환청구권을 잃게 된다.
② 변조의 증명책임
예를 들어 甲이 어음금액을 200만 원으로 하여 약속어음을 발행하였는데, 이 어음이 유통되는 과정에서 800만 원으로 변조되었다고 하자. 어음소지인 B는 甲에게 800만 원의 지급을 청구할 것이고, 甲은 어음금액을 200만 원으로 하여 발행하였다고 하며 600만 원은 지급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만일 이 어음이 중간에 변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甲은 B에게 얼마를 지급해야 하는가? 즉 변조의 증명책임은 누가 부담하는가?
A. 학설
ⓐ 식별가능성에 따른 구별설(통설) 어음․수표면상 변조 여부가 명백한 때에는 소지인이 어음․수표채무자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이 변조 후에 행하여졌음을 증명해야 채무자에게 현재의 문언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 때에는 채무자가 현재의 문언에 따른 책임을 질 것인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반면 변조 여부가 어음․수표면상 명백하지 아니한 때에는 변조된 문언에 따른 채무를 면하려는 어음․수표채무자가 변조된 사실과 자신의 어음․수표행위가 변조 전에 있었던 사실을 증명하여야 한다. 이때는 소지인으로서는 채무자가 현재의 문언에 따라 책임질 것으로 생각하고 어음․수표를 취득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견해에 의할 때 위 예에서 어음면상 변조 여부가 명백하면 B가 甲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이 변조 후에 행하여졌음을 증명해야 甲에게 800만 원을 청구할 수 있다. 반면 변조 여부가 명백하지 않으면 甲이 변조 사실과 자신의 발행은 변조 전에 있었던 사실을 증명해야 600만 원에 대해서 책임을 면할 수 있다.
ⓑ 소지인증명설(소수설) 위조의 입증책임과 마찬가지로 변조가 명백한지 여부와 관계 없이 소지인이 변조되지 않았다는 사실 또는 어음․수표채무자의 어음․수표행위가 변조 이후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현재의 문언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B. 판례 판례는 통설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어음의 문언에 변개(개서)가 되었음이 명백한 경우에 어음소지인이 기명날인자(배서인 등)에게 그 변개후의 문언에 따른 책임을 지우자면 그 기명날인이 변개 후에 있은 것 또는 기명날인자가 그 변개에 동의하였다는 것을 입증하여야 한다(대판 1987.3.24. 86다카37).”라고 판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