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보험의 법적 효과 : 제3자의 직접 청구권
(1) 의의
최근에는 책임보험의 중점이 피보험자 보호보다는 피해자 보호의 측면으로 이동하고 있어 상법은 피보험자의 보험금청구권 행사에 제한을 가하고 제3자(피해자)에게 직접청구권을 인정하였다.
① 보험금청구권 행사의 제한
상법은 보험자는 피보험자가 책임을 질 사고로 인하여 생긴 손해에 대하여 제3자가 그 배상을 받기 전에는 보험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피보험자에게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였다(제724조 제1항). 사고가 발생하여 보험자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였는데, 피보험자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하지 않는다면 피해자가 큰 곤란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판례는 “보험회사의 자동차보험약관상 상법 제724조 제1항의 내용과 같이 피보험자가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하기 전에는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지급거절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면 보험자는 그 약관에 의하여 상법 제724조 제1항의 지급거절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판 2007.1.12. 2006다43330).”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경우 피보험자는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하지 않고도 보험자에게 보험금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② 제3자의 직접청구권
보험금 지급이 위와 같이 이루어질 것이라면 처음부터 보험금을 피해자에게 직접 지급하면 절차가 더 간소해질 수 있다. 그래서 상법은 제3자는 피보험자가 책임을 질 사고로 입은 손해에 대하여 보험금액의 한도 내에서 보험자에게 직접 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동조 제2항 본문). 이를 제3자의 직접청구권이라 한다. 본래 책임보험에서 제3자는 보험자와 계약관계가 없으므로 보험자에게 아무 권리도 갖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최근 책임보험의 중점이 피해자 보호라는 측면으로 이동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1991년 상법 개정 시 피해자에게 직접청구권을 인정한 것이다. 그 결과 제725조는 주의적 규정이 되었다.
피해자가 직접청구권을 행사하는 경우 책임보험 보험자의 보상한도는 책임보험금 원본의 한도일 뿐 지연손해금은 보상한도액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보험자는 피보험자의 불법행위일부터 발생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대판 2011.9.8. 2009다73295).
(2) 직접청구권의 법적 성질 및 소멸시효
1) 법적 성질
① 학설
A. 손해배상청구권설 직접청구권은 보험자는 피보험자의 손해배상채무를 중첩적으로 인수함에 따라 피해자가 보험자에 대하여 가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이라고 한다. 피해자의 관점을 중시하는 견해이다.
B. 보험금청구권설 직접청구권은 피해자가 단순히 피보험자의 보험금청구권을 대위행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보험자의 의사에 부합하고, 원래 피해자는 피보험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피해자가 더 불리해지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② 판례
판례는 종래 판례변경의 절차도 없이 서로 모순되는 입장을 취하는 등 혼란을 겪었으나, 1990년대 이후 일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설을 취하고 있다. “상법 제724조 제2항에 의하여 피해자에게 인정되는 직접청구권의 법적 성질은 보험자가 피보험자의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병존적으로 인수한 것으로서 피해자가 보험자에 대하여 가지는 손해배상청구이고 피보험자의 보험자에 대한 보험금청구권의 변형 내지는 이에 준하는 권리가 아니다(대판 1999.2.12. 98다44956).” 즉 “상법 제724조 제2항에 의하여 피해자에게 인정되는 직접청구권의 법적 성질은 보험자가 피보험자의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중첩적으로 인수한 결과 피해자가 보험자에 대하여 가지게 된 손해배상청구권이고, 보험자의 채무인수는 피보험자의 부탁(보험계약이나 공제계약)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보험자의 손해배상채무와 피보험자의 손해배상채무는 연대채무관계에 있다(대판 2010.10.28. 2010다53754).”라고 판시하였다.
2) 소멸시효
직접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은 그 법적 성질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보험금청구권으로 보면 3년이나(제662조), 손해배상청구권으로 보면 그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기간이다{ 불법행위의 경우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민법 제766조)}. 판례도 “직접청구권은 피해자가 보험자에 대하여 가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이므로 민법 제766조 제1항에 따라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대판 2005.10.7. 2003다6774).”고 하였다. 그런데 손해배상청구권설 및 판례와 같이 보면 피보험자의 보험금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한 이후에도 피해자는 보험자에게 직접청구권을 행사 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책임보험의 피해자 보호적 기능을 감안하더라도 균형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있다. 위 판례와 동일한 취지의 판례에 의하면, 직접청구권의 법적 성질은 보험자가 피보험자의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병존적으로 인수한 것으로서 피해자가 보험자에 대하여 가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이고 피보험자의 보험자에 대한 보험금청구권의 변형 내지는 이에 준하는 권리가 아니므로,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에 관하여는 연 6%의 상사법정이율이 아닌 연 5%의 민사법정이율이 적용된다(대판 2019.5.30. 2016다205243).
(3) 직접청구권의 행사
1) 보험자의 항변
보험자는 제3자로부터 직접 보상의 청구를 받은 경우 제3자에 대하여 피보험자가 그 사고에 관하여 가지는 항변으로써 대항할 수 있다(제724조 제2항 단서). 뿐만 아니라 보험자는 자신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에게 가지는 항변으로써도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보험자와 직접 관계 없는 제3자의 개입으로 보험자가 불리해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A보험사의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한 甲이 자동차 운행 중 도로를 무단횡단하던 乙을 치어 중상을 입혀서 乙이 A보험사에게 이 사고로 발생한 손해액 1억 원의 지급을 청구하였는데, 이 사고에 대한 乙의 과실이 70%였고, 甲이 보험가입 시 2건의 교통사고 경력을 숨겼던 사정이 있었다고 하자. 이때 A보험사는 피보험자 甲이 乙에 대하여 가지는 과실상계의 항변으로써 乙에게 대항할 수 있으므로 보험계약에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보험금을 3,000만 원만 지급하면 된다. 나아가 A보험사는 甲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유, 즉 고지의무 위반으로 乙에게 대항할 수도 있으므로, 乙에 대하여 청구금액 전액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2) 통지의무 및 협조의무
보험자는 제3자로부터 직접 보상의 청구를 받은 때에는 지체 없이 피보험자에게 이를 통지하여야 한다(동조 제3항). 이 경우 피보험자는 보험자의 요구가 있으면 필요한 서류․증거의 제출, 증언 또는 증인의 출석에 협조하여야 한다(동조 제4항).
(4) 피해자의 보험자에 대한 직접청구권과 피보험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관계
제3자는 보험자에 대한 직접청구권과 피보험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임의로 선택하여 행사할 수 있으며, 어느 하나의 청구권을 행사하면 그 범위 내에서 다른 청구권도 소멸한다. 따라서 피보험자로부터 손해배상을 먼저 받으면 직접청구권은 그 한도에서 소멸하고, 직접청구권을 먼저 행사하여 이행을 받으면 피보험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도 소멸한다.
(5) 보험자에 대한 피해자의 직접청구권과 피보험자의 보험금청구권의 관계
1) 제3자가 직접청구권을 행사하였는데 피보험자 역시 보험자에 대하여 보험금청구권을 행사한 경우 어느 청구권이 우선하는가? 상법 제724조 제1항은 제3자의 직접청구권이 피보험자의 보험금청구권에 우선한다는 것을 선언하는 규정이므로, 보험자로서는 제3자가 피보험자로부터 배상을 받기 전에는 피보험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으로 직접청구권을 갖는 피해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따라서 보험자는 제3자가 피보험자로부터 배상을 받기 전에는 상법 제724조 제1항의 규정을 들어 피보험자의 보험금지급 청구를 거절할 권리를 갖게 되고(대판 1995.9.26. 94다28093), 피보험자가 보험계약에 따라 보험자에 대하여 가지는 보험금청구권에 관한 가압류 등의 경합을 이유로 한 집행공탁은 피보험자에 대한 변제공탁의 성질을 가질 뿐이므로, 이러한 집행공탁에 의하여 상법 제724조 제2항에 따른 제3자의 보험자에 대한 직접청구권이 소멸된다고 볼 수는 없다(대판 2014.9.25. 2014다207672).
2) 판례는 “교통사고가 발생한 후 자동차종합보험의 보험자가 피보험자에 대하여 보험금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였다가 패소 확정되자 피해자에게 직접 손해배상금을 지급하였으나 다른 원인으로 그 교통사고에 대하여 보험계약의 효력이 미치지 않아 출연의 목적 내지 원인을 결여하였음이 밝혀진 경우, 위 확정판결의 효력은 보험자와 피해자 사이에는 미치지 아니하므로 보험자는 피해자에게 부당이득반환을 구할 수 있다(대판 2000.12.8. 99다37856).”고 판시하였다.
(6) 청구권대위에 의해 행사하는 구상권의 소멸시효기간
판례에 의하면 공동불법행위자 중의 1인과 보험계약을 체결한 보험자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모두 지급함으로써 다른 공동불법행위자들의 보험자들이 공동면책되었다면 그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보험자는 다른 공동불법행위자들의 보험자들이 부담하여야 할 부분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대판 1999.2.12. 98다44956). 이때 그 구상권의 직접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은 어떻게 되는가? 판례는 일반상사채권의 소멸시효기간과 같이 5년으로 보기도 하고, 민사채권의 소멸시효기간과 같이 10년으로 보기도 한다.